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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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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분노, 6월 항쟁 때와 비슷”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본 대변인, 2006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지낸 인명진 목사

“유신 왕조 종지부… 최순실 사건이 출구 보이지 않던 사회에 새로운 출구 될지도”
등록 2016-11-11 07:52 수정 2020-05-02 19:28
3_함성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 할 말만 했다.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한 번도 국민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지 않았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추락하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정치를 무시하는 행보도 여전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전혀 의논하지 않은 채 기습 개각을 발표한 뒤 야권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하야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06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최순실 사건이 출구가 보이지 않던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일 기자

2006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최순실 사건이 출구가 보이지 않던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일 기자

인명진(70) 서울 구로갈릴리 교회 원로목사만큼 박근혜 정부에 꾸준히 경고를 던진 인사는 드물다. 집권 2년차엔 “긴급조치는 없지만 유신시대를 사는 듯한 분위기”라 했고, 3년차엔 “찬바람 부는 한겨울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지낸 그로서는 현 정부의 역주행을 더욱 민감하게 감지했을 것이다.

지난 11월1일 상임대표로 있는 서울 마포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인 목사는 “대통령의 통치가 마비된 국가비상 사태”라며 “국민을 속인 대통령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6월 항쟁 때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잔재가 해소되지 않았던 ‘유신 왕조’가 종지부를 찍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최순실 사건이 출구가 보이지 않던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을 말했다.

“쌓여 있던 분노 터져나왔다”

인명진 목사는 노동·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따라다녔고, 다른 사람보다 예수를 좀더 바짝 따라가는 목사도 그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은 노동자였다”는 신념이 그를 이끌었다.

1972년부터 12년 동안 서울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 총무를 맡은 인 목사는 긴급조치 위반, YH무역 여공 추락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10년 동안 네 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2006년엔 당적 없이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하며 보수 개혁에 나서기도 했다. 인터뷰는 11월1일에 이어 3일 전화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현 시국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국가비상 사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10% 언저리 아닌가. 보통 지지도가 30%가 안 되면 국정 수행 동력이 없어진다. 통치의 유고 사태로 봐야 한다. 배로 말하면 대한민국호의 조타수가 없어진 것이다.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이젠 자기 안위나 정치공학적으로 빠져나갈 생각 말고 나라를 위해 어찌할지 걱정해야 한다. 스스로 “나라 걱정에 밤잠을 못 잔다”고 하지 않았나.

분노한 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이 자신을 속인 것에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 줄 알았더니 엉뚱한 사람이 좌지우지했고, 세금은 엉뚱한 사람이 갖다 썼다. 최순실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고, 기업에서 수백억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인식은 (최순실이라는) 무당이 나라를 주물렀다는 것이다.

국민 마음속엔 최순실 사건 이전부터 많은 분노가 쌓여 있었다. 박 대통령의 독선과 편가르기, 총선 공천 과정에서의 무리한 개입, 당내 보기 싫은 사람 찍어내기 등. ‘헬조선’이라 한탄하는 젊은이들은 최순실 딸 정유라의 대학 입학 과정 등에서의 각종 특혜를 보며 분노로 가슴이 터지지 않았겠는가.

사실 젊은이들을 보며 좀 걱정을 했다. 세월호 참사,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 등 박근혜 정부의 불의를 보고도 “젊은이들은 왜 이른바 스펙만 쌓는다고 도서관에만 있을까, 왜 분노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렇게 참을성 많은 젊은이들이 이제 나서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벌어지는 집회에 길 가던 중·고등학생과 보통 시민들도 합세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때도 ‘넥타이 부대’가 합세했다. 정부가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권 때나 위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문제의 핵심이 대통령인 경우는 없었다.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는 아들이, 노무현·이명박 정권 때는 형이 문제가 됐다. 이번엔 대통령 자신이 문제다. 이 점이 수습을 더욱 난감하게 한다. 그래서 비상사태라는 것이다.

인 목사를 비롯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사회 각 원로들은 11월2일 “박 대통령은 사적인 국정 운영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가 기강을 무너뜨려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을 흔들었다”며 초당적 거국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문제는 대통령 자신… 스스로 사태 악화”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인명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용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인명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용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원로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이유는.

중고생들도 지금 나라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앞길이 막막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걱정이 컸다. 그동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국정 운영을 해왔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저 자리에 두냐는 말이 많았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폐쇄를 예로 들어보자.

개성공단은 통일 뒤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염두에 두고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익숙했던 북한 사람들에게 시장경제를 연습시키는 교육장이자 학교였다. 이를 폐쇄하고 어떤 체제로 통일을 하자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됐다.

국정 운영 보고 역시 대부분 서면으로 받았다는 것 아닌가.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도 서면보고를 받았다. 급기야 (최순실의 농단으로) 국정이 완전히 마비되고 위기가 절정에 다다랐다. 언제 이런 때가 있었나. 국정이 공적으로 작동되지 않았을 때 나라가 망했다. 러시아가 망할 때 괴승 라스푸틴이 있었고, 대한제국이 망할 때는 진영군이라는 무녀가 있었다. 고려도 요승 신돈 때문에 망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가.

박 대통령이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다. 관련된 부분은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권이 끝나면 받을 일이다. 퇴임 뒤에는 수모를 당하며 수사받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4일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총리와 비서실장을 내정했는데.

문제는 국민의 신임을 잃은 대통령 자신이다. 그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사람들을 국민이 인정하겠는가. 여전히 진정성 없는 불통 행보를 보이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인식 못하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느낀다. 안타깝다. 사태를 스스로 악화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책임은.

새누리당은 대통령이 이렇게 되기까지 방조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거의 대통령과 같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 새누리당이 제대로 했으면 이런 불행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관련자들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결사적으로 막지 않았는가.

특히 친박은 대통령을 잘못되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러나야 한다. 일부는 정계 은퇴도 해야 한다. 지도부 역시 안 물러나고 버티면 국민은 더 음흉한 꼼수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태민 일가 문제를 거론했는데.

최태민 이야기는 당시에도 많았다. 후보 검증 청문회 때 박근혜 후보에게 최태민 문제를 물어보면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청문회 말미에 나는 “최씨 가문과의 악연은 박 후보에게 평생 큰 짐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시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듣고 박 대통령이 주변을 잘 정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끈질기게 최태민 가문과의 인연이 이어질 줄 몰랐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 문제 처리를 두고 김재규와 갈등한 끝에 10·26 사태로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37년이 지난 지금,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의 딸 최순실 탓에 위기에 봉착했다. 그것도 똑같은 10월에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추락은 어떤 의미를 띨까.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 잔재가 해소되지 않았던 ‘유신 왕조’가 마지막으로 몰락하는 것 같다.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는 됐지만 유신 잔재는 남아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는 민정당과 3당 합당했고, 김대중 정부도 유신의 핵심이던 김종필 전 총리와 합했다. 노무현 정부도 개혁을 추진했지만 과거 유신, 군부 기득권 잔재 세력의 큰 저항에 부딪혀 좌절한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과거에 겪은 유신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과 권위주의적 불통, 사법·언론 장악 등 사회 곳곳에서 유신의 잔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도 대통령 지지율은 늘 고정적으로 나왔고, 선거만 하면 새누리당이 이겼다.

그 사이 경제는 추락하고 청년들은 ‘헬조선’이란 말을 되뇌었다. 국민들 사이에서 ‘내가 뭐라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감정이 팽배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답답함을 뚫었다. 곪은 종기가 극적으로 터졌고 역설적으로 우리 앞에 새롭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다.

개헌 역시 새 장이 열리게 됐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국민이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모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됐다. 이번에도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데 국민의 마음이 모이고 있다. 개헌의 주도권은 의회로 넘어갔다.

‘유신 왕조의 마지막 정권’ 평가될 것

인명진 원로목사는 개헌 주창자다. 개헌을 고리로 한 정치개혁 국민운동을 주장한다. 그는 여러 개헌 관련 토론회에 나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수명을 다했다”며 내각제를 제시했다.

박근혜 정권은 어떻게 평가될 것으로 보나.

‘유신 왕조의 마지막 정권’으로, 비극적인 정권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후대 정권에는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수많은 과실로 역사에 교훈을 남긴. ‘역사는 거꾸로 돌리려 한다고 돌려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거스르려는 쓸데없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길 것이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정리 배혜진 디지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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