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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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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위해 발벗고 나선 ‘나쁜 사람들’

특혜 의혹 처음 제기한 안민석 의원

“정유라 국가대표 선발과 대학 입학 위해 승마계-정부-이화여대 치밀한 협력 프로젝트”
등록 2016-11-02 12:48 수정 2020-05-02 19:28
3부_파국의 시작 정유라
정유라를 둘러싼 의혹을 밝히는 과정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정유라를 국가대표로 만들고 대학에 입학시키는 과정에 최순실 주도로 승마계와 정부, 이화여대가 함께 치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승마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있고, 청와대에서 대한승마협회 감사 지시를 지시한 뒤 관련 공무원들이 경질됐다.”

온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의 발단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 4월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관련 특혜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춘계승마대회에서 정유라씨가 2위를 하자 상주경찰서가 이례적으로 조사에 나서고, 그해 9월 이 사건을 특별감사한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대기발령이 난 의혹과 그 배후에 대해 물음을 던진 것이다. 당시 정부 쪽이 부인하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의혹 제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제 안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씨, 딸 위해 승마협회 ‘장악’

이후 안 의원은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칙 개정 특혜 문제 등을 잇달아 제기하며 ‘최순실 게이트’를 열어젖히는 디딤돌을 놓았다. 지난 10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안 의원은 “정유라씨를 국가대표로 만들고 대학 입학을 위해 승마계와 정부, 이화여대가 함께 치밀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정유라씨 관련 승마 특혜 의혹을 어떻게 처음 접했나.

(의혹 제기) 2년이 지나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2014년 1월 모임에서 한 신부님이 “정윤회씨 딸 때문에 승마계가 난리 났다. 그것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이 경질됐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시 내 상임위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여서 관심 갖고 승마인들을 만나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2013년 4월 상주 전국승마대회 뒤 “왜 정유라에게 점수를 그렇게 줬느냐”고 심판들을 조사했다더라. 경찰 조사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의심이 갔다. 심판들을 만나봤더니 청와대와 연결돼 있었다. 심판들은 “이걸 왜 경찰이 조사하느냐”고 항의했고 경찰은 “말이 안 되는 줄 알지만 윗선에서 지시가 왔다”고 이야기했다더라. 청와대가 경찰을 동원해 심판들을 조사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한승마협회 등 복수의 관계자에게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안봉근 비서관이 경찰에 조사를 요청했다는 말이 나왔다.

상주 승마대회 이후 문체부 ‘살생부’ 이야기가 나오는데.

2013년 상주대회 한 달 뒤인 그해 5월 승마계 살생부가 나돌았다. 작성자는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다. 박 전 전무는 승마계에서 도덕적 평가가 좋지 않다. 2008년엔 공금 횡령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그가 승마계에서 재기하기 위해 최순실씨 손을 잡는다.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였다. 이때부터 박 전 전무와 최순실씨가 함께 정유라씨를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를 만들려고 승마협회 장악에 나선 것이다.

점수를 잘 받으려면 심판 배치를 담당하는 승마협회를 장악해야 한다. 그래서 승마협회 안에 있는 자신의 반대파들 이름을 적어 청와대에 건넨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문체부에 승마협회 감사를 지시한다. 감사에선 협회와 정윤회씨 모두 잘못이 있다고 결론 냈다.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감사가 미비하다며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에게 “나쁜 사람”이라며 감사를 맡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 과장을 찍어 말하고 둘은 좌천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7월23일 국무회의에서 “경기단체 임원들이 명예를 위해 협회장을 하거나 오랜 기간 운영하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체육 발전을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시 뒤 문체부는 그해 말까지 대한체육회 산하 2천여 개 전국 시도 경기단체를 감찰한다. 승마, 태권도 등 언론이 지적하거나 민원이 발생한 경기단체를 중심으로 우선 감사를 했다. 모든 길은 김종·박원오로 통한다? 이후 김종 문체부 2차관이 임명되는데.

2013년 9월 임명된 김종 차관은 갑자기 체육계 4대 비리 척결을 내세운다. 체육계에 광풍이 분다. 결국 체육계 비리 척결을 빌미로 승마협회를 정리하고 박원오 전 전무 중심의 승마협회를 만들려 한 것이다. 강원도 지역 승마협회 관계자는 “문체부 쪽에서 직접 연락해 협회장을 그만두라고 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원오 전 전무 중심으로 승마협회가 재편된다.

살펴보면, 상주경찰서 심판 조사→승마협회 감사에서 정윤회씨 잘못 지적한 문체부 담당자 좌천→최순실씨를 등에 업은 박 전 전무 체제 중심 승마협회 정리, 이렇게 이어진다. 최순실씨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심판들이 눈치를 보고 알아서 점수를 준다. 정유라씨는 이후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유라 국가대표 만들기’라는 1차 프로젝트가 성공한다.

‘정유라 국가대표 만들기’가 1차 프로젝트라면 2차 프로젝트는 뭔가.

최순실씨 처지에서 보면 딸이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1단계 목표였다. 그다음은 대학 입학이다. 대학을 보내기 위해 아시안게임 메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측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은 한 개인이 잘못하더라도 나머지 3명이 잘하면 메달을 딸 수 있다. 정유라씨는 2014년 9월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딴 금메달을 갖고 대학에 가려 했다.

처음에는 고려대 문을 두드렸다. 고려대에선 마장마술은 말에 좌우되는 측면이 많다며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앙대에도 노크해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을 선발 과정에서 인정해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중앙대는 입시 요강 원칙에 따라 정유라씨를 뽑지 않았다. 이화여대 경우는 잘 알려진 대로다.

정유라씨는 면접에 눈에 띄도록 선수복을 입고 간다. 말도 안 되게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인데도 이화여대는 허용했다. 입시 부정이다. 이화여대는 2014년 정유라씨가 수시전형에서 체육특기자로 합격할 때 체육특기자 입학 가능 종목을 11개에서 23개로 늘렸다. 승마는 이때 신설됐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신산업융합대학장인 김경숙 체육과학부 교수다. 김 교수와 김종 문체부 차관은 아주 가까운 사이다. 김 차관은 최순실씨와 연결돼 있다. 승마를 특기자 입학 가능 종목에 추가한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이화여대 쪽에서 정유라씨가 탐나니 입학 조건을 만들어둬야 한다고 한 것 아닌가 싶다. 결국 이화여대는 지금껏 나온 각종 특혜와 무리한 아시안게임 금메달 인정 등을 통해 정유라씨를 합격시킨다. 그렇게 두 번째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최순실씨와 권력의 힘으로 된 것이다. 공정하지 못했다.

‘이화여대판 도가니’ 사건 김종 차관이 각종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차관이 임명될 때 최순실씨 입김이 작용한 듯하다. 김 차관은 지금 최장수 차관이다. 문체부 차관 평균 재임 기간이 13개월인데 지금 36개월째다. 이건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2014년 4월 대정부질문에서 정유라씨 국가대표 선발 의혹을 제기한 뒤 엿새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내 주장을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반박한다. 장관이 반대하는데도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차관은 차은택씨가 관여한 ‘늘품체조’ 시연회에도 4차례나 참여한다. K스포츠재단을 보면 스포츠마케팅 쪽에서 일을 도모한 것 같은데, 김 차관이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다. 이런 그림을 김 차관이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좀더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김종 차관은 한양대 스포츠마케팅 교수로 재직하다 차관으로 임명됐다. 최순실씨와의 인연이 발탁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이 우력하다. 김 차관이 최순실씨가 주도한 비선 비밀 회합에도 참석했고, 최씨에게 인사 청탁을 하거나 보고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 차관은 이런 의혹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김경숙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장의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김종 차관과 가까운 사이다. 대한체육회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으로 김 차관이 김 학장을 추천했다. 이화여대 승마 특기생 모집 학칙 개정에서 대학본부와 학과 사이에 연결고리 구실을 했다. 학사 관리 등의 일정에서도 총장부터 해당 교수에 이르기까지 이화여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것은 ‘이화여대판 도가니’ 사건이다. 정말 특별한 아이를 특별하게 고려, 배려하자는 공감대가 없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학칙 변경도 마찬가지다. 이화여대는 최순실씨가 학교를 방문한 뒤 지난 6월 학생이 국제대회, 연수, 훈련 교육실습 등에 참가한 경우 출석으로 인정하도록 학칙을 개정해 출석 예외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화여대는 교육부의 지원사업을 거의 싹쓸이한다. 그 규모가 1천억원 정도로 전국에서 1위일 것이다. 정유라씨에게 특혜를 베풀고 그것의 보상으로 이화여대가 교육부에서 예산을 대대적으로 지원받은 것이다.

정유라씨 담당교수이던 함아무개씨가 최순실씨와 지난 4월 싸운 뒤 바로 바뀐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함 교수 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순실씨가 찾아와 “딸이 독일에서 국가와 대학을 위해 말을 타고 훈련하는데 학교가 사정을 좀 봐줘야 하지 않냐”고 언성을 높였고 이에 함 교수도 대응했다고 한다. 함 교수는 지인에게 “살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한다”고 했다.

정유라는 ‘비정상’으로 메달 따고, 대학 입학2년 동안 이 문제를 추적해왔는데.

최순실씨 처지에서 보면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보다 대학 입학 문제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원오 전 전무를 통해 딸이 국가대표가 되고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다음은 어떻게 대학을 갈지인데, 정상적이고 공정한 방법이 아니었다. 특혜는 없었다는 이화여대 총장의 사퇴 발언을 보면 아직도 그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있다. 검찰 수사와 교육부 감사에서 밝혀야 한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정리 최창근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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