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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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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해군 최고위급 “백령도 해역, 70년대 뿌린 기뢰 100여개 있다”

서해 긴장 높아지자 136개 설치, 10년 뒤 10%도 회수 못해…
“소위 때 직접 설치, 회수작업에도 참여”
등록 2010-04-15 11:02 수정 2020-05-02 19:26
천안함의 선체를 인양하고 나면 침몰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질까. 복잡한 셈법이 개입하면 ‘천안함의 진실’은 선체 인양 이후에도 한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을 수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의 선체를 인양하고 나면 침몰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질까. 복잡한 셈법이 개입하면 ‘천안함의 진실’은 선체 인양 이후에도 한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을 수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작업이 사고 발생 13일 만인 4월7일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합조단은 이날 논란이 있던 사고 발생 시각을 밤 9시22분으로 확정했다. 선박과 항공기 등의 정보가 표시되는 한국형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 화면에서 천안함 위치표시 신호가 9시21분57초에 사라졌고,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와 기상대 관측소가 9시21분58초와 9시22분에 지진파를 감지했다는 근거를 댔다. 합조단은 또 천안함 사고 직후 모습이 담긴 열상감시장비(TOD) 새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두 동강 난 뒤 함미가 가라앉는 장면(9시22분38초~9시23분39초)과 함수가 침몰하는 장면(~10시7분23초)이 담겨 있었다.

미군 폭뢰 개조, 200kg 원통형 기뢰

사고 직후 함구령 논란이 일었던 생존자들은 이날 기자회견 형식으로 처음 입을 열었다. 배 뒤쪽에서 강한 충격과 함께 두 차례 ‘쿵’ ‘쾅’ 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사고 직전까지는 특별한 상황 없이 정상 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합조단의 중간 발표와 생존자들의 증언은 ‘천안함의 진실’에 다가서는 데 도움이 됐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직”이다. 사고 발생 시각, 침몰 전 이상 징후 등에 대한 논란을 가라앉힐 만한 자료와 증언들이 공개됐지만, 진상 규명의 핵심 부분인 침몰 원인은 여전히 미궁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천안함은 폭발로 추정되는 외부 충격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 충격은 어뢰 혹은 기뢰에 의한 폭발을 의미한다. 어뢰는 추진체를 갖고 있으며 미사일처럼 움직여 목표물에 타격을 가하는 무기이고, 기뢰는 지뢰처럼 물속에 고정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어뢰나 기뢰에 의한 폭발일 경우 나타나는 징후들이 천안함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생존자들은 “화염이 있었다면 배에 불이 나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을 것인데, 그 순간 화약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오성탁 상사), “쾅 하는 소리와 심한 진동을 느꼈지만 물기둥 등 특이한 점은 없었다”(공창표 하사)고 말했다. 음파 탐지를 맡은 홍승현 하사는 어뢰음 탐지 여부에 대해 “음탐기에 특별한 신호가 없었다”고 말했다.

즉, 생존자들은 ‘외부 충격’을 한목소리로 증언하고 있는데, 정작 어뢰나 기뢰에 의한 폭발 때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도 목격하지 못했다. 선체를 인양하고 다른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사고 원인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날 이후, 북한에 의한 어뢰공격설에 무게를 싣고 보도해온 몇몇 신문이 기뢰 폭발 가능성도 언급하면서 “이제 더 이상의 무분별한 추측과 주장을 삼가고 선체 인양과 그에 이은 사고 원인 규명 결과를 기다릴 차례”( 4월8일치 사설)라고 방향을 틀었다.

천안함 침몰 직후 취재팀을 꾸려 사고 원인을 추적해온 은, 취재 과정에서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에게서 사고 원인과 무관해보이지 않는 충격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인사는 “1970년대 중반 서해에 긴장이 높아지면서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백령도를 요새화하라’고 지시했고 이 명령에 따라 미군의 폭뢰를 개조한 기뢰 136개를 설치했다”며 “10년 뒤 안전사고를 우려해 회수할 때 채 10%도 회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이번에 천안함 침몰 사고가 난 해역 주변에서 200kg 무게의 원통형 기뢰 100여 개가 유실됐고, 이 유실된 기뢰들이 이번 천안함 사고와 관련 있을 수도 있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

어뢰보다는 기뢰가 실질적?

북한의 어뢰 공격 가능성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그의 기뢰 발언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그의 증언을 충분히 들어보자.

“폭파가 있었다는 걸로 보면 어뢰와 기뢰밖에 없는데, 어뢰는 그걸 쏠 수 있는 모체가 있어야 한다. 상어급(350t) 잠수함은 수심이 확보돼야 하고, 유고급(150t) 잠수함은 (기동성이 약하기 때문에) 천안함의 길목을 미리 정확하게 알지 않고서는 (공격이) 불가능하다. 백령도에서 2.5km 떨어진 곳이면 섬과 굉장히 가까운 곳인데, 잠수함 작전을 지휘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 다가가는 것은) 아주 무모한 접근이다. 또 어뢰는 보통 40~50노트로 움직인다. 음탐사들이 하는 일이 스크루 소리를 듣는 거다. 잠수정은 놓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어뢰 소리를 못 들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74년부터 북한이 서해에 위기를 만들었다. ‘서해 크라이시스(crisis)’라고 불렀고 연평해전 상황과 비슷한 긴장감이 돌았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백령도를 요새화하라’고 지시했다. 해안에는 발목지뢰를, 수중에는 기뢰를 심었다. 해병대 6여단이 증강 배치된 것도 이때다.

미군이 2차 대전 때 쓰던 폭뢰(잠수함을 공격하기 위해 배에서 수면 아래로 떨어뜨리는 폭탄)를 개조한 기뢰를 136개 심었다. ‘바께쓰’ 2개를 이어붙인 모양의 원통형으로 무게가 200kg 정도 됐다. 화약의 양이 ‘이거 하나면 성냥 공장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일정 수심까지 내려가면 작동하는 (폭뢰식) 뇌관을 빼고, 전기식 뇌관을 넣어 육지에서 상륙하는 적을 보고 터뜨리는 방식으로 개조했다.

1986년에 안전사고를 우려해 해군과 해병대가 회수했다. 지뢰는 70~80% 회수했다. 하지만 기뢰는 10%도 회수 못했다. 그때 회수하다 보니 6·25 때 설치된 북한 기뢰도 몇 개 나왔다. 유실된 기뢰를 찾는 작업은 최근까지도 진행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전하면서도 유실된 기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물속에서 30년 이상 된, 제작연도 기준으로는 그 2배 이상인 유실된 기뢰가 천안함을 만나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았다.

기뢰가 그동안 화약 기능 손상은 없었더라도 천안함과의 충돌, 혹은 전기적 작용에 의한 폭발을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여러 단계의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물이나 통발을 연결하는 선이 천안함 스크루에 감기고 그 과정에서 뻘과 모래에 묻혀 있던 기뢰가 끌려올라와 충돌하거나 전기적 작용으로 폭발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식의 기뢰 폭발 가능성이, 최소한 북한의 어뢰 공격 가능성보다는 높다고 말했다.

버블제트 현상

버블제트 현상

결정적인 TOD화면, 정말 없는가

이 그의 증언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이런 사정에 밝을 만한 지위에 있었고 “소위로 임관해 기뢰를 설치했고 함장으로 서해안을 수시로 오가던 때에 회수 과정에 참여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백령도 앞 연화리 앞바다 기뢰 문제는 군 관계자는 물론, 백령도에서 근무했던 다수의 해병대 전역병과 백령도 주민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사고 닷새째인 3월30일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 “과거 폭뢰를 개조해 (백령도 인근에) 적의 상륙을 거부하기 위한 시설을 해놓았는데 모두 수거했다”고 답변했다. 그 이틀 전에는 “미군이나 해군이 심은 기뢰는 전혀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유실된 기뢰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과도 관련되지만, 이후 백령도 앞바다의 안전 문제와도 닿아있는 만큼 군이 정확한 실태를 공개하고 제거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다시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기뢰에 의한 폭발도 어뢰와 비슷하게 화재를 동반하거나 화약 냄새가 나고 물기둥이 솟구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생존자들은 이를 목격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합조단의 중간 발표와 생존자들의 증언 이후인 4월8일, 생존자들의 목격과는 다른 증언이 나왔다. (4월9일치)는 “백령도 해안초소의 열상감시장비(TOD)를 운용하는 해병대 초병이 ‘쾅 소리를 듣고 (TOD를 찍기 전에) 소리나는 쪽을 봤더니 배가 두 동강 나서 공중으로 올라가 역브이자 형태가 돼 있더라. 그 뒤 곧 평평해졌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는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을 보도했다. 이 초병의 발언을 ‘참’으로 놓고 보면, 어뢰나 기뢰가 함정 밑바닥에서 폭발할 때 강한 충격파와 고압의 가스 거품이 생기는데 이 거품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할 때 함정이 위아래로 활처럼 휘면서 선체가 두 동강 나는 ‘버블제트’ 효과가 침몰의 직접적 원인일 수 있다. 이 초병은 조사 과정에서 천안함의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했고 꺾인 왼쪽과 오른쪽 선체 각도까지 기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버블제트 현상은 어뢰와 기뢰에 의한 폭발 양쪽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폭발 원인을 밝히기 위한 천안함 선체와 잔해, 파편 분석 작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드러나기 전까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청와대의 입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시점에서 드는 의문점과 우려가 있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이 가진 정보의 차이는 없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기존 동영상에 이어 새로 TOD 동영상이 공개됐는데 사고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사고 당시의 화면은 정말 없는가다. 합조단은 “통상 초소 근무자들이 수동으로 TOD 녹화를 하는데 새로 공개된 것은 각 초소와 상황실에 영상을 전달·공유하는 영상전송 시스템 장비로 촬영돼 근무자들이 (천안함 침몰 전후의 모습이 촬영·저장돼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동녹화 시스템을 뒤늦게 알았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다. 백령도에서 TOD 업무를 담당했던 전역병이나 디지털 영상기록장치(DVR) 전문가들은 “일선 초소의 TOD 감시화면이 소대에서 여단까지 중계되는데 모든 무대가 한꺼번에 한눈을 팔고 있던 게 아니라면 천안함 침몰 장면을 못 봤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고 당시 영상이 확보돼 있다면 폭발 원인에 대한 분석 작업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와 군의 이례적 움직임
천안함 침몰의 진상 규명, 실종자들의 귀환 기원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는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번번이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천안함 침몰의 진상 규명, 실종자들의 귀환 기원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는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번번이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의문점과 연관돼 우려되는 대목은, 침몰 사고 원인 파악 이후의 예상되는 파장이 역으로 원인 분석 작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 어뢰의 흔적이 나올 경우 단호한 대응이 필요할 텐데 한반도의 긴장 고조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나 이명박 정부가 공들여온 선진 20개국(G20) 회담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쪽 기뢰에 의한 사고일 경우에도 그에 못지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천안함 사고 초반부터 북한 연루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해온 미국 쪽의 이례적인 움직임도 주목해볼 거리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4월7일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 인양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독도함을 방문했다. 이에 대해 한 안보전문가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방한, 스티븐스 미국 대사의 독도함 방문 등을 보면 미국이 ’퍼블릭 디플로머시’를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국민을 의식한 정치 홍보 활동이라는 얘기인데, 그는 “표면적으로 내세운 ’우방이자 동맹국인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 의지’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미국 정부가 현재 공표된 것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한국 정부가 천안함 문제를 자신들이 가진 정보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져갈 가능성을 경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에 ‘기뢰밭 증언’을 한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는 “어차피 선체와 파편을 인양하면 원인은 나올 테니 지금은 원인 식별 이후를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국익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고려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미묘한 얘기를 했다. 사고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난 이후에 대한 대응책이 마땅치 않을 경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기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천안함 인양 이후 모든 게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복잡한 셈법이 개입하게 되면 실제 ‘천안함의 진실’은 선체 인양 이후에도 한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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