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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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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요양보호사·가스검침원…그들의 ‘폭염일지’

‘2019년 폭염 시민모니터링’에 참여한 이들의 ‘폭염 노동’ 기록
등록 2019-08-20 02:47 수정 2020-05-02 19:29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 녹색연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함께 계획한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은 업무 특성에 따라 시민들이 7월22일부터 8월9일까지 19일 동안 각자 일터에서 노출된 실제 온도를 측정한 실험입니다. 시민모니터링 참가자 125명 가운데 20명은 직접 폭염 일지를 작성했습니다. 폭염 일지 작성 대상자는 직종 등을 고려해 선정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4명의 폭염 일지를 기사로 각각 재구성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써준 폭염 일지에는 신체 이상 여부, 더위 대처법 등의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기사에는 폭염 일지 외에 기자들이 참가자들의 무더운 일상을 동행 취재한 내용도 반영됐습니다.
소금으로 버티는 여름
햇볕 피해 새벽부터 일해도 열기… “농촌 폭염 대책 농작물 위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10년째 농사를 짓는 박기현(38·사진)씨 시계는 다른 야외 노동자들과는 달랐다. 8월6일 새벽 5시께 박씨는 비닐하우스에 심은 시금치에 물을 뿌렸다. 6시께 부추를 심은 다른 비닐하우스로 서둘러 갔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비닐하우스 안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부추를 베어야 해요.” 늦어도 오전 10시 전까지 이날 작업할 부추 300㎏을 베려면 쉴 틈이 없었다. 폭염경보, 야외 활동 자제 등을 알리는 안내 메시지를 휴대전화로 받아도 지금 해야 할 농사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가 여름에만 챙겨다니는 두건은 벌써 땀에 젖었다. 비닐하우스에서 태양을 피할 곳은 없었다. 다만 부추를 벨 때 비닐하우스 내부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도록 지붕에 검은색 가림막을 쳐 햇볕을 차단할 뿐이었다. 박씨는 실내 작업을 주로 하는 또 다른 비닐하우스로 부추를 옮겼다. 창문이 뚫려 있고 검은색 가림막으로 덮은 비닐하우스 지붕에는 온도를 낮추기 위한 소량의 물줄기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난해 비닐하우스에 심은 시금치는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다 녹아버렸다. 한 해 농사를 망친 박씨는 올해 작물을 부추로 바꾸고 별도의 실내 작업 공간도 마련했다. 작업 공간 중간에는 대형 선풍기 한 대가 홀로 돌아갔다. 흙을 털고 지저분한 부추를 솎아내는 단순 작업을 1시간 가까이 반복하던 박씨의 콧등과 턱에 땀방울이 맺히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땀이 스며든 옷은 박씨의 배와 등을 휘감았다.

오전 10시41분께 이미 34.7℃였다. 지난해 박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하다가 탈수 증상 때문에 중간중간 소금을 먹었다. “음식도 일부러 짜게 먹어요.” 한낮 비닐하우스 기온은 38℃(8월5일 일지)까지 치솟았다. 시금치 상태를 확인하려고 잠시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자마자 숨이 막히고 땀이 났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났다. 몸이 나른해졌다. 강한 햇볕에 피부가 따가웠다(8월9일 일지). 박씨는 비닐하우스 시설을 점검하던 일을 잠시 멈췄다.

자영 농업인인 박씨에게 정해진 휴식 시간은 없었다. 휴식 공간도 그늘과 주거 공간 정도였다. 실내 작업 공간 한쪽에 마련한 컨테이너 하나 크기의 주거 공간에 들어가 박씨는 에어컨 바람을 쐤다. 그래도 온몸에 열기가 남아 있었다. 박씨는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농촌의 폭염 대책은 농업 노동자보다는 농작물 중심이에요.” 안개 분무기 등 비닐하우스 설비도 한파나 병해 예방 목적의 설비를 폭염 때 용도를 바꿔 일부 활용해볼 뿐이다.

용인=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선풍기 트는 것도 ‘눈치’
노인 돌보고 청소·요리하면 37℃까지 올라… 환경 열악한 집 피하게 돼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8월12일 9호 태풍 ‘레끼마’가 흩뿌린 비에도 아랑곳없이, 강원도 춘천 효자동 12평 아파트 안 온도는 30도를 넘나들었다. 방문 요양보호사 이재옥(54·사진)씨가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돌보는 95살 할머니가 머무는 집이다. 발코니 바닥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는 할머니를 방 안으로 모시는 사이, 이씨 목덜미에 땀이 흥건하다. ‘규정상’ 반드시 걸쳐야 하는 앞치마가 축축한 더위를 더한다. “앞치마 재질이 두꺼워요. 옷을 두 개 입는 셈이니까 더 쉽게 땀이 차죠.”

이씨는 매일 다섯 집을 돌며 노인을 돌본다. 청소하고, 요리하고, 식사를 돕고, 그림 그리기 같은 인지치료를 한다. 활동은 좁은 노인의 집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그래서 ‘어떤 집을 배정받느냐’가 방문 요양보호사의 더위를 결정한다. 오래된 이 아파트는 발코니-큰방-주방-작은방이 일렬로 늘어선 형태다. 발코니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반대편 창이 없어 바람 통할 길목이 없다. 요리를 위해 가스불을 댕기는 순간, 갈 곳 없는 더운 바람이 집 안에 가득 찬다. 입맛 없어 보이는 할머니를 위해 호박전을 부치던 날, 집 온도는 37℃까지 올랐다(7월23일 일지). 그래도 쨍한 볕을 맞으며 마당 청소까지 해야 하는 집(8월5일 일지), 너무 낡아 여름이면 냄새가 심하게 올라오는 다른 집들보다는 사정이 낫다. “요양보호사들끼리도 덥고 열악한 댁은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어르신 뵙는 걸 좋아하는데다, 그런 이유로 외면당하는 노인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서 최대한 ‘싫다’는 소리는 안 하려고 해요.” ‘환경이 열악한 집을 맡게 돼도 추가 지원은 없다.’(8월6일 일지) 그저 ‘봉사 정신’으로 버틸 뿐이다.

‘누군가의 집이 일터’라서 더위 앞에서도 눈치가 보인다. “잠깐이라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싶잖아요. 근데 저 시원하자고 선풍기를 틀어서 전기 쓰는 것, 가족분들이 싫어하실 테니까요. 가끔 어르신들 옆에서 바람을 나눠 쏘이는 정도만 하죠. 요양 서비스를 하러 온 집이니 어르신이랑 둘만 있어도 옷을 편하게 입는 것도 죄송스럽고.” 대신 이씨는 더위를 참아내기 위해 얼음주머니를 가지고 다닌다. 목에 얹거나 끌어안고 있다보면 이 더위, 견딜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얼음주머니는 오후가 되면 모두 녹아버린다. 더위 속에 이씨의 걱정은 이내 돌보는 어르신을 향한다. 치매를 앓으며 감각이 떨어진 할머니는 이 더위에도 이불로 몸을 감싸고 유일한 냉방기기인 낡은 선풍기를 끈다. 오전까지 돌봄 시간이 정해진 이씨가 떠나고, 가족이 돌아올 저녁이 될 때까지 할머니는 이 집에서 홀로 더위를 날 것이다. 몸 곳곳에 땀띠가 들어찼다. “할머니 골반 쪽 땀띠가 없어지지 않아 걱정이에요.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은 무방비로 더위에 노출돼 있으셔서 걱정스럽습니다.”(7월25일 일지)

춘천=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계량기 숫자도 ‘어질어질’
이틀 동안 계량기 2천 개 확인… 쉴 틈 없이 걷고 또 걷고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가스검침원 김효영(49·사진)씨가 종종걸음과 달음질을 번갈아 치며 서울 광진구 자양동 주택가를 헤집는다. 계량기 위치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것은 건물 외벽 사이에 기묘하게 자리잡았고, 어떤 것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건물 안에 들어가야만 찾아낼 수 있다. 개중에도 에어컨 실외기와 맞붙은 계량기가 가장 난감하다. 열풍이 더위를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8월13일 서울에는 폭염특보가 내렸지만, 김씨는 다급한 걸음을 이어간다. 해야 하는 일 양이 정해져 있다. 가스 검침은 한 달에 세 차례 나눠서 하는데, 이날부터 이틀 동안 이씨가 사용량을 기록해야 하는 계량기가 2천여 개에 이른다.

가스검침원의 일은 계량기 검침, 가스 안전 방문 점검, 고지서 송부로 이뤄진다. 김씨는 4800가구 정도 가스비 정산과 안전관리를 책임진다. 검침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하루 3만6700보를 뗀 날도 있다(8월1일 일지). 그 걸음 사이 더위는 곳곳에 있다. 주로 난감한 위치에 있는 계량기와 이글거리는 태양이 괴롭히지만, 아파트 내부 검침도 복병이다. ‘여름날 통풍이 되지 않는 아파트 복도에서는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찾아든다.’(8월5일 일지) “그 괴로운 느낌을 말로 잘 표현을 못하겠어요.” ‘메슥거림과 멍든 것처럼 아픈 무릎 관절 통증’(8월8일 일지)을 달고 산다.

“그나마 낫다”는 올여름에도 동료들은 더위 앞에 자주 다치고 쓰러졌다. 몇몇 동료가 어지럼증을 못 참고 병원을 찾았다. 한 동료는 건물 틈, 전날 내린 비로 미끄러운 철망을 딛고 계량기를 살펴보다가 떨어져 큰 타박상을 입었다. “더위에 몸이 지쳐 정신이 혼미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김씨 역시 지난해 여름, 노동조합 기자회견에 참석할 시간을 내보려고 새벽 5시부터 일하다 막상 기자회견장에서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은 일이 있다. 병원에서는 모두 ‘온열 질환’이라고 했다. 회사에 이야기해봤자 별다른 반응은 없다. “폭염경보가 내리면 되도록 일을 쉬고 좀 선선해지면 마저 하라”는 정도 이야기를 듣는다. “하나 마나 한 얘기”다. 수천 가구를 제시간에 검침해야 하고, 언제든 고객이 ‘지금 집에 있다’고 연락하면 귀한 안전 점검 기회를 놓칠까봐 다급히 달려나간다.

더위를 피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물을 챙겨 다니자니 무게가 부담스럽다. 은행이든 편의점이든 잠깐이라도 더위를 피해 쉴 곳을 찾아가는 것도 다시 관리 구역으로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의 특성상 더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김씨도 잘 안다. “그래도 검침원 한 사람이 책임지는 가구 수는 좀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가스가 새는 집이 많아요. 가스 안전을 책임지는 우리가 이 더위에 몸이 힘들고 다급하다고 소홀해지면 진짜 사람 다치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을까봐 겁나요.”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전봇대 위 50℃
회선 설치 위해 높은 곳 오르면 더위에 속 울렁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가정집에 방문해 통신사의 인터넷 회선을 설치하는 하청업체 기사 함지훈(40·사진)씨는 방문하는 집에 따라 날마다 일하는 환경이 달라진다.

8월5일 오후 3시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다세대주택 뒤편 담벼락에서 함씨는 허리를 접은 채 인터넷 회선을 연결 중이었다. 집 안팎으로 회선을 연결하기 위해 이미 3층 계단을 세 차례나 오르락내리락해 체력이 바닥났다. 기온은 34℃까지 치솟았다. 함씨는 하청업체에서 준 검은 토시로 연신 얼굴을 닦았다. 여름 유니폼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현기증이 나고 속이 메슥거렸다.

작업을 마친 함씨는 자가용을 타고 곧장 다음 집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 다세대주택은 또 다른 노동환경이었다. 집 주위를 뛰어다니며 인터넷 회선 위치를 살피던 함씨는 건물 외벽에 접이식 사다리를 걸쳤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함씨는 회선 끝을 다듬고 잘라 각각 연결했다. 금세 온도기록계에 찍힌 온도는 35.5℃로 올라갔다. 토시로 훔쳐내지 못한 땀방울은 함씨 눈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다리를 타고 전봇대 위로 5m쯤 올라가 회선을 연결해야 했던 8월8일, 함씨의 온도기록계는 50℃를 찍었다.

차 트렁크에는 아침에 챙겨온 생수 3통이 있었다. 함씨가 35℃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물 마시기(8월1일 일지)였다. 오전, 오후 잦은 소나기로 습기가 많았다. 실외 작업을 하던 함씨는 생수 한 통을 단숨에 마셨다. “고객과의 약속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보면 휴식 시간은 불규칙해요.” 기온은 39℃까지 뛰었다. 실외 작업하다가 현기증이 난 함씨는 차에서 잠시 에어컨 바람을 쐤다(8월5일 일지).

설치 기사의 노동시간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하지만 방문 일정을 잡는 일은 설치 기사에게 권한이 없었다. 통신사 콜센터에서 고객과 방문 일정을 정한 뒤 해당 지역 하청업체에 전달하는 구조다. 정오부터 1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언제든 일했다. 그나마 비가 오면 감전 등 안전상의 이유로 방문을 접고 설치 작업을 중단했다. 반면 폭염특보가 발령돼도 시간당 10~15분씩 규칙적인 휴식 시간 배치나 근무시간 조정 등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이행 지침은 적용되지 않았다.

방문 일정 사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하청업체 사무실에서 쉬어도 되지만 교통 체증, 동선, 이후 일정 등의 이유로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함씨는 건물 주차장이나 그늘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쉬곤 했다. “내 차가 전기차여서 엔진 소음이 적고 연비 걱정이 덜해 차에서 쉴 수 있는 편이에요.” 내연기관이 있는 차를 타는 동료들은 기름값, 엔진 시동 소음과 매연 때문에 민원으로 차에 길게 머물지 못하고 근처 정자나 놀이터를 전전한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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