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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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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넘어 제재 넘어 평화와 비핵화로

한반도 평화 위한 큰 진전에도 안보리와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에 시큰둥

제재 해제 또는 유예는 북한에 비핵화 과정 빠르게 밟아나갈 동기 줄 것
등록 2018-09-22 08:23 수정 2020-05-02 19:29
‘대화가 시작됐다. 최대의 압박은 수명을 다했다.’ 9월1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여전히 ‘대북제재 고수’를 강조한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중국 등은 ‘제재 유예 검토’를 제안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화가 시작됐다. 최대의 압박은 수명을 다했다.’ 9월1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여전히 ‘대북제재 고수’를 강조한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중국 등은 ‘제재 유예 검토’를 제안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섯 달 만에 벌써 세 번째다. 다시 만난 남과 북의 두 지도자는 오랜 친구인 양 얼싸안았다. 가을 문턱에 선 평양 시내는 온통 꽃술로 화사했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한반도 냉전사의 마지막 장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평창에서 평양까지 220여 일, 봄에 판문점에서 뿌린 화해의 씨앗이 가을 평양에서 평화의 열매를 맺었다. 남과 북은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적대의 과거와 결별했다. 두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 오른 것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남북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웅변한다.

남북이 북-미 협상의 동력 부활시켜
정상회담 이틀째인 9월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4·27 판문점 정상회담 기념 메달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기념주화를 선물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상회담 이틀째인 9월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4·27 판문점 정상회담 기념 메달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기념주화를 선물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9월19일 오후(미국시각) 성명을 내어 이렇게 반겼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같은 중요한 약속에 기반해, 미국은 북-미 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뉴욕에서 만나자고 초청했다. 또 북쪽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되도록 빨리 만날 것을 요청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는)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과정으로 북-미 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이 손잡고,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석 달 가까이 주춤하던 북-미 협상의 동력을 부활시킨 게다.

갈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다시 시작하는 북-미 협상이 쉬울 리 없다. 사상 첫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관계’를 약속하고도, 북-미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켜켜이 쌓인 불신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개막을 불과 몇 시간 앞둔 9월17일 오전(미국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미국의 요구로 소집된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는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러시아가 북한이 불법으로 정유 제품을 획득하는 것을 돕고 있다.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대북제재를 위반한다는 증거가 있다. 11차례나 대북제재 결의에 찬성했던 러시아가 이제 와서 되돌아가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러시아가 우리를 속여왔고, 이제 덜미가 잡혔기 때문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가 공개한 2시간 남짓한 회의 영상을 보면, 헤일리 대사는 모두 14분50초 동안 러시아의 대북제재 결의 위반을 조목조목 따졌다.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계산한 듯한 특유의 손짓을 섞어가며, 헤일리 대사는 검사가 논고하듯 말을 이어갔다. 때로 극단적 표현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유엔 주재 미 대사의 헛발질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의 부패는 ‘바이러스’와 같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방해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질병’이 안보리의 진정성과 효율성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러시아 때문에 지난 8월 안보리에 제출된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 패널’ 중간보고서 공개가 미뤄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러시아 쪽이 전문가 패널을 압박해 자국에 불리한 내용을 수정했으며, 수정된 보고서는 ‘오염’됐으니 애초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게다. 그는 이어 이렇게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길이 마련됐다. 하지만 아직 그곳(비핵화)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곳에 이를 때까지는 세계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부과하는 대북제재를 느슨하게 해선 안 된다.”

안보리의 대북제재는 2006년 10월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본격화했다. 불과 일주일 만인 그해 10월14일 안보리는 결의 1718호를 채택해 북한에 대한 중화기류와 핵·미사일 개발 장비, 사치품 수입 제한 등의 제재를 부과했다.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이 있을 때마다 안보리는 추가 제재 결의를 채택했다. 지난해 11월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대응해 같은 해 12월22일 채택한 결의 2397호까지, 안보리는 모두 10건의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했다.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일정한 틀이 있다. 먼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다. 이어 북한에 추가 핵·미사일 활동 중단,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국제원자력기구 사찰 허용, 핵·미사일 프로그램 폐기 등을 촉구한다. 그다음은 구체적인 제재 조항이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때마다 이 항목이 그에 맞춰 길고 강력해졌다.

정무적 내용이 그다음이다. 안보리는 대북 결의 때마다 “제재가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에 악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대화와 외교적 노력을 통해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도 촉구했다. 9·19 공동성명(2005년)을 비롯해 그간 국제사회가 합의했던 북핵·미사일 해법에 지지의 뜻을 밝히고, 북한에 즉각 대화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항상 포함된다. 그리고 1718호(제15조)부터 2397호(제28조)까지, 결의의 마지막 부분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나온 문구가 있다.

“안보리는 북한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북한의 결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는 제재를 강화, 변경, 유예, 해제하는 문제를 포함해 제재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한다.”

중·러 화해 지지에 딴지 놓는 미국
‘손잡고 평화로.’ 9월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카드섹션이 펼쳐지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손잡고 평화로.’ 9월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카드섹션이 펼쳐지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지난해 11월29일 이후 추가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했다. 1월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대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이를 상징한다. 북한은 이미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고, 평북 철산군 동창리에 자리한 서해위성발사장의 미사일 발사 시설 일부를 해체했다. 북한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유관국 참관 아래 영구 폐기, 미국의 상응 조처에 따라 평북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용의까지 밝혔다. 사실상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중요한 한 축을 이행한 셈이다. 9월17일 안보리 회의에서 마자오쉬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2016년 이후 한반도에서 긴장 고조 상황이 지속됐던 과정과 올해 들어 급진전한 정세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비핵화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전제다.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쇄, 미사일 발사장 폐쇄 등은 북의 ‘선의’로 볼 수 있다.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안보다. 안보에 대한 당사국의 우려를 적절하고 균형 있게 논의해야 한다. 군사적 해법은 한반도에 재앙적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됐다.

한반도의 현 정세는 드문 역사적 기회이자 도전이다. 빨리 결실을 얻기 위해서라도 동시행동과 일괄타결로 평화체제 건설과 정밀하게 연동된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 북-미 대화의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기존 합의를 바탕으로 견해차를 좁혀야 한다. 중간지대에서 만나 서로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신뢰를 쌓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포괄적이고, 완전하며, 정확한’(CCA) 안보리 제재 이행이 필요하다. 북 비핵화의 진전에 따른 안보리 결의 사항의 조정도 적절한 시점에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결의의 정신에 부합하고,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

중국의 마 대사가 언급한 ‘안보리 결의 사항의 조정’은 이미 시도됐다. 남쪽 특별사절단이 방북해 북-미 정상회담의 물꼬를 텄던 지난 3월, 중국과 러시아는 남북-미 화해·협력을 지지하는 안보리 의장 성명 초안을 냈다. 하지만 미국의 완강한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유명무실한 안보리 ‘1718위원회’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9월18일 평양 시민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9월18일 평양 시민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안보리가 통과시킨 관련 결의 규정에는 조선(북한)이 결의를 이행·준수하는 상황에서는 제재 조처도 조정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는 관련 제재 조처를 잠정 중단하거나 해제하는 것도 포함한다. …중국은 제재 자체는 목적이 아니며, 안보리의 행동은 반드시 현재의 외교적 대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노력을 지지하고 협조해야 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여겨왔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6월12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 중국은 일부 대북제재를 완화할 것을 제안하는 성명을 러시아와 공동으로 작성해 지난 6월28일 안보리 15개 이사국에 회람시켰다. 하지만 이때도 “북-미 간 민감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의 반대에 밀려 무위에 그쳤다. 비슷한 상황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 무렵 미국 쪽에서 정보 당국의 ‘첩보’를 근거로 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적 효력을 지닌다. 유엔 회원국 모두 이를 따라야 한다. 안보리는 결의 1718호를 통해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할 소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이른바 ‘1718위원회’(의장국 네덜란드)다. 위원회는 90일마다 안보리에 중간보고서를, 1년에 한 번씩 연차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2009년 채택된 안보리 결의 1874호에 따라 구성된 외부 전문가 패널이 그간 보고서 작성 작업을 주도해왔다.

전문가 패널의 최신 보고서는 8월 말까지 안보리에 보고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8월 초부터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중심으로 제재 결의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안보리 이사국에 보고서 초안이 제출되기도 전의 일이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1718위원회 운영 규칙은 보고서 작성과 관련해 이사국의 의견을 청취·반영하도록 정하고 있다. 러시아 쪽 의견과 해명이 반영된 후속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이번엔 미국이 반발했다. 헤일리 대사의 주장을 빌리면, ‘러시아의 압박에 밀려 오염됐다’는 게다. 전문가 패널의 중간보고서는 지금까지 안보리에 배포·회람되지 못하고 있다. 불신이 불신을 낳고, 그 불신이 다시 갈등을 조장한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의 반격
9월19일 낮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남북 정상 및 수행원 오찬에 앞서 최태원 SK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부터),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9월19일 낮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남북 정상 및 수행원 오찬에 앞서 최태원 SK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부터),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의장, 오늘 안보리 회의를 공개로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로서도 더 바랄 게 없다. 러시아는 중국을 비롯한 여타 이사국과 함께 한반도에서 화해를 위한 큰 진전이 이뤄졌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진전에도 안보리에선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어떤 긍정적 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안보리 10월 의장국으로 9월17일 회의를 주재하는 헤일리 미 대사에게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반격에 나섰다. 그는 헤일리 대사보다 꼭 3분 긴 17분50초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기억하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회의장에서 어떤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북한 도발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이제는 평화협정 체결 전망이나, 남북의 최종적인 화해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쪽에 설명을 요구한다. 한반도의 변화에 안보리가 긍정적 반응을 내놓는 것에 모두 반대한 이유가 대체 뭔가?”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바뀌고 있음을 전세계가 알고 있다. 성큼성큼 나아가는 남북관계와 달리, 북-미 협상은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네벤쟈 대사는 “협상은 쌍방향 도로와 같다. 21세기 외교는, 아니 어느 세기의 외교든 간에, 요구만 하고 그에 상응하는 걸 아무것도 내주지 않으면 합의에 이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공허한 약속만 믿고, 모든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따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나? 지난 5월 미국은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국제사회가 이란에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깼다. 비핵화로 가는 길은 신뢰 구축 조처와 함께 시작돼야 한다. 한국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평화협정 체결도 이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남북은 이미 평화협정에 매우 다가가 있다.

제재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한반도 핵 문제를 단지 제재와 압박만으로 푸는 건 불가능하다. 제재가 외교를 대신할 순 없다. 안보리는 분쟁 해결을 지원해야 한다.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올해 초부터 북한은 남북관계 정상화와 비핵화로 나아가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따라서 1718위원회에 남북협력 사업에 한해 일시적 제재 유예를 검토해줄 것을 제안한다. 내가 아는 한 남과 북도 이 제안에 공감하고 있다.”

안보와 경제는 등가교환 안 돼
남북 정상회담 첫날인 9월18일 오후 평양 대극장에서 열린 삼지연 관현악단의 환영 공연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정상회담 첫날인 9월18일 오후 평양 대극장에서 열린 삼지연 관현악단의 환영 공연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헤일리 대사는 말했다. “우리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고.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자체적 안전 보장을 달성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20일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을 선포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제재가 유지되면 경제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고작 제재를 풀기 위해 비핵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안보와 경제는 등가교환 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북-미 협상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재도, 핵무기도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해지자. 북한이 안보리의 제재를 받는 근본 이유는 북한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5개 영구 핵보유국으로 국제법적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고 안보리 제재를 받진 않는다. ‘위성’을 쏘아올린다고 제재를 받는 건 북한뿐이다. 북한이 더는 ‘북한’이 아니게 되면, 제재 이유도 사라진다. 더 이상 ‘북한’이 아니기 위해, 북한은 비핵화의 여정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 때 “중국 쪽 제재가 느슨해진 것을 잘 안다”고 했다. 헤일리 대사도 “러시아가 제재 결의를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미 제재의 그물은 느슨해졌다는 얘기다. 북-미 대화가 지지부진해진다고, 지금 다시 대북제재를 강화할 수 있을까? 미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 출신인 조지프 디토머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9월13일 한반도 전문매체 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대북제재를 다시 강화하려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지난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좋은 친구’가 돼버린 지금 가능한 일일까?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단 한 가지 방법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군사적 움직임을 선보여, 한반도 정세의 위기를 지난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뿐이다. 이마저도 11월 중간선거 이전에는 어려울 게다. 한반도에서 다시 긴장이 고조된다면,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속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수명 다한 ‘최대의 압박’

안보리 제재 말고도 미국은 독자적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안보리 제재의 해제 또는 일시 유예는 북한 쪽에 비핵화 과정을 빠르게 밟아나갈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제재 부과만큼, 해제 역시 ‘외교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재를 넘어야 비핵화를 만날 수 있다. 정전을 넘어야 평화가 온다.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모든 것이 달라진다. ‘최대의 압박’은 수명을 다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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