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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탄압 탄탄대로

낙하산 내려보내고 광고 차별하고 언론인 체포하고 사이트 실명제, 촛불 진앙지에 대한 ‘신경질적인 장악’
등록 2009-04-23 02:20 수정 2020-05-02 19:25

2008년 6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반성한 자는 곧이어 행동하기 마련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그 행동은 언론사 장악과 언론인 탄압에 집중됐다. 촛불 이후 1년은 한국 언론의 제2 암흑기였다. 1975년과 1980년의 기자 대량 해직을 감행한 군사정권 시절에 버금갔다. 5공화국 이후 처음으로 언론인의 해직·체포·구속 등이 줄을 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촛불 노이로제’는 언론에 대한 ‘신경질적 장악’으로 진화했다. 언론이 촛불의 진앙지라고 봤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 1년은 언론 탄압으로 점철됐다. 2008년 8월8일, 정연주 당시 사장의 해임을 요청하는 한국방송 이사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한국방송 사옥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구속됐고, 1월에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아무개씨가 구속됐다(왼쪽부터).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21> 류우종 기자·한겨레 김봉규 기자

촛불 이후 1년은 언론 탄압으로 점철됐다. 2008년 8월8일, 정연주 당시 사장의 해임을 요청하는 한국방송 이사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한국방송 사옥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구속됐고, 1월에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아무개씨가 구속됐다(왼쪽부터).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21> 류우종 기자·한겨레 김봉규 기자

프레스 프렌들리, 언론에 친구들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된 지난해 6월부터 정부의 언론 장악이 본격화된 것을 우연이라 보기는 힘들다. 국세청이 한국방송을 세무조사했다. 감사원은 한국방송을 특별감사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신태섭 한국방송 이사를 해임했다. 검찰은 정연주 당시 한국방송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동시에 검찰은 문화방송 〈PD수첩〉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수사도 시작했다. 공중파 방송사의 광고 수주를 책임지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대선특보 출신인 양휘부씨가 임명됐다.

일련의 일들이 모두 2008년 6월에 일어났다. 촛불시위가 확산과 축소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시민들 앞에서 ‘자책’하고, 언론을 향해선 ‘책망’했다.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건 언론정책은 ‘프레스 프렌들리’(언론 친화)다. “국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언론과 가깝게 지내겠다”(2008년 4월4일 신문의 날 축하연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언론과 친해지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평소 친했던 인물을 언론기관의 수장으로 앉혔다.

2008년 3월, 이명박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을 지낸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한 것이 초석이었다. 대선특보 이몽룡씨는 스카이라이프 사장(2008년 4월), 대선특보 구본홍씨는 YTN 사장(〃 7월), 친여 성향의 이병순씨는 한국방송 사장(〃 8월), 대선특보 임은순씨는 신문유통원장(〃 10월), 대선특보 서옥식씨는 한국언론재단 이사(〃 10월), 대선특보 최규철씨는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12월), 대선특보 차용규씨는 경인방송 사장(2009년 2월)에 선임됐다. 포석은 일단락됐지만 일련의 행마는 끝나지 않았다. 오는 8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 전원의 임기가 끝난다. 후임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선 후보 가운데 최대 규모인 40여 명의 언론특보단을 휘하에 뒀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는 국회·청와대·공기업 등에 진출했다.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12명이 집권 1년 만에 언론사·언론재단·언론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투하됐다.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참여정부 때는 특보 출신 서동구씨를 한국방송 사장에 앉히려다 실패하는 등 (언론기관의) 특보 출신 낙하산은 3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방송사 사장은 없었다”며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훨씬 광범위하고 노골적으로 언론계에 특보 출신 낙하산을 투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특보단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사를 장악하는 ‘첨병’이었다.

언론사 장악의 ‘뒷길’도 마련했다. 경영 압박이다. 낙하산을 투하할 수 없는, ‘비친화적’ 언론사들에 주로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다. 명백히 드러난 실체가 없다. 소문과 추정은 무성하다. 광고 압박, 소유구조 변경 등에 정부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추정의 뼈대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정부 비판적 방송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기업들의 광고 축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30년 된 낡은 수법 ‘광고로 길들이기’

방송통신위 자료를 보면, 최근 공중파 방송 3사 가운데 문화방송의 광고 감소가 가장 크다. 2009년 1/4분기에 1848억원의 광고실적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41.9%가 줄었다. 한국방송은 20.6%, SBS는 26.8%가 줄었다. SK텔레콤·삼성전자·LG전자·KT·KTF 등 주요 광고주들이 문화방송을 ‘특별히’ 꺼린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5대 광고주들은 한국방송(24.4% 감소), SBS(24.8% 감소)에 비해 문화방송(34.1% 감소)의 광고를 더 많이 줄였다.

정부가 직접 주는 광고도 편향적이다. 2008년 중앙 정부부처의 광고집행 내역을 보면, 8억4162만원(전년 대비 406% 증가), 9억3476만원(〃 432% 증가), 8억2689만원(〃 159% 증가), 5억814만원(〃 511% 증가) 등으로 나타나 이들 신문사의 정부 광고가 전년에 비해 총액 기준 1.5~5배로 늘었다. 반면 와 은 각각 2억8738만원(〃 26.6% 증가), 2억7384만원(〃 38% 증가)으로 나타나 소폭 상승에 그쳤다. 정부 기관 또는 산하 공공기관에서 시행한 광고 총액도 마찬가지다. 는 2007년에 비해 24억2천만원 더 많은 광고를 유치했고, (26억7천만원), (10억6천만원), (14억5천만원) 등도 유치액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는 4억4천만원, 은 3억8천만원 증가에 그쳤다.

광고 탄압은 ‘낡은 수법’이다. 1974년 말부터 1975년 초에 걸쳐 럭키그룹·롯데그룹·미도파백화점 등 30여 개 주요 광고주들이 에 대한 광고계약을 취소했다. 뒤이어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75년 3월, ‘사내질서 및 기강 확립’을 내세워 20명의 기자를 전격 해임했다. 독재정권과 싸운 ‘동아투위’가 이때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추정만 했을 뿐이다. 박정희 정권의 ‘광고 탄압 공작’은 30여 년이 지난 2008년 10월에서야 밝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광고 탄압을 주도했다고 발표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언론사 경영진은 여전히 광고 압박에 취약하다. 경영진은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길들이거나 내쫓으면서 ‘노예가 되는 길’을 스스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문화방송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은 33년 전 의 비극적 재현이다.

더 큰 차원의 경영 압박이 있다. 언론시장 구조의 대대적 변경이다. 지난해 12월 발의해 올 2월 국회 상임위에 기습 상정한 미디어 관련법이 그 촉매제다. 그동안 금지했던 대기업과 재벌신문의 방송 진출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문화방송은 물론 등은 ‘변화한 환경’에서 고사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인터넷 탄압 일지

이명박 정부의 언론·인터넷 탄압 일지

“구글코리아에 대한 법률적 검토”

이명박 정부는 언론인 탄압도 병행하고 있다. 검찰이 직접 나서거나 언론사 경영진을 통해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방송 이사회는 경영 부실을 이유로 정연주 당시 사장에 대한 해임을 제청했다. 그 직후 검찰은 정 전 사장을 기소했다. 10월에는 구본홍 YTN 사장이 노조 조합원 6명을 해고하는 등 33명을 중징계했다. 검찰은 지난 3월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등 4명을 구속했다. 지난해 5월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PD수첩〉제작진을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 3월 이후 이춘근·김보슬 PD를 연이어 체포했고 문화방송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시도했다. 올 1월에는 이병순 한국방송 사장이 기자와 PD 3명을 해고하고 5명을 정직·감봉 처분하는 중징계를 결정했다가 사내 반발에 부딪혀 뒤늦게 ‘징계 수위’를 낮춘 일도 있었다.

언론 탄압의 백미는 누리꾼 탄압이다. 언론인은 시민사회의 공익을 대변한다. 언론이 침묵하면 시민들이 직접 발언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 길마저 틀어막았다. 촛불정국 직후인 2008년 8월, 검찰은 조·중·동 불매운동 누리꾼 24명을 기소했다. 2009년 1월에는 ‘미네르바’ 박아무개씨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해 12월, 방통위는 인터넷 실명제 적용 사이트를 하루 이용자 30만 명 이상에서 10만 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실명제를 적용해야 하는 사이트가 37곳에서 180여 곳으로 늘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지난 3월, 북한·중국·버마·쿠바·이란 등과 함께 한국을 ‘인터넷의 적’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지난 4월9일에는 구글이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거부했다. 이것만 해도 세계적 조롱거리인데,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15일 국회에서 “(구글코리아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즉각 구글 국내 서비스의 위법사항 적발에 나섰다. 실명제 도입 거부에 대한 ‘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언론 탄압과 장악의 점입가경을 보여주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바야흐로 화룡점정을 벼르고 있다. 지난 4월13일,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은 기자들의 반대에도 신경민 앵커를 교체했다. 이에 반발하는 기자들은 제작을 거부했다. 보도본부장의 교체를 계기로 제작 거부 사태의 장기화는 피했지만, 정권 차원의 문화방송 길들이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만간 검찰은 〈PD수첩〉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방송 민영화의 제도적 근거가 될 미디어법 개정안은 오는 6월 국회에서 최종 논의될 예정이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은 8월에 교체된다. 신임 이사 추천권은 방통위가 갖고 있다.

여의도에 등장한 촛불 시민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력은 언론 분야에 한해 탄탄대로를 걸었다. 의도한 바를 거의 성취하고 있다. 촛불이 잦아들던 지난해 8월, 이 대통령은 한국법률가대회 축사에서 “선동적 포퓰리즘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선동’의 주체로 누굴 지목한 것인지는 분명했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인 ‘시대정신’은 최근 촛불 1주년을 맞아 을 펴내고, “온갖 유언비어가 생성되고 유포된 근원에는 왜곡된 정보에 권위를 부여한 방송이 있었다”고 썼다.

촛불시위 1년 만에 한국 언론은 초토화됐다. 촛불의 근원인 언론을 ‘정화’했다고 누군가는 생각하겠지만, 4월13일 이후 문화방송 서울 여의도 사옥 앞에는 새로운 촛불 시민들이 등장했다. 〈PD수첩〉수사와 신경민 앵커 교체를 반대하는 시민들이다. 아직은 소수지만 1년 전 촛불시위도 처음에는 그랬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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