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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난 뒤에야 버튼의 위치가 바뀌었다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철거 요구하며 거리 나선 장애인들 “사람 죽고 다칠 때만 승강기 설치 시늉”

8월14일부터 한경덕씨 추락사고 1주기까지 매주 화요일 시청역에서 ‘68일간의 그린라이트’ 투쟁

제1227호
등록 : 2018-08-28 12:19 수정 : 2020-06-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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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5호선 신길역 환승 구간에 설치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김진수 기자

버튼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번에도 사람이 죽고 난 뒤였다. 8월21일 오후 지상 1층에 있는 지하철 1호선 신길역 승강장에서 내려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승강기는 있지만 5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승강기는 없다. 비장애인은 5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지하 2개층 높이에 해당하는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5호선을 타려는 장애인들은 역무원이나 공익요원을 불러 왼쪽에 있는 3번 휠체어 리프트를 작동시켜야 한다. 역무원을 부르는 호출버튼 위에 “사용금지, 직원 호출버튼 이설, ←왼쪽 1m 지점”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호출버튼 설비는 계단에서 불과 50㎝ 떨어진 곳에 있었다.

팔 뻗어 리프트 버튼 누르려다 추락

2017년 10월20일 한경덕씨가 신길역 계단에서 추락하기 직전 CCTV 화면 갈무리. 왼팔을 쓰지 못하는 한씨가 역무원 호출버튼을 누르기 위해 전동휠체어를 조작하고 있다. 유가족 제공

전동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고 한경덕(향년 70살)씨가 지난해 10월20일 오전 10시께 팔을 뻗어 누르려던 버튼이었다. 그는 끝내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98일 동안 의식불명으로 사경을 헤매다 올해 1월25일 세상을 떠났다. 호출버튼은 6월 초 계단에서 1m 떨어진 곳에 새로 설치됐다. 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3·4호선 충무로역, 3·7호선 고속터미널역 등의 환승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의 호출버튼 위치도 바뀌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사고 경위를 고려해 6월 변경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유족과 장애인단체는 교통공사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교통공사가 버튼 위치는 바꿨지만 “휠체어 리프트 안전 기준을 준수했다”며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교통공사 쪽 변호인은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한경덕씨의 과실이 90%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10월20일 아침 한경덕씨는 1호선 오류동역에서 신길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탔다. 베트남전 상이군인인 그는 전쟁에서 머리를 다치고(상이등급 4급)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6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왼팔의 운동 기능을 상실해 지체장애인이 됐다. 한씨는 이날 서울 강동구 5호선 둔촌역과 길동역 사이에 있는 중앙보훈병원에 가려 했다. 그 나잇대 노인들이 그러하듯 약도 타고,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에서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용할 수 없는 왼팔 대신 오른팔로 버튼을 누르기 위해 계단을 등진 채 전동휠체어를 조심스레 몇 차례 움직였다. 휠체어 바퀴가 계단 모서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10여 년을 함께한 휠체어와 함께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한씨의 가족들은 사과받지 못했다. 한씨 아내는 사고 당일 오후 역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사과 대신 “휠체어를 치워달라”는 말을 들었고 “사람이 사경을 헤매는데 그런 소리가 나오냐”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한씨의 동생과 아들이 다음날 사고 현장에 그대로 방치된 휠체어를 수습했다.

신길역과 교통공사는 “고인이 휠체어 리프트를 타기 전에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에 리프트 이용과 관련이 없다”며 자신들의 책임에 선을 그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쪽은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6월21일 김태호 교통공사 사장을 만났지만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끼나 법적 책임은 따져봐야 한다’며 공개 사과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딸(41)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일관되게 아버지의 휠체어 작동 미숙이지 자기네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통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그는 “가족들이 고민이 많았는데 아버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승강기 설치 필요성을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1년 이후 5명 리프트 추락 사고사

한경덕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풍경은 지난 20여 년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를 두고 거듭 반복된 ‘잔혹사’의 연장선에 있다. <한겨레21>이 국가인권위원회·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확인한 1999~2017년 수도권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관련 사고는 17건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안전실태 조사결과’(2007년) 보고서와 언론 보도를 확인하면 부산과 대구 지하철에서도 2001~2007년 5건의 리프트 추락 사고가 확인된다. 리프트 추락 사고는 아니지만 2003~2012년 (스크린도어 설치 전) 수도권 전철에서 5명의 시각장애인이 선로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는 장애인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1년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2002년 5월 5호선 발산역, 2006년 9월 인천1호선 신연수역, 2008년 4월 1호선 화서역, 2017년 1·5호선 신길역에서 20~60대 장애인이 계단으로 굴러떨어져 사망했다. 그때마다 사고와 책임은 별개였다.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한국철도공사 등 지하철 운영기관은 “이용자의 조작 실수다” “우리는 안전 기준을 지켰다”며 법적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승강기 설치 요구에는 “노력 중이지만 역사 구조상 설치가 쉽지 않고 예산이 많이 든다”고 했다. 결국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지하철을 멈추며 “더 이상 죽을 수 없다”고 외쳤다.

3~4년 뒤 사건이 잊힐 때쯤 장애인이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난 지하철역에는 “어렵다”던 승강기가 설치됐다. 승강기 설치가 늘어날수록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임신부, 유모차를 끄는 양육자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하지만 휠체어 리프트가 계속 있는 한 ‘폭탄 돌리기’는 끝날 수 없다는 게 장애인들 이야기다.

휠체어 리프트는 애초부터 장애인들의 이동수단이 될 수 없었다. 휠체어 리프트는 1988년 서울에서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열렸을 때 외국에 보여주기 위해 2호선 종합운동장역에 급하게 설치되며 다른 역으로 퍼졌다. 2000년 전후로 수동휠체어를 타던 장애인들이 더 크고 무거운 전동스쿠터, 전동휠체어를 이용했지만, 과거 수동휠체어에 맞춰 설계된 리프트는 그대로였다.

1999년 6월28일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학생이던 이규식(당시 31살)씨는 서울 대학로에서 친구를 만나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하철 4호선 리프트에서 떨어져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고 목과 머리에 치료를 받았다. 그때도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는 “리프트는 법적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용자 잘못이다”라고 주장했다.(<노란들판의 꿈>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2016)

급기야 2001년 1월22일 4호선 오이도역에 설치된 지 6개월도 안 된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가 케이블이 끊어지며 5m 아래로 추락해 70대 여성이 사망했다. 충격받은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왔다. 몸에 쇠사슬을 걸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며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절규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결성하고 장애인 이동권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투쟁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2005년·교통약자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2007년·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 입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고 나야 없던 공간이, 예산이 생기더라”

그런데 왜 2018년에도 장애인들은 휠체어 리프트를 철거하라며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을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산증인’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다른 교통수단에서 지속적으로 사고가 났다면 과연 정부가 그렇게 방치했을까.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다. 예산 마련이 어렵다’라는 레퍼토리를 계속 사용했겠냐”고 꼬집었다. 서울시와 지하철 운영기관도 법적 책임에는 선을 그었지만 장애인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지하철 승강기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계속 유예됐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정책 결정에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지도 않았다.

오이도역 추락 사망 사고 한 달 뒤에 열린 2001년 2월20일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회의록(지하철 건설본부 업무 보고)을 보면, 사고 원인을 묻는 서울시의원의 질문에 지하철건설본부장은 “요즘에 스쿠터라고 해서 자동으로 걸어가는 것 (중략) 휠체어 리프트 규격에 안 맞추고 자기들이 마음대로 만든 것을 사가지고 들어와서 쓰고 있습니다. 간격도 넓고 (중략) 모든 규격에 맞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왜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느냐”는 질의에도 “리프트는 불편하고 이용률이 떨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승강기를 설치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현장 여건이 승강기를 놓기가 거의 안 되는 데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장애인들의 실질적 이동권 보장을 고민해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법적 기준이나 현실적 여건에 무게를 두는 인식이 드러난다.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04년까지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이후에도 리프트 추락 사고는 계속됐다. 결국 사고가 나야 바뀌었다. 2012년 4월20일 장애인의 날, 오아무개(49)씨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오산역 2번 출구의 휠체어 리프트틀 타고 내려오다 지면 가까운 곳에서 뒤로 넘어졌다. 그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사고가 난 뒤에야 없던 공간이, 없던 예산이 생기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고 이전에도 경기도 오산 장애인들은 지하철 승강기 설치를 꾸준히 요구했다. 오씨가 뇌진탕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1년여 뒤 승강기는 설치됐다. 그는 “지금도 휠체어가 조금만 기울어도 6년 전 충격이 떠올라 무섭다”며 “리프트는 두렵고 (운행시 나오는 경보음 때문에) 창피하다. 신길역 사고를 보니 누군가 죽어야만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자신도 장애인이면서 27년 동안 지하철을 누비며 휠체어 리프트와 장애인 편의시설 문제를 고발해온 박종태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도 “여전히 지하철 환승 통로에 리프트가 많이 남아 있다. 지난 27년간 봐왔지만 결국 의지를 가지면 정부 차원에서 못할 게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신길역 사고를 언급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지하철 개찰구에 역무원 호출버튼을 설치하면 되는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결국 2009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휠체어 리프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장애인에게 제공돼야 할 ‘정당한 편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며 당시 관련 부처와 지하철·철도 운영기관에 승강기 설치를 권고한 뒤 승강기 설치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2015년 12월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통해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장애인단체 “서울시 약속 지켜야”

현재 교통공사는 서울지하철 1~8호선 277개 역 가운데 1역 1동선 확보역(지하철역 입구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가 설치된 역)은 250개(90.2%)라고 밝혔다. 2020년까지 광화문역을 비롯해 11개 역에 설치할 계획이고, 역사 내 설치가 어려운 16개 역은 대안 마련을 위한 용역을 9~10월에 추진할 예정이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16개 역은 일차적으로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어떻게든 설치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20여 년간 ‘리프트 잔혹사’를 몸으로 겪어온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16개 역이 어렵다는 공사의 입장은 약속을 뒤집는 것”이라며 서울시와 교통공사를 계속 압박할 계획이다. 이들은 8월14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1호선 시청역에서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에게 문제를 알리는 ‘68일간의 그린라이트’를 한경덕씨 추락 사고 1주기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시의 공개 사과와 지하철 승강기 1동선 100% 설치, 박원순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8월21일 오후 시청역 승강장에서 열린 그린라이트 투쟁에서 휠체어 장애인 30여 명은 일렬로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에게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려다 자꾸만 죽는 상황을 알아달라”고 소리쳤다. 지하철이 15분 정도 멈추자 일부 시민들은 “시민을 볼모로 뭐하는 짓이냐” “당장 휠체어를 들어내라”고 고함쳤다. 그러자 한 시민이 “사람이 죽었다는데 정말 너무들 한다. 이 사람들이 싸워서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다들 잘 타고 다니지 않냐”고 소리쳤다. 장애인들의 구호와 시민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지하철 안을 가득 메웠다. 교통공사는 7월6일 이들을 상대로 교통방해·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곧 지하철은 다시 출발했다. 이날도 시청역에 설치된 승강기는 부지런히 승객들을 날랐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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