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진짜 전쟁은 아니겠죠?

<한겨레21> 긴급 여론조사…
“전쟁이 정말 일어날까봐 불안하다” 49.1%, “지방선거 겨냥한 과도한 북풍몰이” 52.9%
등록 2010-06-04 13:08 수정 2020-05-02 19:26

회사원 윤석민(41·가명)씨는 불안하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삶이 팍팍해졌다. 스무 살 무렵 젊은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었던 아버지와 최근 언쟁을 벌였다. 아버지는 은행에 맡긴 돈을 모두 찾아 현금으로 보관하라고 지시했다. 라면과 쌀을 비축해놓는 선에서 타협했다.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비슷했다. 진단은 달랐다. 윤씨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6월2일 지방선거를 겨냥해 강경 일변도로 북풍몰이를 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그의 아버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퍼주기가 핵무기와 어뢰로 돌아왔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개성공단 인질사태’ 가정하는 보수언론

해군은 5월27일 충남 태안반도 격렬비열도 서쪽 바다에서 천안함 침몰 뒤 처음으로 북한 잠수함의 침투를 가정해 대잠 폭뢰 훈련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해군은 5월27일 충남 태안반도 격렬비열도 서쪽 바다에서 천안함 침몰 뒤 처음으로 북한 잠수함의 침투를 가정해 대잠 폭뢰 훈련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씨가 해군사관학교 동기들을 만난 자리는 주먹다짐으로 번질 뻔했다. 북한의 잠수함 침투와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군의 발표 이후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명백하고 뚜렷한 증거가 없어 국민이 군의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사관학교 물을 먹었다는 놈이 그런 얘기를 하느냐. 다른 나라도 다 믿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냐”는 욕을 먹어야 했다. 합리적 의심은 설 땅이 없었다. 윤씨는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절감했다.

윤씨는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에 공감한다. 평화도, 민주주의도 한순간에 깨질 수 있는 유리잔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윤씨뿐만이 아니다. 이러다가 전쟁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5월24일 대북 강경 대응을 밝힌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다음날 “전면 전쟁을 포함한 강경 조치로 대처하겠다”는 북쪽의 맞대응 이후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남북 사이에 오가는 말을 놓고 보면 이미 전쟁에 돌입했다. 남북 장성급 회담 북쪽 단장은 “대북 심리전 수단을 직접 조준 격파사격하겠다”고 위협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교전규칙상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로 우리의 안보가 튼튼해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북 심리전 개시-발포-맞대응 수순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럼에도 유력 일간지를 자처하는 는 ‘개성공단 인질사태’를 가정해 특전사 투입과 한-미 미사일 폭격 계획 등을 전하면서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은 천안함 사태 이후 시민이 느끼는 전쟁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전쟁불사론자들의 주장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1994년 6월 북핵 사태 이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관해 5월26일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한 이번 조사는 전국의 19살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다. 오차범위는 ±3.7%이다.

결과를 요약하면,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전쟁 발발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부분은 전쟁을 피해야 하고 대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불사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군사적 방식으로 보복해야 한다거나 북한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전쟁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선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정부가 대북 강경 조처를 내놓고 북한도 이에 맞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얼마나 느끼는지’ 물었다. ‘불안하지 않다’(불안하지 않은 편 30.1%, 거의 불안하지 않다 20.1%)는 응답이 50.2%로, ‘불안하다’(매우 불안 8.6%, 불안한 편 40.5)는 응답 49.1%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은, 직접 군 소집 대상이 될 수 있는 20·30대와 전쟁 경험이 있는 60대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역별로는 대도시에 사는 응답자의 불안감이 평균보다 낮았는데 유독 대구 응답자의 불안 답변 비율(53.1%)이 높았다. 성별로는 불안하다고 느낀 여성 응답자의 비율이 54.7%인 반면, 남성 응답자는 43.2%였다.

북한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면 안보가 지켜질까. 보수를 자처하는 단체로 구성된 애국단체총협의회(상임의장 이상훈)의 5월27일 서울시청 앞 시위는 남한 내 친북 좌파세력을 척결하자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왼쪽사진). 촛불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5월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천안함 침몰 사건을 6월2일 지방선거에 이용하지 말라는 이들의 촛불이 켜졌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북한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면 안보가 지켜질까. 보수를 자처하는 단체로 구성된 애국단체총협의회(상임의장 이상훈)의 5월27일 서울시청 앞 시위는 남한 내 친북 좌파세력을 척결하자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왼쪽사진). 촛불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5월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천안함 침몰 사건을 6월2일 지방선거에 이용하지 말라는 이들의 촛불이 켜졌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전쟁 나면 직접 전투 나서겠다” 6.9%, “군사적 보복” 6.7%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던 시점의 비슷한 조사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당시는 ‘앞으로 5년 이내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어서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응답자의 18%만이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불안감’과 ‘가능성’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높게 볼수록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므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이전 남북관계 긴장 국면에서 나타났던 불안감과 크기와 정도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었다. ‘가족과 함께 피난’(32.1%), ‘후방에서 전투병력 지원’(28.6%), ‘생업에 종사’(26%) 순이었다. ‘군에 입대해 전투에 나서겠다’는 응답은 6.9%였다. 징집 대상이 될 수 있는 20대(19살 포함)와 30대도 ‘입대’ 응답이 18.4%, 4.3%인 반면 ‘피난’ 응답은 48.1%, 39.7%였다.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한나라당 지지자와 ‘전쟁과 평화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민주당 지지자의 응답 성향에 큰 차이는 없었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 가운데 군에 입대해 전투에 나선다는 응답자는 평균보다 낮은 4.9%였다. 천안함 국면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이회창 대표의 자유선진당 지지 의사를 밝힌 응답자의 33.4%가 ‘입대’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죽음·재산 손실 등 나와 가족의 피해’(44.9%)였고, ‘국가 붕괴’(30.4%)와 ‘사회 혼란·이념 대립’(18.4%)이 뒤를 이었다.

조사에 응한 응답자들에게 우리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물었다. ‘남북 대화를 통한 긴장 완화’(35.5%)와 ‘유엔을 통한 외교적 압박’(34.7%)이 엇비슷했다. ‘경제적 제재’는 21.1%였다.

‘군사적 방식으로 보복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겨우 47명(6.7%)이었다. 최근 등 여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정도가 북한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보고 있으며, 조·중·동 등 보수를 자처하는 유력지들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국지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처해야 한다”(5월25일 ),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5월24일 )며 전쟁불사론을 설파하고 있는데도, 압도적 다수의 시민은 ‘비군사적 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 의사를 밝힌 응답자들은 ‘외교적 압박’(39.3%)을 가장 많이 꼽았고,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지지 의사를 밝힌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대화’를 꼽았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경험한 국민 사이에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공감대가 뚜렷하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 확인된 조사”라며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한 긴장 완화나 외교적 압박을 바람직한 대응 방안으로 꼽은 것을 보면 군사적 대치 국면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위기설 관련 설문조사 결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쟁위기설 관련 설문조사 결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도 ‘북풍’ 35.8%

이런 흐름은 ‘전쟁위기설’에 관한 다음 질문에서도 확인됐다. 응답자의 절반(49.9%)이 ‘북한은 싫지만 전쟁은 피해야 한다’고 답했고, ‘북한은 협력의 대상이므로 대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39.1%였다. ‘북한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전쟁을 감수해야 한다’는 9.5%에 그쳤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여론의 흐름을 거슬러 전쟁을 부추기는가. 이번 조사 응답자의 절반가량(52.9%)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지방선거를 겨냥한 과도한 북풍몰이라는 주장’에 공감을 표시(매우 동의 17.7%, 동의하는 편 35.2%)했다.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39.5%(동의하지 않는 편, 26.8% 전혀 동의하지 않음 12.7%)였다. 민주당 등 야당 지지 의사를 밝힌 응답자들은 대부분 ‘선거용 북풍’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지지 응답자 가운데 35.8%가량이 이에 동의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은 ‘정부의 강경 대응이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등 경제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매우 그렇다’가 18.8%, ‘그런 편’이 50.2%였다. ‘그렇지 않은 편’ 20.7%, ‘전혀 그렇지 않다’가 4.7%였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 인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조사가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2006년 10월 조사에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무엇이 가장 불안한지 물었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경제였다. 응답자의 36.7%는 ‘해외자본 이탈, 물가 인상 등 경제적 위기’를 꼽았다. ‘미국의 북한 폭격’(19.2%), ‘남한에 대한 북한의 핵공격’(15.7%), ‘일본 등 주변 국가의 핵무장 경쟁’(14.9%), ‘북한 문제를 둘러싼 남한 내 갈등 고조’(11.8%)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천안함 국면을 이용한 긴장 조성이 단기적으로는 안보 이슈 부각으로 한나라당 지지세 결집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화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거나 실제 삶을 위협할 정도의 안보 문제로 번진다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다.

천안함 침몰에 관한 여러 의혹이 말끔히 가시고 진실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 공격’이라는 전제를 두고 우리 군이 경계·작전 등에서 실패한 책임( 제812호 표지이야기 ‘책임자를 체포하라’ 참조)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의견을 들었다. ‘책임 소재는 가리되 징계나 경고 등 인사 조처에 그쳐야 한다’는 의견이 52.5%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법에 따라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37.8%)는 의견도 많았다. 지지 정당별로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한나라당 지지 응답자의 62.2%가 전자를,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이 거의 같은 비율로 후자를 꼽았다.

5월27일치 장봉군 화백의 한겨레 그림판. 한겨레

5월27일치 장봉군 화백의 한겨레 그림판. 한겨레

73.7%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전쟁 일반에 관해 물었다. 한국전쟁은 60년 전이지만,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은 1999년과 2002년, 그리고 지난해 11월까지 세 차례나 있었다. 근래 가장 큰 전쟁이었던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에는 우리 군이 파견되기도 해 결코 남의 나라 일은 아니다.

응답자의 73.7%가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18.8%는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국지전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6.4%만이 ‘필요하다면 전면전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반전 여론은, 성별로는 여성이, 연령별로는 30·40대가, 지역별로는 광주·전남이,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층이, 지지 정당별로는 민주당 등 야당 지지자들이 평균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