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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상안, 시행령 강행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2부-그날. 정부 4월20일부터 배·보상 접수에 들어가… 특별조사위원회 독립성 훼손하는 시행령의 수정·폐기 논의 차관회의는 미뤘지만 강행 가능성도 있어
등록 2015-04-18 08:21 수정 2020-05-02 19:28

4월10일 오후 2시30분. 해양수산부가 수협중앙회(서울 송파구)에서 ‘세월호 배·보상 설명회’를 열었다. 인천, 제주, 전남 진도를 거쳐 서울에서 끝나는 현장 설명회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서울·수도권에 사는 일반인 피해자 60명(구조 인원 포함)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였지만 13명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제주 지역 설명회에 참가했다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서울로 올라와 설명회를 다시 찾은 2명이 포함된 수치다. 이날 설명회는정부가 세월호 배·보상 절차에 들어갔다는 걸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처럼 비쳤다. 설명회에서 만난 해수부의 한 인사는 “(참사) 1주기에 앞서 배·보상 설명회를 열어 송구스럽다”면서도 “배·보상 절차를 밟는 게 희생자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4월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서울 지역 배·보상 설명회를 열었다. 정부가 설명회를 강행했지만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 류우종 기자

정부는 4월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서울 지역 배·보상 설명회를 열었다. 정부가 설명회를 강행했지만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 류우종 기자

진상 규명이 진정한 의미의 배·보상

경기도 안산 단원고 피해 학생 가족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 설명회가 열린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배·보상 기준과 각종 지원책, 참사 관련 비용 등을 전방위적으로 발표하며 시행령 폐기와 선체 인양을 향한 여론을 잠재우려 한다. 두 가지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배·보상 절차를 중단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지난 4월2일 삭발하며 정부에 이미 촉구했지만, 정부가 계획대로 설명회를 진행하며 배·보상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해결을 위해 먼저 할 일은 배·보상도, 추모도, 심리치료도 아니다.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진상 규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유가족의 상실감을 치유할 심리치료이자 진정한 의미의 배·보상이란 점을 다시 상기시킨 것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이완구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진행했다가 무산됐다. 하지만 정부는 제주(4월20~22일), 인천(4월27일~5월1일), 안산(추후 확정)에 현장 접수처를 설치해 ‘배·보상 집중 접수 기간’을 가동하기로 했다. 배·보상 접수 기간은 9월까지다.

정부는 배·보상 절차에 대한 중단 요구뿐 아니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시행령의 폐기 촉구에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특위의 구체적 운영 방법 등을 다룬 정부의 시행령은 세월호 특별법으로 설치한 특위의 인원을 120명에서 90명으로 줄이고 해수부 파견 공무원에게 기획조정실장을 맡겨 진상 규명, 종합대책 등을 기획·조정하도록 했다. 이석태 특위 위원장과 유가족들은 인원까지 줄이면서 조사를 받아야 할 공무원에게 조사 총괄 기획이란 감투까지 씌워준 시행령이라고 반발했다(제1056호 표지이야기 ‘조사 대상이 조사하면 과연 국민들이 믿겠습니까’ 참조).

시행령 폐기 가능성 높지 않아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자, 정부는 일단 시행령 공포 일정을 미뤘다. 입법 예고 기간(4월6일)이 끝난 뒤 차관회의(4월9일), 국무회의(4월14일)를 거쳐 시행령을 확정할 계획이었지만, 차관회의를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16일로 늦췄다.

현재로선 정부가 시행령을 폐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이 지난 4월7일 국회에서 했던 발언에서도 그런 기류가 보인다. 그는 시행령에서 새롭게 두기로 한 기획조정실장(해수부 파견 공무원)이 특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어느 부서나 총괄하는 기능을 가진 부서가 있다. 이 부분을 가지고 조사에 간섭하고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건 오해다”라고 말했다.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핵심 대목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석태 특위 위원장은 바로 반박했다. “과거 다른 위원회와 비교해도 옳은 주장이 아니”란 얘기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선 정부에서 파견한 공무원이 주축인 행정부서가 지원 기능에 한정됐다는 것이다. 조사를 기획·조정하는 업무는 조사부서에서 독립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행정부서가 조사 업무를 기획·조정하도록 한) 이번 정부의 시행령은 특이한 사례다. 조사에 간섭하려는 의도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시행령을 철회하고 원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14명으로 구성된 특위는 지난 4월2일 전체회의에서 여당과 대법원장 추천 위원 4명을 뺀 10명의 찬성으로 시행령 철회를 결의했다. 애초 국회에서 통과한 세월호 특별법에서 정한 대로 특위 인원을 120명으로 되돌려놓고, 해수부 파견 공무원에게 조사 업무 기획 총괄 권한을 주지 않는 원안으로 특위가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위는 정부가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끝내 통과시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여론을 계속 모아 시행령 폐기를 압박하겠지만 정부가 묵묵부답일 경우 시행령 공포 범위 내에서 차선책을 찾겠다는 뜻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4월9일 기자들과 만나 “시행령을 공포하면 일단 특위를 출범시킨 뒤 민간인을 채용하고, 공무원을 (추가로) 받아 기본적인 활동 인력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특위 위원장이 위원회의 업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공무원의 파견근무를 요청할 수 있다”는 세월호 특별법 제21조 1항을 들었다.

그러나 세금 낭비를 운운하며 시행령을 통해 특위 인원 감축에 나선 정부가 특위 위원장의 민간인·공무원 추가 확보 노력에 적극 화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유가족 대립 치달을 그날

이 때문에 이 위원장도 정부에 전향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특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업무의 독립성이 지켜져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이 가능하고 최종 조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국무회의에 앞서 시행령 강행, 수정, 폐기 등을 논할 차관회의는 4월16일 열린다. 자식을 먼저 보낸 유가족의 고통과 그리움이 극에 이를 날(1주기)에, 우린 시행령 폐기를 둘러싼 정부와 유가족의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이날 대통령은 남미 4개국 출장을 떠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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