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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

1인용 몸을 누군가와 나눌 때

임신 중 ‘뜨거운 감자’ 당뇨와 갑상샘항진증,
엄마를 태아로부터 이기적으로 보호하는 시스템 ‘항상성’

제1313호
2020.05.18
등록 : 2020-05-18 01:58 수정 : 2020-05-21 10:26
‘임산부의 날’ 행사장의 임산부와 아이. 한겨레 자료

의도치 않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다. 예의를 지켜야 하는 식사 자리에서 무심코 입에 넣은 감자요리가 생각보다 뜨겁다면 난감하다. 이걸 그대로 씹어 삼킬 수도, 예의 없이 입속에 들어간 음식을 뱉을 수도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입을 약간 벌리고 입속 근육을 최대한 잘 조절해, 뜨거운 감자가 입 밖에 튀어나오지 않은 상태로 식기를 기다라는 수밖에.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살다보면 한 번쯤 이런 ‘뜨거운 감자’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쌍둥이 임신 13주차, 이제 안정기에 들었다고 안심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받은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타났으니 내원해 재검사를 받으라는 거였다. 부랴부랴 재검을 받았는데 결과는 동일했다. 나는 이후 임신 기간 내내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때문에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지 않도록 무진 애써야 했다. 당시 나는 임신성 당뇨와 임신성 갑상샘항진증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통상 당뇨는 살이 찌면 증상이 더욱 심해지므로 식단을 저열량·저염식으로 바꾸고 운동을 권장한다. 반면 갑상샘항진증인 경우 체중 감소와 체력 손실을 막으려 고열량·고단백질 음식을 섭취하고, 과도한 운동을 피하도록 권유한다. 두 질환을 동시에 진단받은 나는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당뇨(糖尿, diabet)는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달콤한 소변’이란 뜻이다. 췌장의 인슐린 분비와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포도당 대사이상 질환이다. 혈액 속 당의 양, 즉 혈당치가 정상보다 높은 상태로 유지되므로 신장에서 미처 당분을 다 걸러내지 못해 소변 속에 당이 포함돼 배설되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당뇨를 일으키는 원인은 유전적 이상, 비만, 고령, 췌장 질환 등이 꼽히는데 여성에겐 임신 자체가 질병 촉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임신성 당뇨는 엄마에겐 임신중독증과 양수 과다, 조기 진통, 출산 뒤 과다 출혈 위험을 높인다. 아기에겐 거대아, 폐 성숙 방해, 저혈당증, 선천성 기형 발생률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일반적인 임신에 따른 이상 증세는 임신이 종료되면 사라지는 것(임신중독증 등)과 달리, 이전에는 당뇨 증상이 없던 여성이더라도 임신성 당뇨를 겪으면 그중 50%가 출산 뒤 8년 이내에 당뇨병이 생긴다는 조사 보고가 있기에 장기간의 후유증마저 남긴다.

또 다른 이상 증상인 갑상샘항진증은 목 아래 나비 모양으로 위치한 갑상샘에서 갑상샘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질환이다. 그레이브스병이 있거나 갑상샘에 생긴 혹이나 염증이 원인이 되어 생기지만 임신도 발생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심한 입덧 증상을 보이는 임신부에게 갑상샘항진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임신성 갑상샘항진증은 모체에게 심박수 증가, 체중 저하, 체력 소실을 가져온다. 태아에게는 저체중아, 미숙아, 선천성 기형 발생률을 높인다. 다행히도 내 경우, 갑상샘항진증은 심한 입덧으로 인한 체력 소실이 원인이어서 임신 6개월이 넘으며 거의 사라졌지만, 임신 4개월에 시작한 임신성 당뇨는 출산할 때까지 지속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생명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여러 층위로 담길 수 있지만, 생명체를 구성하는 시스템 측면에서 보면 한 생명체가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조절하는 정교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성인의 경우 체온은 36.5℃, 혈액 내 산도는 pH7.4, 공복시 혈당은 100㎎/㎗ 이하, 갑상샘자극호르몬(TSH)은 0.4~5.1㎍/㎗를 유지해야 한다.

살아 있음과 동의어, 항상성

항상성 조절은 빠르고 기민하게 일어난다. 체온은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갑자기 차가운 물속에 빠지면 일시적으로 달라질 수 있지만 기껏해야 1~2℃ 정도 변한다. 변화가 감지되는 즉시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되먹임 작용’이 재빨리 작동한다. 체온이 오르면 전신의 땀샘을 열고 땀을 쏟아내 기화열로 체온을 낮춘다. 체온이 낮아지면 모낭을 막고 털을 세워 작은 모공으로 나가는 열도 막으며 체내에서 열을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활성을 늘려 체온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 마치 실내 온도가 기준보다 낮아지면 난방장치가 돌아가고 이보다 높아지면 냉방장치가 가동해 온도를 맞추는 최첨단 온도 조절 장치처럼 말이다.

신체의 체온 조절 시스템은 자동으로 이뤄지고 효율도 꽤 좋기에 평소 별 의식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다만 기준이 되는 온도 설정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임의로 바꿀 수 없다는 것과, 기준값에서 일정 이상 벗어나면 장치가 영영 고장 난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이 유일한 단점의 대가가 너무 크기에(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체의 항상성 장치는 대부분 기민하게 반응하고 균형을 깨뜨리지 않도록 항상 조절한다.

임신하면 태아에게 안정적으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모체의 탄수화물·지방 대사에 변화가 일어난다. 태아는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한다. 따라서 태아 조직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일차적으로 모체의 혈당량을 높이는 기능이 있다. 물고기가 많은 곳에 그물을 던져야 수확량이 많듯이, 엄마의 혈당치가 높아야 거기서 에너지원을 끌어들이기 수월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모체의 항상성 조절 시스템은 이를 가만두고 보지 않는다. 엄마 마음은 내 새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걸 보면 뿌듯해지지만, 엄마의 신체 항상성 조절 시스템은 그런 간절한 마음과는 별개로 철저하게 엄마 몸만을 위해 움직인다.

모체의 혈당 조절 시스템은 혈당이 높아졌으니 이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자동으로 인슐린 분비량을 늘린다. 태아의 혈당 증가 자극에 대응해 인슐린 분비량도 점점 늘어나, 막달에는 인슐린 수치가 임신 전보다 두 배까지 커진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혈당을 잡아 간에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하는 혈액 내 포도당 회수 장치다. 이렇게 인슐린이 증가하면 혈당이 낮아져 태아가 이용하는 에너지원이 적어지니, 태아의 신체 항상성 조절 시스템도 이를 가만두고 볼 수는 없다. 태아는 태반을 통해 태반성장호르몬을 분비해 인슐린 활성을 떨어뜨린다.

모체는 늘리고, 태아는 줄이고

전쟁할 때 이쪽에서 도발하면 당연히 상대도 대응하기 마련이다. 일단 먼저 도발했으니 상대가 대응해 화살을 날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기만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화살이 내 몸에 닿기 전 방패로 막아내면 되니까. 따라서 태반성장호르몬은 엄마 몸이 인슐린을 분비하는 것을 막지 못하지만, 인슐린에 저항성을 높여 혈당 저하를 막는다.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면 간에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되는 포도당량이 적어지고, 이 신호는 모체의 생체 시스템에 열량이 부족하다는 경고등을 켜서 지방 분해를 가속한다. (그래서 당뇨 초기 환자는 살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임신 후반기로 갈수록 모체는 인슐린 분비량은 늘어남에도 인슐린 기능은 저하돼, 오히려 임신 전보다 혈당과 혈액 내 지방산 함유량이 늘어난다. 이 상태는 태아에게 원활한 영양분 공급을 할 수 있고, 출산 뒤 수유할 때도 몸에서 당과 지방을 끌어내 모유 속에 녹이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기본을 마련한다.

사람 몸은 대개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애초에 공유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유일한 예외가 임신이다. 기본적으로 1인용으로 설계된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론 건강한 여성의 몸은 태아와 어느 정도 지분을 나눌 여유가 있지만, 그건 마치 고무줄을 한계치까지 잡아당기는 느낌의 여유다.

고무줄을 처음 잡아당길 때는 얼마든지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계치에 다다를수록 고무줄을 잡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부담이 늘어난다. 거기서 멈춰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한계치에 이르기 전 아무리 잡아당겨도 손만 놓으면 고무줄은 원래대로 되돌아가지만, 그 한계치에서 단 몇㎜만 더 잡아당겨도 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거기다 잔뜩 당겨진 고무줄에 맞으면 많이 아프다!)

태아와 모체의 강화조약

임신성 당뇨란 그런 것이다. 임신은 기본적으로 1인용으로 설계된 몸을 태아라는 플러스알파와 공유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슐린 분비 증가와 인슐린 저항성 증가라는 부담을 모체가 짊어지게 된다. 이 부담이 모체의 한계치 내부에 있다면 별 이상은 없지만, 그 한계치 범위를 넘어가버리면 임신성 당뇨가 되고, 자칫 잘못 놓친 고무줄에 맞아 상처가 나는 것처럼 임신이 종료된 뒤에도 남아 훗날 진짜 당뇨를 일으키는 복병이 되기도 한다. 임신성 당뇨는 태아와 모체 사이의 군비경쟁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강화조약이 불평등하게 맺어진 결과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