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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영수증

서울에서 구입한 운동화 한 켤레

서울의 문화를 넘는 무언가
새해 첫날을 서울에서 맞으며 ‘시골살이’를 객관적으로 보다

제1346호
2021.01.11
등록 : 2021-01-11 21:30 수정 : 2021-01-13 10:38
서울에서 방문한 공간 중 가장 인상적이고 부러웠던 곳,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

새해 첫날을 남해가 아닌 서울에서 맞았다. 그동안 머물던 ‘귀농인의 집’ 계약이 만료돼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했다. 하지만 2월 말에야 입주가 가능해 두 달 동안 어쩔 수 없이 집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각자 캐리어 하나씩 끌고서, 시가가 있는 서울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집 문제로 원치 않게 서울에 길게 체류하게 됐지만, 덕분에 그동안 남해에서 머무는 동안 못했던 일, 서울에 오면 꼭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치우기로 했다. 가장 먼저 치과를 찾았다. 남해에도 치과를 비롯한 많은 병원(대부분 소규모의 개인 의원)이 있지만, 작고 오래된데다 낯선 치과에 가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1시간씩 차를 끌고서 가까운 도시 진주까지 나가기에는 크게 아픈 곳은 없어 치과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 탓에 잇몸이 나빠진 건지, 서울에 오자마자 찾은 치과에서 앞으로 한두 번 더 치료받으러 와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그다음, 마음에 드는 새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낡을 대로 낡은 운동화를 진작 바꾸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남해에서는 제일 번화한 읍내 사거리에 나가도 다양한 브랜드의 신발 매장이나 할인 매장이 없다. 신어보지 않고 인터넷에서 신발을 사는 것도 꺼려져 운동화 한 켤레 사는 것도 치과 진료처럼 미뤘다. 그런데 큰 도로 가까이에 위치한 시가 코앞에는 대형 마트와 각종 브랜드 상점이 넘쳐난다. 심지어 다양한 할인 이벤트까지 하고 있으니, 운동화 사는 일을 더는 미룰 필요가 없었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하지만 직접 가볼 수 없어 아쉬웠던 공간도 방문했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리필 상품과 무포장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숍 ‘알맹상점’을 찾았다. 날씨가 추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매장에 있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재활용 용기에 샴푸나 린스를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소 불편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방식대로 생활의 필요를 올곧게 채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이야말로 남해에는 없는, 서울만 가진 매력임이 분명하다.

할 일을 불편할 것 없이 금세 해치우고 나니, 남편은 대도시에서 겪은 수많은 편리함을 잃은 채 남해에서 살았음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나는 대도시의 편리함은 크게 아쉽지 않지만,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는 활동, 커뮤니티에서 한참 떨어져 사는 것만큼은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따져보아도 여전히 도시보다는 시골이, 서울보다는 남해가 아직은 우리에게 더 살기 좋은 곳이다. 다만 그전에는 마냥 서울이 싫어서, 막연하게 시골은 좀 나을 것 같아서 서울을 떠나 남해로 갔다면, 이제는 양쪽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셈법으로 시골살이를 ‘선택’한 것이라고.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