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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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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전 비해 지금은 기적

트럼프에 대한 증오로 북-미 회담 반대하는 많은 미국인들

‘평화’가 융통성의 영역이라면 되레 트럼프가 적임자일지도
등록 2018-04-24 08:31 수정 2020-05-02 19:28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첫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첫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미국 정치가 극단화됐음을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사건은 평소였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강하게 지지했을 이들이 눈앞에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회담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좌우파나 중도를 가리지 않고 정계와 언론 모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 큰 우려와 아주 분명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클린턴이면 김정은 안 만나

이번 북-미 회담에 대한 미국 우파 언론들의 지지가 평화에 대한 순수한 우려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찬성한다는 맹목적인 것이라 해도, 한때 ‘북한을 폭격합시다’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자, 대화합시다’라고 180도 방향 전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즐겁고 고무적인 일이다. 내가 북한에 대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미 우파 언론들이 북한을 공격하도록 여론을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2003년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사담 후세인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하는 (미 우파 언론들의) 보도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에 반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을 지지했던 이들이 현재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에 반대하고 있다. 그 차이는 물론 ‘트럼프’라는 요소다. 평소 북-미 대화를 옹호해온, 북한 문제의 저명한 해설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그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정말 나쁜 낌새가 보인다. 트럼프는 그가 뭘 팔아버렸는지도 모른 채 무언가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변덕스러우며 국제관계에 대해 직업정치인이 하는 것처럼 발언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동아시아에서 발전해온 규범(norm)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실제 나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던졌던 모든 호전적 발언을 듣고서, 두 번째 한국전쟁이 터질 수 있음을 우려하며 2017년의 상당 부분을 보냈다.

또 하나 분명한 점은, 우리가 이런 사실로부터 정상회담을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분리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 번도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미 공화당의 규범과 함께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끝까지 가볼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우린 ‘화염과 분노’(트럼프 정권의 이면을 그린 책 이름)의 가능성을 우려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와 동시에 힐러리는 김정은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직전인 2016년 11월, 나는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의 한 사람에게 “당신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우려하지 않습니까? 그와 문 대통령이 함께 당선될 수도 있을 텐데요”라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모르는군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뭔가 일을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이는 매우 상투적인 얘기이지만, 트럼프가 무엇보다 빅딜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순진하더라도 가만있는 것보단 낫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많은 미국인이 반대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증오 때문인 것으로 요약된다. 분명 나는 그의 말이나 행동의 95%를 좋아하지 않으며,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 만들기’라는 문제에 이르면, 이는 오로지 열린 마음과 융통성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의 기대와 달리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일 수 있다.

지금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대한 가정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확률이 작아 보인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남북과 중국, 미국을 포괄하는 전례 없을 만큼 밀도 있는 외교의 제일 꼭대기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부활절 주말(3월31일∼4월1일)에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국무장관 지명자)과 김정은의 회동은 이와 관련해 작지만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다. 만약 합의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 핵심 내용은 당일 허공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닐 듯하다.

현실적으로, 무엇이 합의되든 실질적 내용과 관계없이 모든 이의 승리로 보이도록 매만져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낮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우리가 6개월 전에 놓여 있던 상황과 비교하면 거의 기적으로 보일 것이다. 진정 유일하게 나쁜 시나리오는 아무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요소와 참여자들이 이미 투여한 ‘평판 투자’(합의되지 않을 경우 받을 평판의 타격을 이르는 말)를 생각할 때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확신한다.

북한 상황에 더 이상 혼란스러움이 없길 바란다.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우리는 갈등과 함께하거나, 굳건한 평화와 함께할 것이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이뤄진 것은 분명 이례적이며, 양손으로 평화를 잡을 기회를 시사하고 있다.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인류의 가장 훌륭한 본능을 믿어볼 때다. 훗날 순진했다고 비판받는 위험부담을 지는 것이 아무것도 해보지 않는 것보다 낫다.

다니엘 튜더 전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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