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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기자 출신성분 전격 분석… 출신 대학도 전공도 가지각색, 이상적인 조건도 필수불가결한 무엇도 없지만 좋은 기자 되려면…
등록 2015-06-03 03:39 수정 2020-05-03 00:54

“도공의 심정으로 망치를 들어 깨버리고 질흙부터 다시 버무리려 해도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에서) 2008년 이 문장을 쓴 안수찬 편집장을 비롯해 모든 기자들에게 후회는 얄미운 친구다. 후회하며 기사 쓰고, 기사 쓰고 후회한다. 밥을 지으려다 죽을 쑤는 날도 있다. 그런 밤이면 그들은 차디찬 소주에 아픈 기사를 말아 넘기며 주말을 맞는다. 그들은 누구인가.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고 어디로 흐르고 싶어 하며, 무엇을 고민하는가. 개인 사정으로 잠시 현업에서 몸을 뺀 허윤희·신소윤 기자를 빼고 기자 18명에게 ‘취재요청서’를 보냈다. 이력서에 쓸 법한 내용부터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고뇌까지 두루 들어보시라.

5월2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4층 <한겨레21> 뉴스룸에서 기자들이 기사 마감을 하고 있다. 잡지 제작을 마무리해야 하는 금요일은 ‘불금’이 아니라 불금이 한없이 부러운 날이다. 박승화 기자

5월2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4층 <한겨레21> 뉴스룸에서 기자들이 기사 마감을 하고 있다. 잡지 제작을 마무리해야 하는 금요일은 ‘불금’이 아니라 불금이 한없이 부러운 날이다. 박승화 기자

우리교육, 참여연대, 서울신문, 광고회사…

기자들 대다수는 각자의 출신 대학과 전공을 모르고 지낸다. 그것이 기자의 자질과 능력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로 처음 밝혀진 바, 18명 기자의 출신 대학은 모두 11곳이다. 그 가운데 이른바 ‘SKY’ 출신은 10명이다. 세월호 참사의 실체를 추적하며 연이은 특종을 보도하고 있는 정은주 기자, 1년짜리 장기탐사기획(‘가난의 경로)에 투신한 이문영 기자, 온오프와 영상·텍스트를 넘나드는 송채경화 기자 등은 SKY 출신이 아니다. 정치 기사에 체온을 담아내는 송호진 기자, 한국사회 분석의 달인 신윤동욱 기자 등은 SKY 출신이다.

전공도 가지각색. 국어국문학·독어독문학·영어영문학·중어중문학부터 사회학, 언론정보학, 경영학, 토목공학, 생명과학 등등. 사진팀 류우종 기자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전진식 기자는 한때 육군사관생도였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김진수 기자는 카메라와 절친이다.

신입 공채와 경력 공채의 비율을 따져보니, 8 대 10으로 경력 공채 비율이 오히려 더 높았다. 다른 곳에서 일하다 한겨레신문사에 들어온 경우가 더 많다. 신윤동욱 기자는 3년간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구둘래 기자는 편집기자로 일하다 프리랜서와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다시 한겨레 식구가 됐다. 이완 기자는 “국회에서 인턴 생활을 호구지책으로 6개월 했다”고 한다.

대학언론에서 일한 경험이 기자가 되는 데 더 유리하다는 ‘속설’도 에선 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18명 가운데 13명이었다. 다만 안수찬 편집장은 대학 교지 편집장 출신이다. 유능한 편집장이었는지에 대해 그는 답변하지 않았다. 정은주 기자는 대학 학보사뿐 아니라 캐나다 유학 시절 지역 라디오방송 리포터, 인턴기자 등을 경험했다. 익명을 요청한 어느 기자는 “그런 경험 없다. 줄곧 데모만 했다”고 답변했다.

이문영 기자는 교육전문지 기자, 참여연대 조세개혁 담당 간사, 기자를 거쳐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황예랑 기자는 대학언론사 출신들이 모여 만든 에서 2년간 일하기도 했다. 전진식 기자는 기자생도였지만 독후감만 썼단다.

언론사 시험에 매달린 기간은 1~2년이 가장 많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준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안수찬 편집장은 스스로 “밥맛 없는” 답변을 내놨다. 그의 시험 준비 기간은 넉 달이다. 김효실(9개월), 황예랑(7~8개월), 정은주(8개월) 기자는 1년 미만에 날렵한 성공을 거둔 경우다. 정은주 기자는 스터디 모임에서 별 성과를 얻지 못해 독학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하루 2시간 과외를 하고 나서는 옥탑방에서 온갖 책들만 봤다는 기자도 있다. 신윤동욱 기자의 대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입사시험 대비 토익 공부 정도였습니다.” 김선식(2년), 이완(1년6개월), 송채경화(2년), 박수진(2년5개월) 기자가 알면 혀를 찰 게 분명하다.

어쩌다 보니 되어 있더라
<한겨레21> 기자들 이력 분석

<한겨레21> 기자들 이력 분석

어려서부터 기자를 꿈꾼 사람들, 당연히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은 항상 기자였음.”(황예랑 기자) “대학 4학년 때부터 기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모든 역사적 현장에 있고 싶다, 사람들이 모르는 이면을 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음.”(박수진 기자) 현실에 응답한 사람도 있다. “2008년 나의 현실적 구직 조건에 부합.”(김선식 기자) 현실 그 자체이기도 했다. “취직하고 싶었어요.”(구둘래 기획팀장) 환상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 사설을 스크랩해서 읽었던 걸 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듯. 아마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환상’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정은주 기자)

좀더 학업을 닦다 전향한 이도 있다. “석사 학위 받은 뒤에 학업의 길을 그만 가야겠다고 결심. 평소 정치·사회에 관심이 많았고 성격상 기자 생활이 맞을 것 같았음.”(송채경화 기자) ‘기자’라는 이름에 갇히기 싫었던 사람도 있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정용일 기자) 부지불식간도 있다. “그냥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 순간 기자가 되어 있었음.”(박승화 기자) 현장에서 답을 얻기도 한다. “대학 때 빈민촌, 철거촌,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현장 등을 경험했는데, 그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서.”(이정연 기자) 연극 무대를 내려와 현실에 올라선 이도 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자와 글’은 ‘연극 무대’로 나아가다 멈춘 내가 택한 또 하나의 길이었다.”(송호진 기자)

전공도 가지각색, 사진팀 류우종 기자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전진식 기자는 한때 육군사관생도였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김진수 기자는 카메라와 절친이다.

2015년 5월, 그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 “아직 기자의 ‘ㄱ’도 되지 못한 듯해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김효실 기자) “얼렁 기자 때려치우자 하며 나이 먹고 있음. 큰일이라 생각.”(류우종 기자) 정용일 기자는 “삶에 허덕이고 있다”고 했고, 이완 기자는 “내가 제대로 기사를 쓰고 있는지, 내가 가는 커리어가 맞는지”를 매일 자문하고 있다. “바이엘 100번을 100번 치는 느낌”(신윤동욱 기자)이 들 만큼 반복되는 일에 힘겹고, “매주 밤을 새워야 기사가 나오고 아이템은 보이지 않고 늘 아등바등”(정은주 기자)할 수밖에 없는데다, “일정한 틀에 나의 시각과 글이 갇혀 있다고 느낄 때”(송호진 기자)도 많다. “기자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전진식 기자)이라는 생각을 10년째 하기도 한다.

고민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예가 없는 건 아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이정연 기자) 고민이 기자의 숙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민이 멈추는 순간, 회의와 성찰이 사라지는 순간, 좋은 기자 되기가 불가능해짐.”(안수찬 편집장)

기자, 아무나 할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기자가 되는 길, 정말 다양하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 공채인지 경력인지는 기자의 본질과 무관하다. 하기 나름이다. 이상적 조건 따위도 없다. 기자가 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무엇도 없다. 기자, 아무나 할 수 있다. 시민이 기자인 시대다. 삶의 이력이 더 소중하다. 삶을 대하는 얼이 더 절실하다. 그러니 좋은 기자가 되려 한다면 고뇌하고 성찰해야 한다. 고통하지 않으면 공감은 얻어지지 않는다. 시민과 공감하는 기자를 시민은 고대하고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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