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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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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결정보다 정책 다듬는 공론화 할 것”

서울시, ‘학원 일요휴무제’ 2만3500명 여론조사로 시민 숙의 모아

교육전문가·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공론화추진위 구성해 토론회도
등록 2019-09-30 18:11 수정 2020-05-02 19:29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9월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교 무상교육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9월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교 무상교육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우리가 천천히 했고 기자분들이 빨리 해서 나올 내용은 다 나오지 않았나 싶다. 원체 민감한 내용이라.”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이 9월18일 ‘학원 일요휴무제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 사업’ 추진 계획 발표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2014년 ‘쉼이 있는 교육 운동’이 시작된 뒤 교육계와 사교육계에서는 이미 학원 일요휴무제의 취지와 장단점, 실효성과 부작용을 놓고 상당 수준의 공방이 이뤄졌다. ‘학생의 학습권 침해냐 쉴 권리 보호냐’ ‘학원 영업권 침해냐 공익을 위한 정당한 규제냐’ ‘경쟁교육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규제 실효성이 있느냐 없느냐’ ‘개인교습·온라인수강 풍선효과로 이어질 것이냐 아니냐’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치열한 장외전이 펼쳐졌다. 조 교육감의 말처럼 교육 전문가들의 분석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이미 나올 내용은 다 나온 셈이다. 이제 광범위한 여론조사와 토론을 통해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고 여론을 모으는 공론화를 거쳐 교육 당국이 교육정책에 반영하는 결단의 과정이 남았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초선 때 ‘학원 격주휴무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다른 교육감들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개정으로 전국적 시행 등을 내세워 학원 일요휴무제를 미루는 사이, 강고한 현실론에 밀려 서울시교육청의 조례 제정이 탄력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9월17일 인터뷰에서 “교육감도 현실적 문제 제기를 잘 알고 계시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학생들의 행복추구권·건강권·인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느라 쉴 수 없는 무한경쟁의 교육체제에서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학생들을 쉬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공론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반대 이유 세세하게 파악할 것”

‘교육감 공약’인 탓에 공론화를 ‘이미 결론이 결정된 요식행위’로 보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교육감 스스로도 공론화를 객관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시민들의 찬성 열의가 확인되면 정책 추진 동력이 될 테고, 반대라면 교육청이 제도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뜻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 교육감도 기자들에게 “반대가 크게 나오면 발목을 잡힐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제 의사와 관계없이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박종덕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은 과 한 통화에서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론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위촉을 요청하기에 많은 고민 끝에 일단은 참여하기로 했다”며 “무늬만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라면 들러리를 설 필요가 없지만 일단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실제 일요일에 학원에 안 다니는 학생·학부모가 포함된 설문조사와 일요일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학부모 설문조사 결과가 완전히 다르고, 학원 일요휴무제 실시 이후 학생들이 개인교습과 온라인수강 등 음성적·대체적 수단을 찾는다면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론화 과정에서 현행 일요휴무제 논의가 비과학적·비합리적이라는 점을 최대한 널리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론화 사업은 찬반을 결정하는 방식보다는 정책을 정교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공론화추진위 구성 실무 관계자는 “추진위에도 ‘학원 일요휴무제를 한다, 안 한다’ 결론을 내리는 방식보다는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될 내용을 풍성하게 담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가령 전체적으로 찬성 의견이 높더라도 부분적으로 어떤 단위(학부모·학생·학원 등)에서 어떤 문제로 어떤 부분에 반대하는지 ‘하위 쟁점’들의 세세하고 정확한 내용이 파악되면 이를 향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현실적으로 고등학교는 아직 학원 일요휴무제를 시행하기 어렵다면 초등·중학교부터 먼저 시행하거나, 예체능을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으면 보습학원만 규제 대상으로 하는 식이다.

2017년 12월 학원 일요(휴일)휴무제와 심야교습 시간 단축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 캠페인.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제공

2017년 12월 학원 일요(휴일)휴무제와 심야교습 시간 단축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 캠페인.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제공

도입까지 난관 예상

서울시교육청은 공론화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전문가와 시민의 참여 수준과 폭도 크게 넓혔다. 공론화전문가·교육전문가·법조인으로 공론화추진위원회(위원 7명)를 구성하고, 찬반 이해관계자와 학부모·시민과 학원·학생인권·교육전문가로 자문회의(위원 10명)를 꾸렸다. 추진위는 사전 여론조사와 두 차례 열린 토론회에서 광범위한 여론을 듣고, 시민참여단을 구성해 ‘숙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9월20일~10월15일 학생 1만2천 명, 학부모 8천 명, 교사 2500명, 시민 1천 명 등 2만3500명에게 사전 온라인·전화 여론조사를 한다. 일요일 학원 이용 여부, 학원 일요휴무제에 대한 기본 태도(찬성/반대/유보)와 그 이유, 추진 방안, 현행 유지시 대안 등을 조사해 종합적인 여론을 확인할 계획이다. 9월27일과 10월22일에는 사전 열린토론회를 열어 시민참여단의 숙의 자료로 활용한다.

시민참여단 200명은 학생 80명(40%), 학부모 60명(30%), 교사 30명(15%), 일반 시민 30명(15%)으로 구성하되, 사전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여론 지형’을 반영해 참여단을 꾸릴 계획이다. 시민참여단은 먼저 웹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숙의’에 참여한 뒤 10월26일과 11월9일 토론회를 연다. 토론회에선 사전·사후 현장 설문조사, 전문가 주제 발표, 분임 토의 등을 한다. 공론화추진위원회가 사전 여론조사와 두 차례 토론회, 시민참여단 숙의 과정 등을 거쳐 11월 말 권고안을 낼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정보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학원 휴일휴무제 및 학원비 상한제 도입 방안 연구’를 보면, 서울의 중학생 74%와 고등학생 52%, 중학생 학부모의 71%와 고등학생 학부모의 63%가 학원 일요휴무에 찬성해 여론 지형 자체는 학원 일요휴무제 도입에 불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론화로 찬성 여론이 확인돼도 당장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여러 난관이 예상된다.

학원법은 교육감이 시·도 조례로 정할 수 있는 범위로 “교습 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는 2017년 “교육감이 시·도의 조례로 심야시간에 대한 제한은 둘 수 있지만 특정 요일이나 주말에 교습할 수 없도록 하는 ‘휴강일’은 규정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박종덕 회장은 “법률적 조처는 마지막 단계”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조례 제정시 학원업계가 법제처 해석을 근거로 효력정지가처분신청 등 법률적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서 학원법을 개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내년 4·15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이 ‘벌집’을 건드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조 교육감은 “법은 최대주의적 해석과 최소주의적 해석이 둘 다 가능하다.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조례로 가능하다 이렇게 보고 쟁투를 할 수 있고, 가처분이 (인용)되면 법제화를 요청하고 여의도에 공을 넘길 수도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시민적 의견의 수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도의회 조례 개정안 발의


일요일에 경기도로 학원 갈라
경인 지역도 휴무제 동참해야


서울시교육청만 단독으로 학원 일요휴무제를 시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울에 있는 모든 학원이 곧이곧대로 일요일에 쉴까, 제도를 무시하고 일요일에도 문을 열까, 아니면 규제가 없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쪽으로 대거 이동할까? ‘설마 그렇게까지야…’ 싶겠지만,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어 법망을 피해온 입시 사교육 현실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세 번째 가능성을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원 일요휴무제를 하려거든 서울시교육청이 조례로 시행할 게 아니라, 정부와 국회가 학원법을 개정해 전국 모든 학원에 동일하게 일요휴무를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만이라도 서울과 함께 조례를 제정해 학원 일요휴무제를 시행해야 정책의 실효성이 확보될 거라는 분석이다.
경기도의회 제2교육위원회 추민규 의원(민주당·경기 하남)이 ‘경기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발의해 학원 일요휴무제를 추진하기로 한 건 그런 면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추 의원은 올해 안에 조례 개정안을 발의하고, 올해 조례 개정에 실패하더라도 임기 내내 학원 일요휴무제를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추 의원은 9월24일 과 한 통화에서 “조광희 경기도의회 제2교육위원장이 토론회를 거쳐 체계적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쪽으로 힘을 실어줬다”며 “10월30일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하고 11월에 공청회를 거쳐 여론을 수렴하고, 경기도교육청은 11월 말께 학원 일요휴무제 관련 설문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일정을 소개했다.
추 의원은 전국학원강사총연합회 회장 출신으로, 도의원이 되기 전 국어·논술 강사로 일했고 서울 대치동에서 6년간 학원을 운영한 ‘학원 전문가’다. 추 의원은 “서울시가 먼저 학원 일요휴무제를 하면 경기도가 제2의 대치동 학원가가 돼버릴 수 있다”며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키고 일요일만이라도 가족 간 소통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학원 일요휴무제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추 의원은 “조례든 법이든 제·개정 과정에서는 항상 논란이 많지만 일단 만들어놓고 나면 대부분 순리대로 지키게 되므로 실효성을 예단할 필요는 없다”며 “시작은 학원 일요휴무제 조례 개정이지만 큰 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처럼 교육의 본질 회복과 공교육 강화, 공정성 확대 쪽으로 (초·중등) 교육법을 바꿔가는 과정의 일부로 본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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