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공적 담금질을 누가 이기랴

제919호
2012.07.10
등록 : 2012-07-10 15:49 수정 : 2012-07-13 11:48

‘박근혜’는 뜨거운 단어다. 미문가는 박근혜에 대해 펜을 잡는 순간 격렬한 비판 선동가로 변신한다. 반면 지지자는 그의 손을 한번 잡아보려고 손을 뻗치고 발버둥을 친다. 팬덤에 가깝다. 합리적 토론은 실종된다. <한겨레21>이 정치인 박근혜에 관한 찬반론을 싣는다. 보수주의자의 박근혜 지지론과 진보의 비판은 익숙한 구도다. 일쑤 동어반복으로 흐른다. 합리적 중도 및 진보진영 안에서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찬반논리를 구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프레시안>기획위원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한국의 토건족을 분석하고 비판해온 진보학자다.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비판은 온당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두 사람이 마주섰다_편집자.

고성국 정치평론가

대선이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2012년 대선에서는 누구든 박근혜를 비껴갈 수 없다. 박근혜는 지지자와 반대자가 분명하게 갈리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박근혜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박정희·육영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얼굴만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린다. 박근혜라는 이름 대신에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른다. 양쪽의 공방도 사뭇 거칠다. ‘박근혜밖에 없다’와 ‘박근혜만은 절대 안 된다’가 부딪친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11 총선 때 서울 동작구에 출마한 새누리당 서장은 후보의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김명진

수첩공주’라는 비아냥 사라져

논점은 세 가지다. 박근혜의 역사관과 가치관, 박근혜의 비전과 정책 능력, 박근혜의 정치 스타일과 리더십의 성격이 그것이다. ‘독재자의 딸’ ‘유신의 본체 박근혜’에 대한 이런 공격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 ‘반박’ 진영에서도 계속하고 있다. 과연 박근혜는 유신에 책임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책임이 얼마나 있는가?

어머니 육영수가 암살당한 뒤 유학지 프랑스 파리에서 황급히 불려와 얼떨결에 하게 된 5년여 간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박근혜를 ‘유신 본체’로 규정하는 논거다. 어머니를 비명에 보낸 22살의 처녀가 택한 이 선택에 대해 40년이 지난 지금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유신의 본체’로?

박근혜는 야당과 재야 진보 진영의 요구에 응해 이미 여러 차례 유신체제하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했다. 고 장준하 선생의 부인을 찾아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야당과 재야 진보 진영의 사과 요구는 과연 어떤 진정성이 있을까? 이들의 관심은 진정으로 정치적 이해타산을 넘어서 있는 것일까?

5년 전 경선 때와 비교해서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내용 없음, 머리 없음, 비전 없음’을 비아냥댄 ‘수첩공주’라는 말이 별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을 드라이브한 이명박 정권에 맞서 1년 넘게 정치 생명을 걸고 세종시 원안 고수 싸움을 벌여 이긴 박근혜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정책’을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의 형태로 단단하게 제시한 박근혜다. 이런 박근혜를 ‘내용 없고 비전 없는 사람’으로 공격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박근혜가 되면 이명박보다 더할 것’이라는 식의 덮어씌우기가 유행하고 있다. ‘비전과 콘텐츠는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시대착오적이라서 더 위험하다’는 식의 공격도 점차 늘고 있다.

어머니를 비명에 보낸 22살의 처녀가 택한 이 선택에 대해 40년이 지난 지금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유신의 본체’로?

대중과 교감하는 정치인에게 ‘불통’이라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법은 확실히 세울 것 같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원칙과 신뢰는 법을 세우는 문제로 수렴될 때 자기완결성을 갖는다. 반대자들은 박근혜가 법을 세우면 악법이 판칠 거라고 하지만, 악법이 있다면 고쳐야지 악법은 놔두고 법 세우는 걸 포기한다면 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닐까? 보수와 진보를 떠나 올바른 법치는 사회적 신뢰(Trust)와 국가적 신용을 높임으로써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 이 일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5년 단임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고는 아주 높은 기대 아닌가.

‘불통 박근혜’. 최근 박근혜가 얻은 별명이다. ‘비박’ 3인방의 경선룰 개정 요구를 묵살한 탓일 게다. 어쩔 수 없다. 룰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고치자는 주장을 할 자유가 비박 3인방에게 있다면, 그걸 반대할 권리는 박근혜에게 있다. 웬만하면 많이 앞서가는 박근혜가 비박들의 요구를 들어줬으면 좋았겠다는 정치적 평가는 있을 수 있지만, 비박 3인방의 요구를 거절한 박근혜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비난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박근혜가 나름의 원칙, 즉 ‘선수에 맞춰 룰을 고쳐서는 안 된다. 룰에 선수가 맞춰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간 것을 불통이라 부른다면 ‘소통’을 위해서는 스스로 세운 원칙도 허물어야 한다는 뜻일까?

박근혜는 대중정치인이다. 박근혜의 힘은 대중과 교감하고 감응하는 박근혜 특유의 대중성에서 나온다. 대중과 교감하고 감응하는 박근혜에게 불통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야권은 자문해봐야 한다. 주장할 수 있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그 공격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또한 박근혜는 원칙의 정치인이다. 어떤 경위로 세워진 원칙인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박근혜는 자신이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문제가 도전받을 때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지도 않는다. 진정성을 갖고 밀어붙이고 버틴다. 그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세종시 원안 고수 싸움에서 완승한 비밀이다.

야권은 박근혜를 과거에 붙잡아두려 하지만, 박근혜는 기본적으로 미래로 나아가려는 정치인이다. 그의 어법과 화법은 포지티브하다. 더러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된다. 그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삿되지 않은 정치인

박근혜는 삿되지 않은 정치인이다. 정치의 동기도 대통령에 대한 도전 의지도 사적이지 않다. 40년 가까이 공적 영역에서 단련되고 담금질했다. 정치적 반대자들조차 그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이유다. 예상외로 쉽지 않은 이 문제를 오랜 시간 내면화해온 박근혜다. 야권과 여권 내 반대자들이 하고 있는 수준의 네거티브 공격으로는 박근혜를 이길 수 없다. 박근혜의 긍정성이 네거티브 공격의 부정성을 앞서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긍정성을 넘어서는 긍정성을 제시할 다른 주자들은 없는가? 야권이 진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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