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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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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15곳을 다녀보았지만

① 너무 까다로운 LH전세임대
등록 2019-03-23 06:20 수정 2020-05-02 19:29

등 떠밀려 세상 밖으로
복잡한 제도 속 성긴 울타리의 문제 5
“저희 집(아동양육시설) 아이들도 그동안 많이 연결해드렸어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던데요, 뭘.” 은 ‘만 18세 자립’의 문제점을 짚는 기사를 쓰려고 경북에 있는 한 아동보호시설에 자립생 인터뷰 섭외를 요청했다. 보육교사는 대뜸 “지금까지 그런 기사는 많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만 18세 보호 종료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정부도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론이 아무리 보도해봐야 ‘표’도 안 되는 한 줌 최약계층을 위해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설 리 없다는 푸념이 배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문제라면 이제라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지만, 보육교사의 체념이 쉽사리 바뀌기는 어려워 보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만 18세 자립의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고 설명했다. “일반 가정 아이들은 보통 첫 직장을 얻는 시기인 27~28세 정도에 자립한다. 청년기본법에서는 34세까지 지원하자는 논의도 있다. 18세 자립이 너무 가혹하다는 인식이 커졌지만, 보호 기간을 몇 살까지 늘려야 하는지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18세 아이들을 맨몸으로 등 떠미는 건 아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지원 정책이 가다듬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소년소녀가정 등 전세주택지원(LH전세임대주택·최대 9천만원), 자립정착금(최대 500만원), 아동발달지원계좌(CDA·디딤씨앗통장·후원자가 최대 월 4만원씩 요보호아동 계좌로 저축하면 지자체에서 매칭해 만 18세까지 같은 금액을 추가 적립해주는 사업), 자립생활관, 자립전담요원 등을 지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4월19일부터 12월까지 시범사업으로 2017년 5월 이후 보호 종료된 청소년에게 자립수당 월 30만원을 주기로 했다. 보호 종료 청소년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이 기간 5천여 명이 수당을 받게 된다.
자립 지원 정책이 양적으로 크게 늘었지만, 그룹홈이나 위탁가정보다 아동복지시설이 우선이다. 지자체별로, 또 시설장의 후원 유치 능력에 따라 지원금에도 편차가 크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어디 사는지’가 복지를 좌우하는 셈이다. 더구나 행정절차에 서툰 사회 초년생이 보호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원 혜택을 챙기기엔 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
2019년 3월 현재 정부의 대표적인 자립 지원 정책이 보호 종료 청소년에게 얼마나 ‘성긴 보호망’인지 찬찬히 뜯어보려 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 하나를 자립시키기 위해 세심히 필요한 것들을 챙기듯, 나라가 부모 없는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다시 한번 기대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기사를 연재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3월13일 오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가정위탁지원센터 담당자가 가정위탁 보호 종료자인 스물한 살 이다현(가명)씨에게 쌀 한 포대를 지원하러 가는 길에 이 동행했다. 이씨의 허락을 받고 4층 연립주택 계단을 올라 옥탑방에 도착했다. 옥탑방 문이 열리자 계단보다 더 찬 냉기가 덮쳤다. 창문이 꽁꽁 닫혔고 창틀은 청테이프로 꽉꽉 틀어막아놨지만 거센 외풍을 당해내지 못했다. 난방비를 아끼려 보일러를 꺼둔 탓에 방바닥에 발을 내려놓기 무섭게 발이 얼기 시작했다. 이씨 방에 눈에 띄는 물건이라곤 1인용 매트리스와 작은 빨랫대, 러그 한 장과 협탁 하나, 생수 한 상자 정도가 전부였는데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 이씨와 반려견의 보금자리는 그렇게 좁고 춥고 위태로웠다.

“운 좋게 잡은 1등급 생명줄”

이씨가 네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그 뒤로 부모와 연락이 끊겼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가 ‘대리양육가정위탁’으로 이씨 자매를 키웠다. 이씨는 만 18세 보호 종료 뒤에도 한동안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지난해 7월 자립했다. 이씨처럼 ‘보호조치가 종료되거나 해당 시설에서 퇴소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소년소녀가정·대리양육가정·친인척위탁가정·일반가정위탁·아동복지시설퇴소자로 가구당 월평균소득 이하인 자’는 소년소녀가정 등 전세주택 지원(LH(한국토지주택공사)전세임대주택·이하 LH전세)을 받을 수 있다. 최경옥 청운대 사회복지학과 외래 교수가 (사)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의 협조로 연구한 논문 ‘그룹홈 퇴소 청소년들의 홀로서기 준비과정 경험’을 보면 LH전세에 대해 “주택 지원을 받아 거주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물에 빠졌을 때 운 좋게 1등급 생명줄을 잡고 살았다”고 표현한다.

이씨는 자격 조건에 부합하는데도 ‘1등급 생명줄’을 잡지 못했다. 이씨가 사는 경기도의 한 시청 소재지에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LH 조건’에 맞는 전세를 찾는 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세자금이 입금되기 전 본인이 미리 당겨서 내야 하는 계약금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씨는 구해진다는 보장도 없고 구한다 해도 계약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LH전세를 찾는 일에 오래 매달리지 않고 자비 월셋집을 택했다. 이씨는 “주거지원 제도가 있지만 당장 집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제도가 너무 멀다”고 말했다.

2월23일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김규석(가명)군은 최근까지 인턴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병원 근처에서 LH전세를 알아봤다. 혼자 부동산 15곳을 돌았지만 “집주인이 허락을 안 해준다”는 말만 들었다. 다행히 시설 바로 옆 부동산에서 전세보증금 8천만원에 낡은 빌라 3층을 구했다. 시설 친구들이 대부분 그 동네에 몰려 사는 이유다. 김군은 “시설에서만 살다보니 어떤 집이 좋은지 몰라서 보여주는 집 하나만 보고 계약했다”며 “퇴소생이 많아서 자립담당관 선생님들이 함께 집을 보러 다녀주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룹홈에서 자립한 지 5년차에 접어든 스물네 살 김정우(가명)씨는 시설 자립생치고는 드물게 나름 능력도 있고 운도 좋은 편이었다. 김씨는 LH 지원금의 최대치를 지원받고 저축해둔 돈까지 보태 서울 서초구에 반전세를 구했다. LH전세로 벌써 세 번째 계약이다. LH전세 전문가인 김씨도 “어려움이 엄청 많았다”며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수도권의 경우 LH 전세지원금은 최대 9천만원이다. 광역시 7천만원에 비하면 큰 금액이지만 수도권에서 일자리가 많고 교통이 나쁘지 않은 지역에 ‘전세’를 구하려면 ‘원룸’ 얻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어디든 싼 지역으로 가서 집을 구한다 쳐도 선순위 융자, 불법 건축물 유무, 건물 용도 등 LH 조건을 맞추기 힘들다. 가격이 맞고 조건에 부합한 집을 찾는다 쳐도, 부동산과 집주인이 꺼린다.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 제출 등 까다로운 서류 절차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수고에도 집주인 처지에서는 LH 지원자에게 집을 빌려줄 이유가 없다. 집주인이 선뜻 빌려주는 집은 보통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낡은 빌라나 반지하다. 곰팡이·누수는 보호 종료 자립생들이 늘 각오하는 일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집주인 수고스러운 일에 빌려줄 이유 없어

김정우씨는 집을 알아볼 때 부동산 30곳은 가본다. 그래봐야 실제 둘러볼 수 있는 집은 서너 개 정도라고 했다. 계약할 때 LH에서 서류가 20장 정도 날아오는데, 중개업자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7~8장이나 된다고 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계약 당사자와 법무사, 중개업자, 집주인이 만나서 계약서를 쓰는 데만 한두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최소 2주 이상이던 LH 심사 기간이 최근 2~3일로 단축된 게 큰 다행이다.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 그사이 집주인이 다른 세입자에게 집을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LH전세는 세 차례, 6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첫 계약을 스무 살 전에 하면 총 네 번, 8년까지 가능하다. 한번 계약한 집을 재계약할 때는 큰 문제가 없다. ‘이사’하는 순간 첫 계약보다 더한 난관에 부닥친다. 김씨는 “살던 집을 뺀 뒤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하는데, LH 행정절차가 복잡하다보니 새 집 입주일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김씨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 살던 집은 나갔는데 살 집을 못 구해 중간에 일주일이 떴다. 결국 이삿짐 보관 이사를 해야 했다. 바쁘고 없는 살림에 이사 두 번, 비용 두 배의 부담을 감당한 셈이다.

LH전세는 만 20세까지 무상 지원되지만, 그후론 최대 2% 이자를 내야 한다. 9천만원을 지원받으면 한 달에 15만원을 내야 한다. 김정우씨는 “일터에서 가까운 서초구에서 9천만원짜리 전세를 구할 수가 없어서 모아둔 3천만원을 보태 보증금 1억2천만원에 월 30만원짜리 반전세를 구했다. 한 달에 주거비로만 월세 30만원과 LH 이자 15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수도·전기·가스도 최소 10만원 이상은 나온다. 식비 빼고 생활비가 숨만 쉬어도 50만원이 넘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보호 종료 청소년들이 LH전세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현실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자립지원단이 지난 1월4일 공개한 ‘2016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를 보면, 종결 5년 이내 응답자 1134명 가운데 LH 거주 비율은 33.9%(368명) 수준이다. 나머지는 월세 28.1%(304명), 자립지원시설 7.4%(80명) 순이다. 다만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년에 2천 명 이상 총 1만 명이 넘는 보호 종결 5년 이내 자립생 중 설문 응답자가 너무 적고, 자립에 성공한 사람일수록 설문 응답률이 높다는 경향성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 LH전세 이용률이 훨씬 낮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구임대 1순위 부여하면…”

분당 샘물교회 최상규 집사는 5년간 아동양육시설 퇴소자를 돕는 ‘선한울타리’ 사역을 해왔다.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국민소통 공간 ‘광화문 1번가’에 시설 자립생 주거 지원과 관련한 정책제안서를 올렸다. 최근 전세보증금 인상, 심사 기간 단축 등 LH전세 개선 조처 가운데 상당수가 이 제안서에 담겼다. 그는 “LH전세를 구하지 못한 자립생에게 월세를 지원하고, 1인가구라 자격 순위가 밀리는 자립생에게 영구임대주택 1순위 자격을 주면 보호 종료 청소년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주택 지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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