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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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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넘으면 유죄, 촛불재판 ‘기계적 판결’

집시법 위헌 논란 때문에 멈췄던 촛불재판 6년 만에 재개… 옥외시위 ‘자정’ 기준으로
유무죄 갈려, 자정 전 집회·시위에도 일반교통방해죄 적용해 벌금형 선고
등록 2015-02-08 03:16 수정 2020-05-03 00:54

“유모차에 탔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런데 아직 재판을 받고 있으니….”
양재연(42)씨는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양씨는 2008년 5~6월 서울시청 촛불집회에 유모차를 끌고 참가했던 포털 사이트 다음의 ‘유모차 부대 엄마들’ 카페 운영자였다.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로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거리로 나섰다. 경찰이 느닷없이 양씨 집에 들이닥친 것은 그해 9월. 경찰은 “내일까지 (경찰에) 출두하지 않으면 다음주에 (구속)영장이 청구돼 불시에 체포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양씨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영상녹화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5시간이나 조사받았다. “평화적인 집회·시위로 검역주권을 지키려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지만 경찰은 “배후세력이 누구냐” “연계세력이 어디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결국 야간 옥외집회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양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시위현황·입법자 결정’ 단서를 붙이고

재판은 6년간 멈췄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시위 금지’ 조항(제10조)을 둘러싼 위헌 논란 때문이다. 제10조를 보면,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해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던 2008년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2008년 5월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습. 김진수 기자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던 2008년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2008년 5월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습. 김진수 기자

2008년 10월 박재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판사는 야간 옥외집회 주최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안진걸(43)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이 조항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2009년 9월 “집회의 사전 허가를 금지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과도한 제한이다. 세계 각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법이나 행정권으로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헌법 불합치는 위헌 판단이지만 법의 공백을 막고자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해당 법 조항을 존속시키는 변형 결정이다. 개정 시한은 2010년 6월30일로 정했다. 그 이후 법 효력이 상실됐다.

2009년 12월에는 ‘옥외시위’가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집회와 시위의 차이는 ‘이동’ 여부다. 한자리에 모여 구호만 외치면 집회지만 행진하면 시위다. 이제식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판사는 2008년 촛불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기소된 강아무개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14년 3월 헌재는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자정)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위헌”이라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한정위헌은 법률 규정은 그대로 둔 채 ‘해당 조항을 특정하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밝히는 변형 결정이다. 옥외집회와 달리 옥외시위에서 ‘자정’이라는 기준을 제안한 헌재는 “자정 이후의 시위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국민의 법 감정과 우리나라의 시위 현황과 실정에 따라 입법자(국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단서를 붙였다.

“밤 12시 땡 하면 집에 가는 신데렐라냐”

국회는 침묵했다. 그사이 대법원이 2014년 7월 기준을 세워버렸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가 2009년 9월 어느 날 저녁 7시15분부터 9시까지 ‘용산 참사’ 규탄 촛불문화제를 열고 행진한 혐의로 기소된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사무국장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집시법의 시위는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라는 헌재 결정에 따라 효력을 상실한다.” 자정 전 야간 시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긍정적 메시지로 읽혔다. 당시 도 “이번 판결로 각급 법원에 계류된 집시법 10조 위반 사건 390건에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정이 넘으면 시위가 전면 금지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부정적 메시지가 더 활발히 적용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무료로 변론한 촛불재판 사건(306건·945명)을 분석해보니 법원은 ‘기계적으로’ 유죄를 선고하고 있었다. 자정 직후를 보자. ㄱ씨는 2008년 6월26일 밤 12시20분에 연행돼 1심에서 벌금 70만원, 2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ㄴ씨는 6월28일 밤 12시10분에 연행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아 항소했다.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시위가 밤 12시가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로 유무죄가 엇갈리는데 밤 11시50분과 밤 12시10분 시위 참여자가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나느냐”고 반문했다. 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도 “촛불집회 참가자가 밤 12시 땡 하면 무조건 집에 가야 하는 신데렐라냐”고 되물었다.

해가 뜨기 직전에도 어김없다. ㄷ씨 일행은 5월31일 밤 12시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동이 틀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촛불집회에 남아 있던 시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는 모습을 봤다. 이에 항의했고, 일부를 경찰이 연행하려 하자 다시 막아섰다. 검찰은 일행 6명을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우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한데다 이미 해가 뜨고 있어서 환했다. 일출 약 11분 전이었다.” ㄷ씨 일행이 항변했지만 법원은 벌금 100만~150만원을 선고했다.

자정 전 집회·시위라도 여전히 처벌될 수 있다. 검찰의 또 다른 ‘무기’인 일반교통방해죄 때문이다. ‘야간 집회·시위 금지’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한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검찰은 2014년 7월 야간 집회·시위 사범 396명의 공소를 취소했다. 야간 집회자는 105명, 야간 시위자는 291명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공소를 전부 취소한 경우는 38명(9.6%)에 그쳤다. 나머지 358명(90.4%)은 형법 제185조 일반교통방해죄 혐의로 공소를 유지했다. 일반교통방해죄는 도로에서 열린 집회나 시위에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 참가자를 처벌할 수 있다. 야간 집회·시위 금지 조항과 달리 2010년 3월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져 더욱 그렇다.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유모차 부대’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2008년 5~6월 아이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나갔던 양재연씨는 밤 10시를 넘겨 집회·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헌재 결정이 나오자 그는 당연히 재판이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은 집시법 위반에 대해서만 공소를 취소하고 일반교통방해를 남겼다. “시위 참가자와 공모해 서울 태평로 주변의 차량 교통을 방해했다.” 양씨가 반박한다. “유모차 부대는 합법 집회·시위에만 참여했고 차도로 내려갈 때는 경찰의 안내를 반드시 받았다. 아이들을 데려갔는데 어떻게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겠나. 이미 막힌 도로에서 경찰이 차도로 이끌면 유모차를 끌고 따라갔을 뿐이다.” 하지만 법원은 2014년 11월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양씨는 항소했다.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할 자유가 있는 나라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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