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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대책, 그분은 너무 늦게 오셨다



노무현 찍은 뒤 강남에 집 산 회사원… “세금 오른 것도 싫었지만 정책 미숙에 더 반감 들어”
등록 2010-05-21 08:59 수정 2020-05-02 19:26
부동산 가격 폭등을 조기에 막지 못한 것은 참여정부의 뼈아픈 실책이다. 2005년 8월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뉴스를 보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부동산 가격 폭등을 조기에 막지 못한 것은 참여정부의 뼈아픈 실책이다. 2005년 8월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뉴스를 보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장석훈(38·가명) 팀장이 집을 마련한 것은 2006년 1월께다. 결혼을 앞두고 서른 해 넘게 살아온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을 벗어나 이른바 ‘강남’인 서초구 반포동 29평(95.9㎡) 아파트를 5억원에 샀다. 10년간 직장생활하며 알뜰살뜰 마련한 2억원에 은행에서 빌린 3억원을 합쳤다. 그는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며 “앞으로 내 자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빠가 되려고 큰 부담을 안고 강남에 집을 샀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아파트값 77.7% 올라

100㎡가 안 되는 집은 사자마자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매주 1천만~2천만원씩 뛰었다. 1년가량 아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 주마다 생긴 셈이다. 5억원짜리가 그해 6월 6억원, 연말에는 7억원까지 돌파해 한때 7억5천만원까지 기록했다. 그는 “집값이 뛰니까 정말 좋았다”며 “주 단위로 시세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매일 부동산 사이트를 찾아 오른 집값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주위 친구들에게도 대출을 끼고라도 강남 쪽에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는 2003년부터 집값을 잡으려고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2005년에는 ‘8·31 부동산종합대책’으로 송파신도시 개발과 함께 양도세·종부세·보유세 등 각종 세금을 올렸다. 장 팀장도 100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냈다. 그는 “생돈 100만원이 나간다는 생각에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며 “부동산 정책의 미숙함에 잇따른 ‘막말 파동’ 등이 겹쳐 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집을 가진 강남 주민은 자산이 올라 기뻐하면서도 종부세나 보유세 등 세금 때문에 참여정부에 반감을 가졌다. 반면 일반 서민은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어 실망했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며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해 반감은 더했다.

강남 집값뿐만 아니라 전국 부동산값이 참여정부 시절 크게 뛰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 서울 지역 아파트값은 평균 77.7% 올랐다. 전국 평균 땅값과 집값은 각각 23.7%, 24%가 뛰었고, 아파트값은 그보다 10%포인트나 높은 34.0%가 올랐다.

“효과적 정책 너무 늦어” 반성

최근 발간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를 보면 이에 대해 반성하는 대목이 나온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하여 유동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고 실제로 비판을 받았다. 2005년과 2006년에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강력한 유동성 규제는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정책 수단으로 관리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효과적 정책 수단을 너무 늦게 투입함으로써 일시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을 조기에 막지 못한 것은 실로 뼈아픈 실책이었다”고도 했다. 결국 집값을 잡지 못해 기존 지지층의 신뢰를 잃었고, 종부세·보유세 강화 등으로 비판 계층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단장은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관련 정책은 공급 확대와 대출규제 완화, 그리고 세제 강화를 꼽을 수 있다”며 “공급 확대와 대출규제 완화는 당장 집값 상승을 가져왔지만, 세제 강화는 효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려 집값을 잡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제대로 정책을 준비하지 못한 채 집권한 뒤 건설 재벌과 관료에 휩싸여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장 팀장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고, 집을 사기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막상 집을 가진 뒤 세금이 오른 데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참여정부가 관련 정책을 도입하는 데 시기나 방법이 미숙해 (반감을) 부추긴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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