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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삼성SDI 전 직원, 감사 우울증 산재 인정

ㄱ씨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서 드러난 혹독한 감사, 1천 명 직원 줄어든 2016년 이뤄져
‘비용 부담 없이 인력 퇴출하기 위한 감사’ 의혹… 삼성SDI 쪽 ‘비위 적발 목적 감사’ 주장

제1183호
등록 : 2017-10-16 17:03 수정 : 2017-10-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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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은 절박하다.

이 단순한 명제만큼은 비정규직 혹은 정규직, 연공서열 따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갑자기 많은 이들이 밥그릇을 동시에 내려놓았다면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소박한 의심을 품어볼 수밖에 없다.

2016년 삼성그룹이 그랬다. 기업성과평가 누리집 ‘CEO스코어’는 올해 4월 30대 그룹 계열사 중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234개사의 2016년 고용 규모를 조사해 발표했다. 이 중 삼성그룹 계열사의 직원은 2015년에 견줘 1만3006명(6.6%)이 줄었다. 30대 그룹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줄어들었다. ‘그 1만3006명은 어떤 이유로 회사를 떠났을까.’

<한겨레21>은 법률사무소 ‘내일’과 함께 많은 이들이 삼성을 떠난 원인에 주목했다. 그리고 지난해 이뤄진 삼성SDI의 인력 감축 과정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아냈다. 그것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회사의 혹독한 ‘감사’였다.

물론 이것이 그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난 유일한 이유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내일’이 40명에 가까운 삼성SDI 감사 대상자를 만나 청취한 내용을 정리한 면담 자료 등을 분석하면, 감사는 정규직 기준으로 2016년 한 해 1천 명 이상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의 감사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감사 과정에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얻어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람도 있었다.

2016년 삼성SDI에서 이뤄진 감사의 규모에 대해선 감사를 받은 직원들과 감사를 진행한 회사 쪽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복수의 감사 대상자들은 “감사 대상자의 규모가 수백 명에 달하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사표를 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나를 담당했던 감사관이 본인이 직접 감사한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라는 감사 대상자의 진술도 있다. 하지만 삼성SDI 쪽은 “2016년 감사 대상자는 50여 명으로 예년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맞선다.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일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_편집자

2004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 위치했던 삼성SDI 공장 건물 외벽에 ‘디지털 디스플레이 세계 최고의 사업장 실현’이라고 적혀 있다. 주력 사업이던 디스플레이 부문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삼성SDI는 관련 사업을 정리한 뒤 2016년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류우종 기자

삼성SDI 전 직원 ㄱ씨는 2016년 초 우울증에 걸렸다.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던 중년 남성이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겨레21>이 입수한 ㄱ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판정서)에 그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다.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지난 1월 ㄱ씨의 우울증 발병 원인에 대해 “(ㄱ씨는) 중등도의 우울삽화(우울증), 적응장애 등의 상병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다. 발병 경위를 검토한 결과 신청인이 업무와 관련해 사업장에서 실시한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감사 방법(불시 감사, 감사 장소, 사실 강요 등), 타 사업장 소속 감사관들의 부당한 대우 및 이에 따른 갈등이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점이) 신청된 상병 업무와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참석한 위원 다수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이 삼성SDI의 감사 때문에 ㄱ씨가 우울증을 얻었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대한민국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에 얼마나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는지를 생각하면, 회사의 감사가 원인이 돼 우울증이 발병하고, 이에 대해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 평가할 수 있다. 회사 쪽 감사가 얼마나 혹독했기에 ㄱ씨는 우울증이라는 병까지 얻게 된 것일까.

“시간관념 없냐” 꾸짖고 “비위 사실 쓰라” 강요

삼성SDI 감사 대상자였던 ㄱ씨의 ‘업무상 질병판정서’ 중 일부. 근로복지공단은 회사 감사로 인한 ㄱ씨의 우울증 발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ㄱ씨를 상대로 한 감사가 시작된 것은 2016년 3월29일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서를 보면 그날 오전 8시22분께 ㄱ씨는 감사관으로부터 “(비위 여부를 따지는) ‘부정 감사’를 하겠으니 어떤 업무도 하지 말고 천안사업장 감사팀으로 오전 9시까지 오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40분 안에 감사실로 오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ㄱ씨가 찾아간 감사실은 검찰 취조실과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달린 2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 의자가 세 개 놓여 있었다. 오른쪽에 자리한 두 개 의자에는 감사관들이 착석했고, ㄱ씨에겐 왼쪽 의자가 배당됐다. 책상 위에는 전화기, 볼펜,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판정서에 나온 ㄱ씨의 주장을 보면 감사 분위기는 처음부터 험악했다. 감사관은 ㄱ씨에게 “오전 9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3분47초 늦었다. 시간관념이 없냐”고 꾸짖었다. ㄱ씨를 상대한 감사관들은 이상하게도 삼성SDI 소속이 아니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물산 소속의 박아무개 차장, 정아무개 과장, 엔지니어링 소속의 천아무개 과장, 화재 소속의 채아무개 차장이 감사관으로 번갈아 방에 들어와 ㄱ씨를 상대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여러 곳에서 차출돼 모인 감사관들을 보며 ㄱ씨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ㄱ씨는 감사 첫날부터 ‘사직을 유도하는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ㄱ씨의 주장에 따르면, 감사관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 등의 말로 회사를 나가달라는 뜻을 내비쳤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비위 사실을 스스로 쓰라”고 강요했다. ㄱ씨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심사 과정에서 “감사 이틀째부터 회사 생활에 대한 심각한 회의감에 눈물이 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심적 고통을 털어놓았다.

영문 모를 감사는 계속 이어졌다. 결국 4일차 감사가 끝난 주말인 4월2일 ㄱ씨는 정신의학 전문병원을 찾아 약물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6일차 감사를 받던 4월5일 고혈압 증상이 심해져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4월19일 퇴원을 하고 다시 이틀 뒤인 21일부터 7~8일차 감사가 이어졌다. 그 뒤 ㄱ씨가 병원 치료를 위한 연차와 병가를 신청한 뒤에야 감사가 중단됐다.

2016년 줄어든 정규직 수, 전년의 10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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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쪽은 산재 판정 과정에서 ㄱ씨를 감사한 이유와 관련해 ‘특정 업체에 입찰가를 미리 알려주고 수의계약을 하려고 한 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내용으로 ㄱ씨를 추궁하기 시작한 것은 감사 8일차에 이르러서다. 더욱이 ㄱ씨의 비위 의혹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조사나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SDI의 감사가 회사의 주장대로 정말 ‘비위 적발’ 목적에 따라 이뤄졌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삼성SDI의 공시 자료 등을 분석해보면 감사가 시작된 2016년 한 해 동안 줄어든 삼성SDI의 정규직 직원(2016년 초 분사한 케미컬 부문 제외) 수는 1027명이다. 2015년 100명이 줄어든 것에 견주면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왜 그랬을까. 디스플레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잘 알려진 삼성SDI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회사는 2014년 70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을 끝으로 2015년부터 적자 행진을 기록하는 중이다. 2015년 영업 적자는 598억원, 2016년엔 무려 9263억원이었다. 회사의 주력 제품이던 디스플레이 가격 하락과 경쟁 격화로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삼성SDI는 차세대 유망 사업인 배터리 부문으로 회사의 체질을 개선해나가는 중이다. 불필요해진 디스플레이 부문 인력을 대폭 감축해야 할 강한 동기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인력을 줄이는 데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4조를 보면,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입증할 수 없으면 희망퇴직 등을 접수해 자발적 퇴직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일반적으로 회사는 노동자에게 적지 않은 ‘위로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비용 부담 없이 인원을 정리할 ‘묘수’가 있다. 혹독한 감사 등으로 노동자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게 해 제 발로 회사를 떠나게 하는 방법이다. 복수의 삼성SDI 감사 대상자들은 대규모로 이뤄진 감사가 인력 퇴출에 직간접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회사 쪽은 감사 도중 직원이 산재 결정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밝혔다. 삼성SDI 관계자는 10월13일 <한겨레21>과 만나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결과를 수용한다. 회사와 직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 것에 대해 도의적 차원에서 유감이다. 지금 해당 직원은 퇴사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2016년 감사가 ‘인력 퇴출’을 위한 게 아니었냐는 의혹에 대해 “2016년 감사는 다른 해와 같은 일반 감사였으며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들이 감사에 참여한 것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한 감사 계획에 따른 것이지 대규모 감사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2016년 직원 수가 줄어든 것은 미래 성장 동력을 디스플레이에서 배터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천 명의 희망퇴직을 받았기 때문이다. 감사를 통해 억압적이고 강제적으로 직원들을 내보낸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SDI 쪽 “감사 대상자 50여 명 수준”

이같은 회사의 주장은 의심할 대목이 적지 않다. ㄱ씨의 판정서에서 삼성SDI는 “금번 감사의 경우 사내 전 부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감사로 당사(삼성SDI) 감사팀의 인력만으로는 감사 실시에 어려움이 있어 관계사 감사팀 인력을 지원받아 실시”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 규모가 커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취지로 읽혀 ‘다른 해와 다름없는 수준의 감사가 이뤄졌다’는 현재의 해명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 문제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감사 대상자 수다. 삼성SDI 쪽은 “감사 대상자가 50여 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감사와 관련한 소송 등을 진행한 법률사무소 ‘내일’이 직접 확인한 감사 대상자만 40명 규모다. 내일의 김가람 노무사는 “감사를 받은 뒤 외부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직접 확인한 감사 대상자만 40명에 달하고, 또 그들에게서 확인한 다른 사람들까지 합치면 감사 대상자 수는 최소한 100명이 훌쩍 넘는다. 50여 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숫자”라고 맞섰다. 2016년 회사를 떠난 1천 명이 넘는 직원 중 혹독한 감사를 이기지 못해 소중한 밥그릇을 내려놓은 노동자는 몇 명이었을까.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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