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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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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겨라 7시간 보일라

‘김영한 업무수첩’으로 살펴본 2014년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대응

세월호 희생자 주검 인양 포기 정황, ‘대통령 7시간’ 행적 감추기 등 총력
등록 2016-12-16 08:12 수정 2020-05-02 19:28
5부_세월호 7시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드러나면서 ‘세월호 7시간’은 국정 왜곡·공백의 극단적 상징이 됐다. 탄핵소추 안에도 포함됐다. 사흘간의 국정조사에선 청와대가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내놓은 그간의 해명이 ‘총체적 거짓말’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증언들이 나왔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재임 시절에 쓴 업무수첩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안이한 대응 태도가 드러나 있다. 2014년 9월24~25일 기록된 내용 가운데 세월호와 관련해 “4/14, 15, 16일 보고 내용 파악. 정무에 PASS(넘겼다)”라는 내용이 있다. 업무수첩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재임 시절에 쓴 업무수첩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안이한 대응 태도가 드러나 있다. 2014년 9월24~25일 기록된 내용 가운데 세월호와 관련해 “4/14, 15, 16일 보고 내용 파악. 정무에 PASS(넘겼다)”라는 내용이 있다. 업무수첩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2월9일 국회에서 가결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원고지 85장 분량으로 작성됐다. 탄핵소추안은 “헌법 제65조 및 국회법 제130조 규정에 의하여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소추한다. 피소추자-성명: 박근혜, 직위: 대통령”으로 시작된다. 탄핵소추 사유는 5가지 헌법위배행위와 2가지 법률위배행위(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강요죄)로 나눠 적시됐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헌법위배행위’ 가운데서도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대통령 박근혜가 “국민의 생명권을 지킬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를 무시하고 어겼다는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소추안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였지만 비협조와 은폐로 일관하며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해왔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박대통령이 위와 같이 대응한 것은 사실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할 것이고 이는 헌법 제10조에 의해서 보장되는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적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7시간’을 은폐한 까닭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세월호에 370여 명이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대통령의 태도는 일상적이었다. 대통령이 1시간여 동안 점심 식사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 오후 3시께 세월호 희생자들의 턱밑까지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전속 미용사를 불러 1시간 넘게 ‘올림머리’를 했다.

7시간 은폐해야만 했던 이유는

오후 5시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여전히 수백 명이 배 안에 갇혔다는 보고를 받고 청와대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한다. 청와대 공식 해명을 보면, 저녁 식사 이후 3차례 서면보고를 더 받은 뒤 대통령 업무는 없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을까?

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의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4월16~19일까지 대통령 지시사항’을 보면,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에서 4월17일부터 19일까지 1일 2회 구조 진행 상황을 종합 서면보고 받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에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더 참담한 것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에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은폐, 축소했다. 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입수해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2014년 청와대의 대응을 살폈다.

김 전 수석은 2014년 6월14일부터 2015년 1월9일까지 210일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 등의 지시 내용을 ‘업무수첩’으로 남겼다. 세월호 참사 수습이 집중된 시기에 쓰인 업무수첩에서 꼭꼭 숨어버린 당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움직임을 일부나마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세월호 희생자 주검 인양을 포기하려 했다는 정황은 충격적이다. 2014년 10월27일자 업무수첩에는 “長(장) 세월호 인양- 시신 인양×, 정부 책임, 부담”이라는 메모가 적혔다. ‘장’이란 표시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뜻한다. 업무수첩은 김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할 때 지시한 내용을 김 전 수석이 받아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 메모에 대해 12월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시신 인양 안 된다. 시신 인양을 했을 경우에는 정부 책임과 부담으로 돌아온다’라는 얘기를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 증인께서 했고, 그 내용을 김영한 민정수석이 받아적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의 어린아이들이 수장돼 배 안에 차가운 시신으로 있는데 ‘시신을 인양하면 안 된다. 시신을 인양하는 것은 정부의 부담이 가중된다. 그래서 세월호 인양을 최대한 늦춰야 된다’ 이런 말을 대한민국의 비서실장으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얘기입니까. 김기춘 증인 당신께서는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김 전 비서실장은 “죄송하다”면서도 “회의를 하다보면 이 장부를, 노트를 작성할 때 작성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도 가미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지시사항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않는다

박 대통령의 ‘잃어버린 세월호 7시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청와대가 대통령 행적을 숨기기 위해 총력전을 벌인 정황도 확인된다.

2014년 7월18일 메모에는 “長(장), 4/16 동선 위치 말씀/국가원수 경호실, 기침, 취침, 경내 계신 곳이 집무 장소”라고 쓰여 있다.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김 전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당일 발언 내용, 잠이 들거나(취침) 깨는 일(기침)에 관한 것을 숨기라’는 취지의 지시를 청와대 내부에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 ‘대통령이 어디에 있든, 경내 모든 곳에서 집무를 본다’는 식의 답변도 주문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3개월 시점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이 4월16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한 번도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고,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비서실장도 모른다”고 발언한 사실 때문에 논란이 커진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업무수첩에는 “(대통령 위치는) 경호상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않는다. 자료 제출 불가”라고도 적혀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의 지시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사실상 ‘내부 입막음’을 지시한 것이다.

또 김 전 비서실장은 “민정이 나서서 (장관들의 세월호 관련 발언에 대해) 주의토록 촉구-언론 플레이”라거나 “advice(조언), 청와대는 숨어야. 검증시에도 특정 직책은 no comment(함구)”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청와대에서는 긴박한 대응이 이어졌다. 이날 김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수석실 직접 보고받고 있고, 장관 보고도 받아/언론 왜곡 보도, 실상 잘못 전달되었고 홍보 부족→대책 강구”라고 지시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부여가 거론되던 상황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검찰(이) 세월호 사건 관계자(를) 구속, 입건(하는 등) 철저 수사 중인데도 유족은 수사권 부여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메모에는 “검찰총장, 법무장관-기고. 세월호 특별법안 관련”(7월21일)이라고 쓰였다. 세월호 특별법을 무마하거나 축소하기 위해 장관급까지 동원해 여론전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죽음에 대하여 관대한 전통, 동정론, 음모론, 사기 조작론, 지연 책임론”(7월22일), “VIP 7시간 관련-주름수술설-사이버수사팀”(9월23일) 등에선 청와대가 직접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여론 조작을 구상했다거나 사이버수사팀을 ‘주름수술설’ 등 ‘7시간 의혹’을 초반에 잠재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청와대가 비서실·민정수석실을 통해 이미 세월호 참사 전후 대통령 행적을 파악했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을 거론하며 대통령 동선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그러나 업무수첩에는 “4월14,15,16 보고 내용 파악-정무에 PASS(넘겼다)”(9월26일), “4.14~16간 보고, 업무 추진 상황 정리-법무 PASS”(9월28일)라는 기록이 있다. ‘세월호 7시간’이 본격적으로 문제되자, 비서실을 중심으로 세월호 당시 대통령 행적을 확인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 메모에는 ‘confidential’(보안)이란 단서가 달려 청와대가 극도로 예민하게 대응한 사실도 엿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수습에 대한 청와대의 부정적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8월11일 메모에는 “세월호 파장-피해자가 어린 학생이기 때문임. 학교 안전, 백화점 비상구(소방) 다중 이용 안전사고 유의·대비”라고 쓰여 있다. 정부의 잘못된 대응 때문에 300명 넘는 희생자가 생겼는데도, 정부는 ‘희생자에 어린 학생들이 포함됐기 때문에 파장이 커졌다’고 분석한 셈이다.

“세월호 백서 만들면 오히려 빌미 대상”

김 전 비서실장은 또 “세월호 유가족·학생유가족 외 기타 유가족 요구는 온건합리적 이들 입장 반영되도록 하여 중화시킨다”(8월22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돼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상대로 마치 ‘공작’을 벌이는 듯한 태도다.

8월30일에 이미 “세월호 원인은 어느 정도 규명, 재발 방치책 정리. 감사원, 검찰 등 각 기관별 방책 종합 정리”라는 지시를 내려 세월호 참사 정리 국면에 들어가려 한 것 같다. 그러나 당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을 만나며 피 말리는 싸움을 벌일 때였다.

9월2일에는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적폐가 인명 피해 초래. 1회성 아닌 지속적 감사. 현장 위주 감사, 잘못이 용납되지 않는 경각심”이라며 ‘적폐 탓’을 했다. 9월13일 수석회의 메모에는 “세월호 백서 집대성하면 오히려 엇갈린 사항이 있어 빌미 대상”이라고 쓰여 있다. 정부가 세월호 문제에 얼마나 안이한 태도를 보였는지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비판적 여론이나 인물들을 찍어누르는 데에도 ‘청와대의 검은손’이 동원됐다. 2014년 8월27일 메모에는 “산케이 처리, 검찰과 의논을 교환, 관계기관 협의로 처리 외무 법무. 사죄 등 용납 가능한 것을 확인. 은밀하게”라는 주문사항이 있다. 일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로 꼽던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다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 전 비서실장은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 응징해줘야 List(리스트)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 수집 경찰 국정원 팀 구성토록”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후에도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해 청와대는 “산케이. 대통령 계셨고, 볼 일도 없고 만난 일도 없다. 특정 기자의 범죄 행위에 대한 대응(法), 언론 자유 이름으로 국가원수 모독은 용납될 수 없다”는 식으로 가토 전 지국장을 표적으로 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영화 의 상영을 막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해 9월 초부터 청와대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의원을 통해 국정감사장에서 성토를 당부하는가 하면, 배급사 시네마달과 영화 상영이 예정된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직접 거론하며 ‘자금원 추적’ ‘수사’ 등을 지시했다. 을 특정해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주문도 했다.

상영 막으려 전력

160쪽 분량의 업무수첩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 지시사항이 “세월호 사고 관련 후속 점검, 제재에 관심(領(령))”(8월25일)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다른 대통령 지시는 한가로운 것들이었다.

7월22일 메모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즐겁게 일하는 것, 열정→성공, 사명 완수.현장에서의 생각지 않은 문제점. 현실적 피드백 확인, 국민이 실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성범죄자 신상 정보 확인. 잘한 일 홍보되도록. 휴가철 범죄 유관 부처 협조, 대처.”

그 시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이 머리 손질하고, 밥 먹은 7시간’을 숨기기 위해 거짓과 위선을 동원해 피 말리는 ‘세월호 대응 여론전’을 펴고 있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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