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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파시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미 인종주의 반대 시위에 연방기구 병력 투입...
‘대결·혼돈’ 대선전략에 ‘TV쇼 파시즘’

제1324호
2020.07.31
등록 : 2020-07-31 13:43 수정 : 2020-07-31 16:09
7월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캘리포니아주 모리스빌을 방문하기 위해 전용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웰컴. 비밀경찰과 야간 습격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체불명의 요원들에게 아무런 표지가 없는 승합차로 납치될 수 있는 세계. 정부가 당신을 흠씬 두들겨 팬 뒤에야 어쩌면 변호사를 만날 수도 있는 세계. 9·11 테러 이후 외국 이름처럼 들리는 비백인 시민들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폭압적 독재국가를 연상케 하는 이 ‘세계’는 미국이다. 7월28일, 미국 시사주간 <네이션>은 ‘갈색 피부의 사람들에게 트럼프의 비밀경찰은 비밀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냉소적인 환영 인사로 시작했다. 인종주의 반대 시위 현장을 취재한 르포였다. 엘리 미스탈 기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거리에서 백인 엄마들과 백인 시장까지 최루탄 가스에 휩싸이는 것을 목격하며, 내 심장에서 ‘웰컴’이란 단어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고 썼다. 앞서 7월23일, 포틀랜드의 테드 휠러 시장(민주당)은 시민들과 함께 인종주의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바로 옆에서 터진 최루탄 분말을 뒤집어썼다. 오리건주나 포틀랜드시 경찰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시위 진압대가 쏜 최루탄이었다.

미스탈 기자가 ‘심장의 소리’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 함께 ‘국토안보부’라는 명백한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우자”는 문장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평화적인 백인 시위대와 맞서는 정부 기관으로 위장한 군대를 파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안보부(산하 무장병력)가 최근 입국한 이민자처럼 보이는 선량한 시민과 평화로운 경배자, 이슬람교도에 대항해 배치되고 있다.”(<네이션>)

민주당 우세 도시로 파견된 무장병력

지금 두 개의 ‘유령’이 미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하나는 누적 확진 460만 명, 사망 15만 명(7월30일 기준)을 넘어선 코로나19 바이러스, 다른 하나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무차별 강경 진압이다. 5월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길바닥에서 건장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졌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인종주의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져갔다. 플로이드가 사망하고 꼭 두 달을 맞은 7월25일은 주말 휴일이었다. 로스앤젤레스, 리치먼드, 오마하, 오스틴, 덴버 등 주요 도시들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저녁까지 격렬하게 충돌했다. 현지 언론들은 수십 명이 체포되고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시위가 지방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법집행기구 요원’을 투입했다. 군용 위장복과 헤드기어를 착용한 무장병력은 시위대에 최루탄과 최루액 스프레이를 난사하고, 고무탄과 섬광탄을 쏘고, 마구잡이 체포를 감행하면서 긴장감이 극대화되고 있다. 포틀랜드, 시애틀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민주당 소속이고 소수인종이 많이 사는 도시들이 주요 대상이다. 7월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이끄는 일부 도시에서 급진좌파 집단에 의한 폭력범죄가 치솟고 있다”며 “폭력범죄에 시달리는 지역사회에 더 많은 연방 법집행 인력을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포틀랜드 시의회는 “포틀랜드 경찰과 연방 법집행 요원의 협력을 전면 중단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트럼프는 7월27일에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포틀랜드의 연방 재산은 연방 요원들의 주둔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날, 수도 워싱턴을 비롯해 포틀랜드·시카고·시애틀·앨버커키·캔자스 등 6개 도시의 민주당 소속 시장들은 연방의회 상하 양원 지도부에 공동 서한을 보내, “우리는 이런(아무 표지도 없는 차량이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을 낚아채는) 행동이 불법적이고 혐오스럽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는 맨 처음부터 줄곧 재앙”

앞서 7월25일 <AP>통신은 “포틀랜드에 투입된 고도로 훈련된 ‘연방 법집행기구 요원’들은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마약 밀수 조직을 단속하는 국토안보부 소속 국경순찰대 전술팀(BPTU), 관세국경보호청 특별대응팀(CBPSR), 심지어 해안경비대 소속까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 기구들의 병력을 시위 진압에 동원하는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한 전직 관리는 “국토안보부는 대통령 소속 민병대는커녕 국가 경찰로 창설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한 <네이션>의 미스탈 기자는 “2002년 창설된 국토안보부는 맨 처음부터 줄곧 재앙”이라고 했다.

미국 안팎에선 트럼프 정부의 과도한 시위 진압과 일방주의 행보를 두고 ‘파시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트럼프가 우리를 파시즘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트럼프가 파시즘을 실행하고 있다” “베이비 파시스트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트럼프가 미국 도시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언론들을 장식하는 기사와 기고의 제목이다.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에서 1950년대 한때 매카시즘 광풍이 분 뒤 70년 동안 전례 없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달인 2017년 2월,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역사학)는 <독재에 대하여: 20세기의 20가지 교훈>이라는 책을 냈다. 20가지 교훈 중 한 가지는 “준군사조직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권력자의 친위대 준군사조직과 공식 경찰조직, 군대가 뒤섞이면 이미 끝난 것”이라고 썼다. 그로부터 3년5개월이 지난 7월20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2017년 당시엔 군용 위장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요원들이 거리에서 영장도 없이 좌파 그룹 시민들을 잡아채 가는 것은 레지스탕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7월17일 오리건주의 엘런 로젠블룸 검찰총장은 연방 요원들이 “불법적인 진압 방식”을 동원했다며 연방 정부와 산하 기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피소 기관은 국토안보부와 그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 연방방호국(FPS), 법무부 소속 연방보안관(USMS) 등 네 곳인데 모두 사법경찰을 운용한다. 저마다 고유한 임무가 있는 국가기구들이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순간, 트럼프의 ‘친위대 준군사조직’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7월23일 미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실은 기고에서 “1920~30년대 태동한 파시즘이 지금은 죽었지만 언제든 부활할 수 있고, 미국에서도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이미 파시즘 일부가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트럼프가 권력을 계속 움켜쥐려 하면서 더 많은 파시즘이 출현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던졌다.

7월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도심에서 시민들의 인종주의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연방 법집행 요원들과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전쟁터가 된 도시, 트럼프에게 남는 장사

급기야 유엔도 트럼프 정부에 평화 시위를 거칠게 진압하는 경찰력 사용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7월24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도시들에서 일어나는 평화적인 시위는 참가자들과 기자들이 공권력의 부당한 남용과 인권침해를 겪으며 임의로 체포되거나 구금될 우려를 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리즈 스로셀 대변인은 “(폭력을 행사한) ‘법집행 요원’들의 신원도 명확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무리수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겨냥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7월26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에서) 경찰의 야만성과 인종주의에 대한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대결 구도가 유지되길 바란다. (그에겐) 대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민주당이 우세한 도시들에서 군용 위장복을 입은 연방 요원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건 트럼프에게 남는 장사다. 해당 도시들을 무법천지처럼 비추고, 자신은 ‘법과 질서’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일종의 ‘정치 연극’이다.

대선까지 석 달 남짓 남은 미국 정국이 트럼프의 계산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텔레비전(TV) 화면에 비치는 ‘폭력 시위’ 현장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가디언>은 “(미국의) 시위는 밤마다 진화한다. 해 질 무렵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시위는 변함없이 평화적이며, 대체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는 대의에 초점을 맞춘다”고 전했다. 앞서 7월19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포틀랜드에서 보여주는 ‘TV 맞춤형 파시즘’(made-for-TV fascism)이 그를 재선시키진 못할 것이다. 외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7월24일 볼티모어와 필라델피아의 지방 검찰청장 2명이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공동 기고를 실어 “대통령, 우리의 도시들에서 물러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은 “우리는 도시들에서 법 위반을 기소하라고 선출됐으며, 오리건주에서 (연방 요원들의) 행동이 불법이라고 강하게 확신한다”며 “만일 대통령이 우리의 도시들에서 자신의 구상을 강행한다면 그의 대리자들은 법이 정한 최대 범위로 기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믿을 건 강력한 지도자뿐이라는 공포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팩스턴은 국내에도 번역본이 나온 저서 <파시즘>(교양인 펴냄, 2004)에서 이렇게 썼다.

“파시즘은 ‘부정’의 사고·행동 체계다. …민주주의 원칙을 경멸하고 조롱하며 마르크스주의적 평등주의와는 본디부터 척을 졌다. …파시스트 행동대들이 길거리에서 자가발전한 테러의 공포를 확산하면서 대중의 마음속에 믿을 거라곤 강력한 지도자밖에 없다는 ‘대안 부재론’을 유포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권력을 쥔 미국 사회의 요즘 풍경과 닮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