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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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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라는 터널에서 진짜 모녀가 되었습니다

4년 만에 자해로부터 자유로워진 서현이,

딸 손 꼭 잡고 버틴 엄마가 들려주는 기다림의 이야기
등록 2018-11-18 19:22 수정 2020-05-02 19:29
청소년 자해. 문제아를 둔 남의 집 일로만 알고 신경도 안 썼는데, 내 아이가 자해를 하고 있었다면? (교육부의 올해 초 조사 결과 중고생 최소 7만 명이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기우’가 아니다.) 충격과 공포가 밀려올 테고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심지어 공부 잘하고 친구 잘 사귀고 ‘부모의 자랑’이던 아이가 부모 몰래 자해를 하고 있었다면? 아이가 자해에 이르기까지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부모도 큰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감에 압도될 것이다.
부모를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자해의 지속성이다. 아이가 자해를 완전히 멈추게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자해 치료법으로 각광받는 변증법적행동치료(DBT) 창시자인 마이클 홀랜더 교수는 저서 에서 “이 치료법을 실시하는 3~6개월 안에 자해가 줄어들었다(‘멈췄다’가 아니다). 모든 치료는 몇 걸음 전진과 한 걸음 후퇴를 반복하는 과정임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이 만난 아이들 중엔 초등 3~4학년 때부터 고교 혹은 대학 때까지 자해가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많았다.
부모의 노력에도 자해를 그만두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상당수 부모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부모로서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지금까지 했던 모든 부모 역할을 회의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절망한 부모는 만사를 팽개치고 아이의 자해를 멈추게 하는 데만 매달리거나, 정반대로 상황을 회피하며 아이를 포기한 채 다른 활동에 몰두하기도 한다.
부모가 먼저 이렇게 심리적으로 무너지면 아이는 자해를 멈추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정’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홀랜더 교수가 “자해하는 아이가 부모와 대화하면 불안이 높아지고, 점점 감정 조절 불능 상태가 되어갈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에게 치료자와 연락할 수 있다고 조용히 상기시켜주라”고 말한 이유다.
‘청소년 자해 3부작’ 중 2부는 ‘자해를 모르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덜어주려 기획됐다. ‘착한 반장 딸’의 자해를 4년간 함께 겪으며 변화해온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자해 발각 뒤 ‘천재 엄친딸’에서 ‘짐승새끼’가 된 고통을 호소하는 딸을 통해 교훈을 찾기 바란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조언은 자해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고 부모와 아이들이 지난한 자해 치유의 첫발을 내딛도록 안내할 것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허서현 엄마(이하 엄마) (기자에게) 서현이 지금은 ‘공신폰’(스마트폰 처럼 생겼으나 인터넷과 앱 설치 기능을 차단한 휴대전화) 쓰거든요. 얼마 전에 저더러 “내 폰에 옛날에 찍은 자해 동영상 다 다운 받아놨어” 이러는 거예요. 이제 그만 삭제하라고 했더니 왜 “추억까지 날려버리고 자해를 없던 일로 하라고 하냐, 내 추억이야” 그러더라고요. 원래 추억은 좋게 기억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자해했던 기억이) 왜 좋을까 몰라요.

허서현(17·가명) 엄마, 자해한다는 건 그만큼 외롭다는 거야. 친구들로는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있는데, 그게 자해로는 일시적으로 채워져. 그러니까 계속하는 거고. 자해는 외로웠을 때 내 추억이야. 절대 지울 생각이 없어. 어쨌든 내가 이제 ‘자해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된 거 아니야.

엄마 서현아, 엄마의 걱정이 기우인가? 휴대전화에 자해 동영상 있으면 네가 그거 보고 또 하고 싶으면 어쩌나 걱정인데…. 너 그거(자해 상처) 기자님 더 보여드려, 여기서부터 여기. (눈 흘김)

서현 이거 팔찌라고 하거든요. 팔찌 한 건데.

기자 팔찌요?

서현 (자해 상처로) 팔 한 바퀴 쫙 두르는 거. 엄마, 근데 이제 자해 동영상 봐도 별로 안 하고 싶어. 봐도 아무 생각 안 들어. ‘내가 이런 걸 했구나’ 정말 그게 다야. 여행 가서 사진 찍어온 추억처럼.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아니 ‘노력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니까.

상처를 긍정하게 된 딸

11월2일 저녁 동대구역 근처 커피숍에서 과 인터뷰한 서현 모녀는 ‘서현의 자해’라는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내내 잡담하듯 화기애애했다. 자녀가 자해를 하고 부모는 놀라서 숨 넘어가는 영화 속 ‘클리셰’(상투적인) 장면은 없었다. 모녀는 두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인터뷰 장소에 걸어나왔고,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서현 엄마가 이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서현의 자해를 ‘발견’한 4년 전 그날 이후, 서현이 자해와 입원·퇴원을 반복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도 엄마는 결코 딸을 놓지 않았다. 서로 꼭 붙어 견뎌온 지난 세월이 어느덧 모녀의 깊은 상처에 딱지를 만들고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중이었다. 모녀가 끈기 있게 대화하고 치료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 지난 4년의 이야기는, 다른 자해하는 청소년 부모에게도 소중한 간접경험이 될 것이다. 서현 모녀의 지금 모습은, 아마도 자해하는 아이와 부모가 그토록 바라는 ‘미래’일 것이기 때문에.

기자 서현은 언제부터 자해를 시작했어요?

서현 그전에 했던 건 자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칼을 댄 게(손목긋기·리스트컷) 자해라면 중학교 1학년?

엄마 우리 여행 갔다 와서 경찰 왔을 때, 그 자해가 처음이야?

서현 그보다 한 달 전쯤에 시작했는데. 그때 한창 인터넷이랑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많이 했는데 우연히 트위터에서 자해 계정을 본 거예요. 그전엔 스트레스 받으면 손톱으로 살을 긁어서 딱지 만드는 정도였는데. 그것도 자해라면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그때는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진짜 학원을 많이 다녔는데, 자주 째고 그랬어요.

기자 어머님이 서현이 공부 많이 시키셨나봐요? (웃음)

엄마 수성구(대구의 강남) 학부모잖아요. 서현이 이런 문제를 나타내기 전에는 워낙 삼 남매 공부에 관심 많았으니까, 학원 많이 보냈죠. 양육의 중심은 학원 보내고 공부 시키는 데 있었죠. 서현이 이런 문제를 보이면서, 서현의 남동생(서준·가명)에게는 ‘공부도 할 놈이 하고 못할 놈은 못한다’는 마음으로 별로 강요 안 해요. 엄마가 전보단 서준한테 공부하라고 안 하잖아, 그치?

서현 제가 자해 계정을 운영했는데, 아! 팔로어가 늘어가는 기쁨이란. 팔로어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늘어요. 심하게 자해한 사진 같은 거 올리면 확 늘어요. 제가 한때 팔로어 500명 됐거든요. 팔로어 늘리려고 보디스티치도 하고…. 누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줬구나 싶죠. 사실 답답할 때 자해하면 생각보다 별로 안 아프고, 그걸 찍어 올리면서 위로받는 거죠.

기자 보디스티치가 뭐예요?

서현 (웃음) 말 그대로예요. 바늘에 실 꿰어서 몸에 스티치(바늘땀)를!

엄마 어우 야아~.

기자 부모님이 공부를 많이 시키신 건 서현한테 관심이 많으셨다는 뜻일 텐데, 부모님 관심만으론 부족했나봐요.

서현 그때가 딱 안 좋은 시기였어요. 아빠가 너무 바쁠때 인데, 엄마가 도와주시느라 바빠서 저희한테 신경을 잘 못 쓰셨어요.

엄마 남편 일에 같이 ‘올인’(다 걸기) 하면서 바빴어요. 서현도 초등 고학년이니 잘할 거라고 생각했죠. 전화로 “학원 갔다 왔니?” 이런 것만 묻고. 아이들은 그때 부모가 무관심했다고 생각하죠.

서현 친구는 많았는데 외로웠어요. 중1 때는 반장이었고, 2~3학년 때 진짜 친구들이랑 잘 놀았거든요. 근데 2~3학년 때 학교가면 놀 친구는 많은데, 학교 가기가 싫었어요. 수업 시간에 앉아있기가 너무 싫었어요.

엄마 공황장애가 같이 왔어요.

서현 그건 계기가 아닌 것 같고, 자해는 우울증 오면서.

기자 공부 말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의 원인이랄까… 그런 게 있었나요?

엄마 저희 집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근데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상담치료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저희 마음대로 아이들을 이끌어가려고 했어요. 아빠가 공부 많이 하라고 아이들을 좀 달달 볶았고, 욱하는 성격도 있었어요. 성격이 강한 큰딸이 아빠한테 대들다가 많이 맞았어요. 서현은 마음이 약하고 착해서 언니가 맞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나봐요. 자기는 맞지도 않았는데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서현이 힘들다고 말을 안 하니까 성‘ 격 좋은 딸, 착한 딸’로만 알고 있었죠. 중1 때 학교 심리검사에서 우울·자살충동이 높게 나왔다고 위센터(교육청 상담센터)에 연결해줬고, 정부에서 4회 상담을 지원해주더라고요. 그 뒤에는 저희가 병원에서 1년 정도 상담치료를 받게 했어요. 처음엔 ‘상담하면 좋아지겠지’하는 마음에 그냥 상담만 보냈어요. 중2 말쯤에 공황장애가 오고 자살충동도 높아져서 입원치료를 권유받았어요. 그때부터 정말 (서현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남편과 함께 방법을 찾아나갔어요.

‘착한 딸’이 곪아가는 걸 몰랐다
자해 청소년의 그림.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이 본인 동의를 받아 제공.

자해 청소년의 그림.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이 본인 동의를 받아 제공.

서현 ‘이생망’ 있잖아요. 사소한 거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했어요. 주스 하나 엎질렀는데 ‘망했어!’ 이런 거? 누가 싫은 소리 한번 하면 ‘저 사람과 나는 멀어질 거야’ 싶고. 요즘 다들 그런 거같아요. 그런 절망적인 거를 이겨내는 힘이 없는 듯해요. 너무 사소한 거에 다들 절망하니까. 근데 부모님은 저 말고도 신경 쓸 사람이 많았어요. 언니도 맨날 뭐라고 하는데 저까지 그러면 안 될것 같아서. 그러다 트위터 커뮤(자신만의 캐릭터 ‘자캐’를 창조해 온라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커뮤니티) 뛰면서…. 지금은 커뮤에서 자해·자살 올리면 사람들이 ‘미쳤냐’고 그런 분위기이긴 한데, 그땐 ‘정신병원 커뮤’ ‘자해 커뮤’ 많았어요.

엄마 저는 엄마니까 아이의 문제를 다른 데 핑계 대고 싶잖아요. “우리 딸이 자해하는 건 커뮤 탓”이라고 그랬어요. 저희 책임이 크죠. 근데 저희 책임은 책임이고, 자해 계정에 심한 자해 사진 올리면 ‘좋아요’ 누르고 부추기는 건 아무래도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 같아요.

기자 어머님은 서현이 자해하는 거 언제 아셨어요?

엄마 중2 때 알았나? 아까 서현이 중1 때 자해를 시작했다고 얘기한 게 중2 때예요. 트위터에 자해 사진 올린 거는 작년? 재작년? 근데 지금 이런 대화, 제가 서현에게 이런 거 물어볼 수 있는 대화가 그땐 어려웠어요. 이렇게 편하게 물어본 것도 서현의 증상이 좋아지면서예요.

기자 마지막으로 자해한 건 언제예요?

서현 올해 5월? 고등학교에 힘들어하는 아이가 많았어요. 학교에 있는 게 힘들어서 친구랑 같이 화장실에서 자해했어요. 저희 학교 기숙사 40명 중에서 5명이 자해했어요. 서로 자해하는 거 알고 서로 상처 치료해주고. ‘이게 뭔 짓인가’ 싶긴 했지만, 자해하면 친구 누구도 말릴 수 없고 아무도 안 말리는 분위기였어요. ‘모든 걸 존중해준다’ 뭐 그런 거? 자해하든 자살하든 네가 원하는걸 존중해주겠다는!

엄마 너흰 그걸 존중이라고 생각한 거야?

서현 우리는 존중이었지. 전 지금도 ‘누구나 죽을 권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직도 우울증이 치료가 안 됐구나.

서현 엄마, 그건 우울증이 아니지, 내 신념이지.

엄마 저희가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 있게 된 건 서현이 정신과 치료를 하면서예요. 남편과 제가 자해에 대해 공부도 하면서 철칙을 세웠어요. ‘자해하는 거 이해는 하는데, 자해하면 입원이다. 입원해서 치료받는다’라고.

서현 부모님이 강제로 입원시킨 것은 아니고요, 제가 입원하고 싶어서 했어요. 자해를 안 하려면 ‘정서적으로 안정될 곳’이 필요해요. 그게 집은 아닌 것 같고, 병원에 가면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처음엔 병원도 안 편했는데, 갈수록 편하게 쉬었던 것 같아요.

기자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어떻게 엄마와 관계가 좋아졌나요?

서현 그전엔 부모님이랑 엄청 싸웠죠. 근데 엄마 아빠가 바뀌려고 많이 노력한 것을 이제 알아요. 엄마 아빠의 노력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억지로 인식할 필요 없이 ‘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껴졌죠.

기자 부모님이 어떻게 노력하셨는데요?

서현 제가 힘들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시켰어요. 제가 “싫다”고 한마디 하면 바로 “그래 하지 마” 그러셨어요. 저 학교도 안갔거든요, 그래서. (웃음)

엄마 서현은 지금 휴학 중이에요.

남편과 자해 공부하면서 ‘철칙’ 세워

기자 서현이 본격적으로 괜찮아진 건 언제부터인가요?

엄마 서현은 진짜 어려운 환자였는데, 거의 마지막에 만난 경북대 정운선 선생님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정말 끝까지 포기 안 해주신 거 너무 감사하고요. 저희는 부모니까 당연히 포기 안 하지만 “의료진은 정말 대단하다”고, 의사인 애들 아빠하고도 얘기해요. 다른 병원에 가라고 미룰 수도 있었는데, 입원할 때마다 도와주시고. 서현이 옛날에는 지루하고 힘들면 커뮤 찾고 친구 만나는 앱 찾고 그랬는데, 학교 안 가는 지금은 지루하면 운동해요. 옛날에는 친구가 꼭 있어야 할 것같이 행동했다면, 지금은 그냥 잘 지내주고 있어요. 물론 공부는 안 해요. 저희는 더 기다릴 거예요. 공부를 해봤던 아이라. 물론 안 해도 상관없어요. 학교는 (아직) 힘들어?

서현 응. (학교 다니는) 주희(가명)는 아직도 자해하잖아. 사실은 한 번 만났어. 나보고 담배 피우라고.

엄마 술·담배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서현이 거부를 못해요.

서현 모든 엄마가 그렇게 말해요. (웃음)

엄마 아, 내 딸은 안 그런다고? 그럼 친구가 권하는 게 아니라 네가 권하니? 서현이 탈선을 불편해한다는 건 엄마의 착각인가….

서현 나도 (담배) 한 대 피웠어.

엄마 (끄덕끄덕) 6학년·중1·중2 이때가 심리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는 시기인 거 같아요. 딸이라… ‘여자애들은 사고 안 친다’고 생각했어요. 서현은 학원도 잘 다니고 반장 맡을 정도로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했으니까. 근데 나중에 같이 걸으면서 서로 속마음을 얘기했는데 서현이 “엄마, 나 저기서 친구들이랑 담배 피웠어” 그러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딸이었더라고요. 엄마 아빠 모르게 탈선을…. 뭐, 사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현 자해를 한창 할 땐 엄마한테 얘기할 생각을 못했어요. (상태가 악화됐던) 1년의 상담 기간에 부모님이 더 심각성을 알아줬으면 했죠. 말할 수 없는 환경이니까 자해를 했겠죠? 그리고 ‘엄마한테 한번 말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면 그때부터 슬슬 자해를 안하게 되는 것 같아요. 치료를 4년 받으면서 생각에 여유가 생겼어요. 모두에게 다 사랑받을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전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거든요. 엄마 아빠랑 괜찮아지면서, 가까워지면서, 더는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는 거죠.

기자 어머님도 서현이 상담받을 때 함께 가시나요?

엄마 아, 저는 따로 치료를 받아요. 지금은 편안해졌고요. 서현이 정말 힘들게 할 때는 저도 너무 답답해서 신경정신과 상담치료를 받았어요. ‘얘가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려고요. 전에는 그냥 의무적으로 교회에 나갔는데, 서현이 아프면서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오고, 서현도 괜찮아질 것 같고. 서현이 학교를 안 다니면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 것도서로에게 큰 도움이 됐어요. 지금은 서현이 1순위고 서현이 어디가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같이 가요. 사춘기인 중1 막내는 좀 불만이 있긴 해요. 누나만 뭐든지 오케이고 둘이 싸우면 자기한테만 뭐라 한다고. 제가 그래요, 누나는 좀 아프니까 대신 엄마 아빠가 너한테 많이 져주겠다고.

기자 자해하는 청소년의 부모님들께 해주실 말씀 있을까요?

엄마 처음에는 교과서처럼 공부한 대로 안 돼요. 저도 처음엔 안 됐어요. 서현이 자해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초반 1~2년은 얘랑 진정한 대화도 잘 안 됐어요. 많이 다듬어져야 마음이 준비돼요. 사실 저희도 처음엔 서현에게 억지로 교회 가보자, 뇌수련 해보자, 이것저것 해보자 그랬는데, 자기 마음 없으면 억지로 할 수 없어요. 지금도 기다리는 거거든요. (서현에게) 정말 기다리는 거밖에 없네? (다시 기자에게) 스스로 변하기를 기다려주고, 다만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만 주고 있어요. 서현이 지금 공신폰 쓰고 카카오톡도 안 하잖아요. 전에는 휴대전화 없애는 문제로 여러 번 갈등했어요. 요즘은 스스로 안 해요. 자해 계정도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는 끊을 수 없어요. 서현도 스스로 깨달은 거 같아요. 이게 있으면 난 바뀌지 않는구나.

서현 빨리 치료하는 테크닉은 없고요, 시간이 약이에요. 그렇다고 아이한테 “시간이 약이야” 이러면서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건 죽게 만드는 거고요. 시간이 약인 건 맞는데, 그 시간을 잘 지낼 수 있도록 부모님이 곁에서 도와줘야 해요.

엄마 옛날에는 서현이 자해할까봐 제가 더 전전긍긍하고, 서현이 자해하면 제가 더 난리쳤어요. 지금은 “자해했어? 자해할 수 있지, 힘들면. 그럼 입원하자. 좀더 편안하게.” 이래요.

정말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기자 서현은 자해하는 친구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 있어요?

서현 제가 자해를 상당히 재밌게 했기 때문에, 저는 자해하는 친구한테 “너 어디까지 해봤니?” 물어요. 근데 재밌다고 언제까지나 자해를 할 수도 없고, 옳은 방법이 아니죠. 다른 방법이 많은데, 굳이 우리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할 이유가 이젠 없어요.

엄마 서현의 상태가 좋아진 데는 분명 꾸준한 치료가 도움이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 상담치료를 하면서, 서현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생각할 시간을 준 거예요. 자해하는 아이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고 아무것도 안 해주면 저절로 낫는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냥 시간이 4년 흘렀다고 어느 날 딱 “난 고등학생 됐으니 자해 안 한다” 이렇게는 안 돼요. (서현에게) 네가 아팠어, 엄마 아빠가 그냥 놔뒀어, 그럼 지금 네가 어떻게 됐을까?

서현 죽었겠지.

기자 서현은 치료 전과 후로 성격이나 자아상의 변화랄까, 그런 게 있었어요?

엄마 아, 그건 제가 느껴요. 서현이 타인을 대할 때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옛날엔 남들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눈치를 봤다면, 요즘엔 ‘내 쪼(조·장단)대로 하겠다’는 게 생겼어요. 얼마 전 2박3일로 스마트폰 중독 치료 쉼 센터에 갔는데, 서현이 “여기 있는 사람들 다시 볼 건 아니니까 나 하고 싶은 대로 재밌게 하지, 뭐” 이러더라고요.

서현 내 ‘쪼’대로~!

대구=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자해 청소년 도움받을 수 있는 곳


1) 청소년 위기 문자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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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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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공 청소년 상담기관: 각 누리집에서 해당 지역 검색
전국 Wee센터 www.wee.go.kr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www.kyci.or.kr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 상담 가능)
www.nmhc.or.kr
*성남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751-2445) www.withchild.or.kr
*고양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908-3567~8)
www.goyangwithus.co.kr

4) 의료기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kacap.or.kr에서 해당 지역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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