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도록…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 요구하며 ‘416시간 노숙농성’ 중인 학부모 52명 삭발… ‘3가지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무기한 농성 계획
등록 2015-04-07 08:06 수정 2020-05-02 19:27

“대한민국이 우리 애들의 억울함을 밝혀준다면 머리는 100번이고 깎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밝혀질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유가족만으론 안 됩니다. 머리카락이 다 나기 전에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민이 한마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길바닥이다. 지난해 청와대 앞 풍찬노숙, 국회 앞 밤샘 농성,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 그리고 다시 길바닥.
“오죽 답답하면 또 나왔겠어요. 별의별 방법을 다 썼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니 길바닥에 앉은 거죠.”
빗물까지 후드득 떨어진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비닐로 겨우 몸뚱이 하나를 가리고 밤을 지새울 준비를 마친다. 그의 뒤엔 “백성이 근본”이라고 말한 세종대왕상이 서 있고, 그 뒤론 “유가족의 한이 없게 하겠다”던 청와대가 보인다. 그가 앉은 바닥은 지난 3월30일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에 가로막힌 지점이다.
“진상 조사도 제대로 안 됐는데 정부가 왜 배·보상을 먼저 얘기합니까? 내 새끼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돈 받은 부모가 편하게 쓰겠어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지난 4월2일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희생자 가족을 돕는 시민활동가들이 만류할 수 없을 정도로 삭발을 통한 진상 규명 촉구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지난 4월2일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희생자 가족을 돕는 시민활동가들이 만류할 수 없을 정도로 삭발을 통한 진상 규명 촉구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우리 딸 꺼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지난해 46일간 단식한 그의 머리는 삭발이 된 상태였다. 4월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뭉텅 잘린 엄마·아빠의 머리카락과 눈물이 뒤섞여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라도 하면 우리 얘기를 들어주겠지”라며 이날 삭발에 참여한 부모가 52명이나 됐다.

이들의 요구는 세 가지다. 암흑 바다에 빨려 들어간 세월호를 인양해달라는 것.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단원고 학생 (허)다윤이를 포함해 9명의 실종자를 아직 품고 있다. 다윤이 아버지는 “(딸과 실종자들이) 너무 깜깜한 바다 속에 있습니다. 꺼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입법 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도 촉구하고 있다. 조직 규모와 조사 대상을 축소하고, 조사를 받아야 할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특별조사위원회 운영을 좌지우지할 자리에 앉히는 시행령안으로는 진상 규명이 어렵다는 것이다. 시행령 폐기와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배·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도 요구했다. ‘찬호 아빠’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추모와 진상 규명의 열기가 높아져가는 때에 돈으로 피해 가족들을 능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식 목숨을 앞세워 돈이나 더 챙기려는 비정한 부모들로 몰아가지 말고, “억울하게 숨진 내 새끼가 왜 그렇게 죽어갔는지”부터 밝혀달라는 것이다.

엄마들은 삭발하려고 기다리면서, 긴 머리가 잘려나간 다른 엄마를 안으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이 밑으로 떨어질 때 입술을 깨물고 “음, 음…”, 소리를 억누른 채 눈물을 흘렸다. 삭발 현장에서 만난 희생자 엄마·아빠들의 말에 울분, 답답함, 울먹임, 그리움이 섞여 있어 한 글자 한 글자 받아적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우리 수진이한테 너무 미안한 부모입니다. 바다 속으로 죽어가는 걸 봐야만 했으니까요. 더 이상 우리 애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 데) 끝까지 할 겁니다.”

“왜 이런 나라에서 내 새끼를 낳고 키웠는지 모르겠어요. 이 나라에 대통령이 있습니까? 진실을 밝혀달라는데 돈을 주면서 ‘옜다 먹어라?’ 내 새끼가 어떻게 갔는지 알아야겠다는데 왜 부모들만 잘못했대? 왜 이렇게 우릴 몰아붙여. 우리가 죄인입니까? 이대로 나는 못 죽어. 억울해서 못 죽어.”

“4월은 우리 아이 기일이 있는 달입니다. 몰상식하게도 우리 아이들 기일이 있는 달에 돈 얘기를 꺼낸 인간들, 정말 잡아 죽이고 싶어요. 내 아들한테 미안해서 이 아비가 어떻게 삽니까?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우리 애들의 억울함을 밝혀준다면 머리는 100번이고 깎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밝혀질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유가족만으론 안 됩니다. 머리카락이 다 나기 전에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민이 한마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재욱이가 ‘우리 엄마 엽기네’ 하겠죠”

“아들 재욱이가 삭발한 거 보고, ‘역시 우리 엄마 엽기네’ 하겠죠. 아들이 하늘 위에서 이런 얘기도 할 거 같아요. ‘엄마, 위에서 보니 세상이 다 보여요.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까지. 이곳으로 올라오면서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웃으며 살았으면 했는데 삭발한 걸 보니 내가 살고 온 세상, 엄마가 살아갈 세상이 많이 바뀌어야겠구나란 생각도 드네. 우리 엄마·아빠 환하게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게 많은 분들이 함께 움직여주실 거죠? 약속해주세요’라고요.”

“전 태극기가 진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싫어요. 어떻게 우리들한테 이렇게까지 합니까? 그냥 자식 잃은 엄마로 봐주세요. 왜 이렇게 돈으로 포장해요. 그게 더 서럽습니다.”

“엄마가 힘이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

“내가 (삼성의) 이건희라면 언론이 이렇게 보도를 안 해줬을까요?”

“대한민국이 우리 애들의 억울함을 밝혀준다면 머리는 100번이고 깎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밝혀질 수 있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유가족만으론 안 됩니다. 머리카락이 다 나기 전에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민이 한마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별법이 지난해 11월 어렵게 통과됐을 때 하늘에서 우리 애들이 웃었을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시행령으로 ‘2014년 4월16일’로 다시 돌려놓으려 하고, 엄마·아빠들은 머리를 깎고 길바닥에 나앉았으니 우리 아이들 통곡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나의 첫 보물인 영란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에 말했어요. ‘내가 있어 행복하고 즐겁지?’ 그 얘기가 지금도 입가에 맴돌아요. 미안하고 미안해요. 못난 아빠여서인지, (진상을) 밝혀주지 못해서인지 꿈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꿈에서라도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강)승묵이 아버지. 세월호 침몰 직전인 오전 9시43분, 승묵이는 “아빠, 배가 가라앉고 있어”라고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승묵이에게 ‘친구들과 무조건 나와야 한다. 해경을 믿고, 대한민국을 믿어라. 승묵아 당황하지 마라. 질서 지켜 대피하고 아빠가 걱정되니 꼭 전화해줘’라고 했는데, 이후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상식을 얘기했는데, 왜 자식에게 죄를 지은 게 돼야 합니까? 그렇게 말한 아빠가 얼마나 미웠으면 꿈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삭발식엔 생존 학생 아빠인 장동원씨도 동참했다. 그는 살아 돌아온 딸의 당부였다고 했다.

“넌 자식이 살아왔는데 왜 이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딸과 유치원, 초·중·고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다 죽었습니다. 딸이 살아와서 다시 학교를 가던 날, 울면서 돌아왔어요. 친구들이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고. 그러면서 ‘아빠라면 진상 규명을 위해 (유족들과) 같이해줄 거지?’라고 했거든요.”

유족과 시민, 겉모습으로 구분되는 상황까지

삭발을 한 (정)원석이 엄마 박지민씨의 눈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며 “귤과 초콜릿을 사오겠다”던 아들은 바다에서 건져진 뒤 다른 가족에게 잘못 넘겨졌다가 화장을 하기 직전에 엄마에게 돌아왔다.

“정부를 믿고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된 게 없어요. 모든 걸 다 밝힌 뒤 (따로 안치된 아이들의) 유골을 한데 모아 영혼이라도 같이 손잡고 웃을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부가 우리를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어요.”

진상 조사를 무력화하는 시행령 폐지 등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은 4월4~5일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상복 차림으로 영정을 들고 1박2일 도보행진을 했다. 4월11일 집중 촛불집회(광화문광장), 16일 범국민 추모제(서울광장), 18일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를 진행한다. 하지만 3월30일부터 광화문광장 등에서 ‘416시간 노숙농성’을 진행 중인 유족들은 ‘3가지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무기한 농성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제 광화문광장에서 유족과 시민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이 머리까지 밀어서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그들이 겉모습만으로도 구분되는 상황까지 몰아갔다. (김)시연 엄마 윤경희씨가 말했다.

“1년 전엔 저도 똑같이 생활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모두 일어나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