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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는 ‘2017 재연’ 막을 수 있을까

북한과 미국만으론 어려운 평화체제, 중국과 러시아 대북 제재 완화 추진

제1296호
2020.01.14
등록 : 2020-01-14 10:41 수정 : 2020-01-14 11:16
지난해 12월1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을 위한 협의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7일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일본 도쿄는 한국의 평창이 아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만들어냈던 평화의 기운을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에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정반대의 남북 문제 풀이 방식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 남쪽은 쉬운 문제(사회·문화·경제 교류)에서 시작해 어려운 주제(정치·군사·안보 문제)로 나아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신뢰가 쌓이면 산도 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북쪽은 다르다. 어려운 문제가 풀리면 쉬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그대로라면, 부차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현실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는 얘기다.

신뢰가 없으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다. 핵심 쟁점을 후순위로 미루고 변죽만 울리다보면, 시간은 가고 기회는 놓치기 마련이다. 역사가 그렇게 되풀이돼왔다. 작은 차이 같아 보이지만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관계는 ‘박수 치기’와 같아서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래서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지 않으면 북은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은 남이 적극적으로 ‘근본 문제’의 당사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새로운 노선’을 내놓은 마당에, 도쿄 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에 관심이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2018년 북이 평창에 온 것은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뒤 남북을 넘어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자. 2018년 겨울올림픽이 만들어낸 이른바 ‘평창 평화체제’는 그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절정을 맞았다. 한반도 문제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비핵화를 해야 모든 게 풀린다는 오랜 고집을 미국이 꺾은 것처럼 보였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은 ‘새로운 북-미 관계→항구적 평화체제→비핵화’의 순서로 짜였다. 말하자면 신뢰를 쌓아 산을 넘자는 뜻이었다.

헛된 기대였다. 신뢰는 쌓이지 않았다. 산도 넘지 못했다. 북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과 평북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시험장을 폐쇄하는 선제조치를 했다. ‘신뢰’의 밑돌이었다. 미국은 선 비핵화 주장으로 돌아섰다. 산이 높아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약속 대신 ‘항복’을 요구했다. 회담은 파국으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넉 달여 뒤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상징적인 행사에 그쳤을 뿐이다. ‘근본 문제’를 둘러싼 북-미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북은 말한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탓에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은 말한다. 북이 핵무장을 풀기만 하면 새로운 북-미 관계와 풍요로운 미래가 가능하다고. 그 사이에서 다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북한과 미국만으론 아마도 어려울 게다.

‘6자회담’ 재개도 강조

“2018년 초부터 관련 당사국들의 조율된 노력 덕분에 한반도 상황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한반도 문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법을 구하려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북-미 정상은 하노이와 판문점에서 만났고, 스톡홀름에서 실무진이 협의를 통해 북-미 상호 이해를 높이는 긍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동시에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 유예 약속을 지켰고 한반도 비핵화란 약속을 여러 차례 선언했다. 북한과 미국을 포함해 관련 주요 당사국들은 대화를 통해 어렵게 이뤄낸 한반도 긴장 완화 국면을 중시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함께 취해나가야 할 것이다.”

2019년 12월11일 오후 3시(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8682차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북한’과 핵무기 ‘비확산’이 의제였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위와 같이 말했다. 조금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이 또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긴장이 다시 높아졌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긴박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로 가는 일련의 긍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북한의 합당한 안보 우려와 발전에 대한 열망은 합당한 관심을 끌지 못했고 여전히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다.”

장 대사의 이날 발언은 딱히 새로울 게 없다. 북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핵·미사일 시험 유예를 선언한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한 발언이다. 다만 달라진 것은 주장에 그쳤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안보리 결의 형식을 빌려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일주일 남짓 뒤인 지난해 12월17일 중국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안보리가 북에 부과한 제재의 수위를 조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전문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초안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 결의 때마다 등장하는 “북의 안보리 결의 이행 상황에 따라 제재를 조정·유예·해제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는 조항을 새삼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이 마지막으로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2017년 11월29일이다. ‘마지막 도발’ 이후 2년 하고도 두 달 가까이 지났다. 부과된 제재에 대해 안보리 차원에서 재논의할 근거로 충분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초안에서 ‘6자회담’ 재개도 강조했다. 이 역시 그간 나온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반드시 포함되는 규정 가운데 하나다. 교착을 풀 수 있다면 북·미 주변을 한·중·러·일이 둘러싸고 지원하는 다자 틀 속의 양자 대화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 정세가 2017년으로 뒷걸음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안보리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란

중국과 러시아의 결의안 초안에 대해 미국은 여전히 “지금은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난해 12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은 미국이었다. 2020년 1월 의장국은 베트남이 넘겨받았고, 5개 상임이사국 외 10개 비상임 이사국의 면면도 달라졌다. 이란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결의안 초안에 대한 안보리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3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이 된다. 거부권을 가진 미국이 ‘찬성’이 아닌 ‘기권’만 해도 초안은 통과될 수 있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유엔 회원국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일차적 책임을 안전보장이사회에 부여한다.” 유엔 헌장 제23조 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일차적 책임’을 진 안보리는 지난 2년여 한반도 위기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어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했나? 이제는 물어야 할 차례다.

베이징(중국)=정인환 <한겨레> 특파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