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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더 센 거물을 봐주려 했나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끝판왕 ‘김학의 사건’…

“불똥이 검찰 내부로 튈 수 있기 때문에 김 전 차관으로 수사 마무리”
등록 2019-10-12 05:24 수정 2020-05-02 19:29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이 5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이 5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제 식구 감싸기’의 전형이다. 성접대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비롯해 기소할 만한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6년 전 검찰은 김 전 차관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 대상자가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마지못해 나선 최근의 재수사에서도 검찰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차기 검찰 총장 후보의 몰락

‘김학의 사건’은 2013년 갓 출범한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준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은 초대 법무부 차관으로 당시 대전고검장이던 김 전 차관을 임명했다. 그를 차기 총장으로 임명하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이 법무부에 입성하자마자 그가 건설업자인 윤중천씨한테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터졌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이 강원도 원주에 있는 윤씨 소유의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는 현장을 찍은 동영상을 확보하고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이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2013년 성접대 의혹 등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자 동영상에 등장하는 피해 여성은 2014년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검찰은 2차 수사에서도 김 전 차관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2017년 12월 출범한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다.

‘김학의 사건’ 검찰수사단은 지난 6월4일 김 전 차관을 성접대를 포함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김학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 전 차관이 맞다”고 밝혔다. 이는 6년 전 “동영상 속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엉뚱한 이유로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던 것을 뒤집은 것이다. 김 전 차관에게는 스폰서 윤중천씨 등으로부터 성접대를 포함해 1억7천여만원어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적용됐다. 윤씨는 이아무개씨에 대한 강간치상, 사기와 알선수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검찰수사단은 6년 전 수사팀의 봐주기 수사 등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근거 없음’ ‘공소시효 지남’ 등을 이유로 면죄부를 줬다. 앞서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3년과 2014년 1, 2차 수사팀이 검사의 객관 의무를 저버리고 제 식구를 감싸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차관과 윤씨에 대해 계좌 추적이나 자택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탄핵’(배척)하기 위해 이들과 수사경찰관의 이메일 계정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이율배반적인 적극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피해자 신원 파악 불가’, 무혐의

1차 수사팀은 동영상 속 가해자가 김 전 차관이라는 사실은 “육안으로 봐도 식별이 가능”(민갑룡 경찰청장 3월16일 국회 답변)했지만,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동영상 속 가해자가 김 전 차관이 맞는지 따질 필요가 없는 점을 악용한 꼼수였다. 검찰은 실체적 진실까지 덮으려고 했다. 경찰이 송치한 수사기록에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 간부 다수의 연루 의혹이 기록돼 있는데도 수사는커녕 감찰부서에 통보도 하지 않았다.

검찰과거사위는 검찰의 부실 수사 의도를 “다른 의혹 사건으로 번질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김 전 차관에게만 그치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과거사위 조사에 따르면 1차 수사팀은 김 전 차관과 윤씨가 언제, 어디서, 누구 소개로 만나서 교류하게 됐는지 등 기초적인 사항조차 밝히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그 이유를 “소개자가 밝혀질 경우 새로운 의혹 사건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봤다.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이 사건은 김 전 차관과 한 전 총장 외에도 검찰 고위 간부 여럿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큰 사건이었다고 한다. 단순히 ‘김학의 성접대 의혹 사건’이 아니라 ‘윤중천 리스트’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검찰수사단의 재수사는 이런 의혹을 제대로 파헤쳤어야 한다. 하지만 수사단은 “공소시효(5년)가 끝나서 추가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맥 빠진 결과를 내놨다. 1, 2차 수사에 참여했던 전·현직 검사 8명을 조사하고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을 압수수색했지만 공소시효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수사단은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김학의 동영상에 대한 경찰 수사에 관여했다는 직권남용 혐의 역시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수사 경찰들이 부인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수사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김학의 동영상을 확인한 이철규 당시 경기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서는 ‘조사 불응’을 이유로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검찰 재수사가 예상된 결론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검찰수사단이 ‘봐주기 수사 의혹’을 제대로 겨냥할 경우 옛 수사팀에 참여한 검사들이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한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윤중천 리스트’의 불똥이 검찰 내부로 튈 수도 있기 때문에 김 전 차관만 정리하는 쪽으로 수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의 스폰서로 알려진 윤중천씨가 5월22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차관의 스폰서로 알려진 윤중천씨가 5월22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운전기사 박아무개씨의 증언 나와

김 전 차관은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그는 최근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윤씨와 설전을 벌였다. 윤씨는 “김 전 차관에게 돈은 줬지만 얼마나, 몇 번을 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김 전 차관은 “돈을 준 횟수 등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윤씨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윤씨의 운전기사 박아무개씨는 김 전 차관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박씨는 “김 전 차관을 성접대 여성이 있는 오피스텔로 몇 차례 데려다줬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윤씨가 강원도 별장에서 김 전 차관을 접대할 때 다수의 여성이 있는 걸 봤다”고도 증언했다. “윤씨가 김 전 차관과 통화하면서 자신이 관계된 형사 사건에 대해 도움을 청하는 취지로 말하는 걸 여러 차례 들었다”는 증언도 했다.

김 전 차관의 1심 재판 결과는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6년 전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이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을 사건이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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