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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장관 시절 법무부, 세월호 수사 개입 정황

<한겨레21> 123정장 피의자 신문조서 단독 입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조사한 다음날 구속영장 혐의에는 빠져
등록 2016-12-20 06:49 수정 2020-05-02 19:28
황교안 국무총리(왼쪽)가 12월15일 서울 종로구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리는 국정 현안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황 총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 등 해경에 대한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이던 광주지검 수사팀은 2014년 7월28~29일 김 전 정장을 조사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에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시했지만, 하루 뒤인 7월30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는 공용서류 손상 및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만 적용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왼쪽)가 12월15일 서울 종로구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리는 국정 현안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황 총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 등 해경에 대한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이던 광주지검 수사팀은 2014년 7월28~29일 김 전 정장을 조사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에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시했지만, 하루 뒤인 7월30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는 공용서류 손상 및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만 적용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이 세월호 구조에 실패한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을 주요 혐의로 적용해 긴급체포하고도 하루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는 ‘공용서류 손상’ 및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만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외압 의혹 등이 불거지고 있다. 123정은 세월호 참사 때 가장 먼저 출동한 해경 경비정이다.

구속영장 청구 직전에 빠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는 세월호 참사 때 법무부 장관이던 황 총리가 “해경의 과실치사 혐의를 빼라”고 압력을 넣었으며 당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주장한 검찰 관계자에게 인사 보복을 한 의혹이 있다고 12월16일 보도했다. 실제 이 단독 입수한 김 전 정장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이런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김 전 정장의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위의 사람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피의 사건에 관하여 2014년 7월28일 광주지방검찰청 701호 영상녹화조사실에서 검사 신○○은 검찰주사보 문○○을 참여하게 하고 피의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신문한다”고 적혀 있다.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피의자의 대표적인 범죄 혐의를 적시한다.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은 김 전 정장의 주요 혐의가 업무상과실치사상이라고 봤다는 의미다.

하지만 수사팀은 다음날(2014년 7월29일 새벽 2시49분)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 김 전 정장을 긴급체포하고 7월30일 오전 11시께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제외했다. 불과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광주지검 수사팀이 2014년 7월28일 김 전 정장을 조사한 것은 대부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관련 내용이었다. 수사팀이 이날 김 전 정장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굵은 글씨로 표기해 분류한 조사 내용은 총 12가지다.

구체적으로는 ①123정의 임무, 규모 및 장비 보유 현황 관련 ②매뉴얼 숙지 관련 ③123정 출동 뒤 사고 현장 도착시까지 ④구조 대책 수립 및 승조원 임무 부여 관련 ⑤세월호 교신 관련 ⑥사고 현장 도착 이후 ⑦퇴선 방송 실시 관련 ⑧선내 진입 지시 관련 ⑨함정일지 훼손 및 허위 작성 관련 ⑩기사 훼손 및 허위 내용 재작성 관련 ⑪임무 부여 부분 허위 작성 ⑫진술 모의 관련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①~⑧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와 관련된 조사 내용이다. 광주지검 수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적시한 공용서류 손상 및 허위 공문서 작성과 관련된 부분은 ⑨~⑫로 네 대목밖에 되지 않는다.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까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중심으로 실컷 조사해놓고 정작 영장 혐의에서는 제외한 것이다.

결국 광주지법은 김 전 정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영장에 적힌 피의 사실만으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구속영장 기각 이유로 들었다. 형이 무거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혐의인 공용서류 손상 등만 적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법무부·청와대 해경 기소 꺼려”

세월호 사건 수사기록을 살펴보면, 애초 광주지검 수사팀은 해경의 구조 실패를 광범위하게 수사할 계획이었다. 2014년 5월29일 작성된 수사팀의 ‘수사보고서(해양경찰 공무원 등 구조 관련 기관에 대한 수사 착수 보고)’를 보면 이런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사보고서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구조 활동을 총괄하고 있는 해양경찰 공무원들의 조난 희생자 구호 과정에서의 직무유기, 허위 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 및 진상 규명 요구가 범국민적으로 제기”돼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또 피의자 범주로 123정 관계자뿐 아니라 “해양경찰청 본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 해양경찰청 중앙구조본부, 진도관제센터 등에 근무하는 세월호 사건 신고 접수, 상황 전파, 구조 및 수색 활동 담당 공무원”을 적시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법무부와 청와대는 해경 수사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애초 해경 지휘부까지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으려 했던 수사팀은 결국 김 전 정장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 사실 부분에는 “사고 발생 직후 상황 전파를 제대로 하지 아니하여 해경 구조정, 특공대, 헬기 등이 늑장 출동하고 세월호 객실 내에 수백 명의 승객이 여전히 대피하지 못하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신속하게 선체에 진입하거나 방송장비들을 동원하여 객실 내에 있는 승객들로 하여금 선체 밖으로 퇴선, 탈출할 수 있도록 조치하지 아니”한 점을 들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법무부와 청와대는 해경을 상대로 한 수사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애초 해경 지휘부까지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으려 했던 수사팀은 결국 김 전 정장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광주지검 수사팀과 대검찰청은 김 전 정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 기소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2014년 8월 초에는 법리 검토도 마친 상태라 김 전 정장을 바로 재판에 넘기기만 하면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수사 계획은 법무부에서 계속 막혔다.

당시 세월호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에 “청와대와 법무부가 해경을 기소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구조하러 간 사람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맞냐’는 논리로 계속 버텼다”고 말했다.

결국 2014년 8월 초에 바로 기소할 수 있었던 사건은 2개월 넘게 표류했다. 광주지검 수사팀과 대검찰청 의견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정장을 재판에 넘긴 것은 2014년 10월6일이었다. 법무부와 청와대가 반대했던 김 전 정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수사팀의 의견이 옳았던 것이다.

김 전 정장을 기소하면서 이뤄진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도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 이 입수한 고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2014년 10월5일치 업무수첩에는 “책임의 주체가 구체적으로 적시되도록(세월호 보도자료)”라고 적혀 있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숨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123정장 등 특정 개인에게 모는 보도자료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다.

검찰 세월호 수사 발표 때도 청와대 개입 정황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5분께 세월호 참사 현장에 출동한 123정이 구조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5분께 세월호 참사 현장에 출동한 123정이 구조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실제 이 메모가 작성된 다음날인 2014년 10월6일 대검찰청이 발표한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수사 설명자료’에는 ‘유병언의 업무상과실치사상 책임 규명’ ‘진도VTS 관제 담당자의 부실 관제’ ‘해경 123정장의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문구가 담겨 특정 개인에게 참사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작성됐다. 해경의 구조적 구조 실패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청와대의 지시는 보통 법무부를 통해 검찰에 전달되기 때문에 이 과정에도 황교안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 참사 수사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국무총리 비서실은 12월16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법무부 장관이던 당시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 라인 간부들에 대한 인사 보복 의혹 또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황 총리의 해명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 수사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려던 검찰 특별수사팀의 계획도 막아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거듭 수사 외압 의혹 받는 황교안

검찰 특별수사팀은 2013년 5월25일께 대검찰청에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하겠다는 의견을 보고하고 대검찰청은 이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 장관인 황 총리는 공직선거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특별수사팀과 대검찰청의 의견을 일주일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공소시효 만료일인 2013년 6월19일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결국 검찰 특별수사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원 전 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황 총리가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과 세월호 참사 수사 등 정권에 민감한 사건에서 거듭 검찰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자 야당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2월16일 브리핑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정부의 (세월호 참사) 책임을 피하기 위해 수사를 방해하고 인사 보복을 자행했다”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열린 비상대책회의-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황 총리가) 세월호 수사에 대해서 명백한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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