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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개혁 동력으로” “검찰개혁이 1번일 수 없어”

조국과 검찰개혁에 대한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우석훈 박사 대담

제1282호
2019.10.06
등록 : 2019-10-06 12:15 수정 : 2019-10-06 13:30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조국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무거운 리트머스시험지 같은 게 되었다.”(우석훈 박사 페이스북)

시험지 색을 가른 산과 염기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조국 법무부 장관 개인에 대한 좋고 싫음만은 아닐 터다.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의 우선순위, 새로운 세대에 대한 시각, 앞으로 사회운동의 전략, 다시 거리를 빼곡히 밝힌 촛불에 대한 생각, 무엇보다 ‘진보’란 뭔지에 대한 대답을 두고 저마다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누군가 ‘진보 분열’이라고 했다.

이진경과 우석훈. 각자 다른, 그래도 ‘진보’라고 묶인 자리에서 고민하고 공부하고 실천해온 두 사람이 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고, 서로가 서로를 동경했으며, 그 길에서 조국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조국이 ‘거대한 사건’이 된 뒤,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읽힌 두 사람의 생각은 사뭇 달라 보였다. 이진경은 ‘자신마저 비판하는 방식대로 살 수밖에 없는 딜레마’, 그럼에도 ‘상황을 통찰하고 그 출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우석훈은 ‘대중, 특히 청년의 지지가 없는 당위성에는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우석훈 박사가 10월3일 <한겨레21> 뉴스룸에서 만났다. 지지와 반대를 두고 벌이는 격론은 없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거기에 자신의 고민을 덧붙였다. 다름을 자양분 삼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검찰개혁, 세대와 공정성, 촛불집회, 언론, 진보 분화 같은 주제를 넘나들며 2시간 대화했다. 이춘재 기자가 사이사이 질문했다.

선악의 도덕과 좋음과 나쁨의 윤리

조국 장관이 논란이 되면서, 진보 세력으로 묶여왔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시각과 말들이 나온다. 차분히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먼저, 각자 조국 장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이진경 교수가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시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이진경 교수(이하 이) 검찰개혁 국면과 엮여 있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의문이 들었다. 검찰이 왜 이렇게까지 할까. 무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왜 계속할까. 이런 대결 속에서 검찰은 무리수를 더 크게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11시간 압수수색까지 했다. 검찰에 대한 반감이 불붙었다.

조국에게 비판적 견해를 가진 분들 생각도 충분히 이해한다. 검찰개혁은 해야 하고 조국 지지는 좀 난감해서 ‘조국 수호는 빼고 검찰개혁만 이야기하자’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좋으나 싫으나, 조국과 검찰개혁은 이미 붙어버려 분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무리한 수사 국면에서 조국은 검찰개혁의 중심고리가 됐고, 조국을 빼고 검찰개혁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조국에 대해 사람들이 지지를 주저하는 이유 가운데 큰 것이 도덕적 판단인 것 같다. ‘(자신이) 한 말과 다르게 어떻게 그렇게 살았냐’고 하는데 그런 평가를 할 만한 여지도 있다. 다만 모럴(Moral·도덕)과 에시크(Ethic·윤리)는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의 범주는 선과 악이고, 윤리는 좋음과 나쁨이라는 범주를 쓴다. 지금 많은 경우 선악으로 평가하는 것 같은데, 나는 윤리주의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일반 국민, 민중의 관점에서 어느 것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관점에 서야 한다. 누군가의 능력을 증진하는 게 좋고 감소시키는 게 나쁘다고 본다면, 조국을 버려야 할까 지지해야 할까. 나는 지지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우석훈 박사(이하 우) 많은 사람이 검찰개혁을 이야기하고 그 축도 물론 중요하다. 나는 좀더 많은 젊은 대중의 도덕관 쪽을 봤다. 이들은 법적 문제를 떠나서 조국 장관 딸의 입학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과 정권 중심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정서가 점점 멀어지는 과정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이번 조국 사건으로 크게 폭발했다.

1987년 이후 진보는 늘 공격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태도를 10대, 20대도 지지했다. 그래서 이들이 투표권을 쥐면 우리에게 힘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이긴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이 흐름이 바뀌고 있다.

사회는 매우 크고, 경제도 사법도 사회의 일부다. 이 거대한 사회에서 검찰개혁이 1번인가. 검찰개혁만 하면 앞으로 탄탄대로인 좋은 사회가 올 것인가, 고민해봐야 한다. 젊은이들 마음이 떠나고 싫다고 하는데도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고만 쉽게 말할 수 없다.

우석훈 박사

20대와 ‘시험’이라는 공정성

이 중요한 문제다. 다만 ‘세대’라는 틀로 하나로 묶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 최근 <한겨레>에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이 쓴 ‘촛불을 들지 못한 20대들’을 읽었다. 잘사는 20대 친구들이 ‘우리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비율이 56.3%로 가난한 집 출신보다 두 배 높았다. 연대와 협력보다 자율과 경쟁을 지지하는 쪽도 부유층 20대 쪽에서 50%였다. 이렇게 보면 20대 안에서도 굉장히 큰 계급적 차이가 있고, 이것은 우리 세대보다 더 크다.

분명 세대 차이는 나타난다. 하지만 세대론으로 접근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구조적 모순을 풀기 위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물질적인 뭔가를 줄 수도 없고, 기성세대를 없애버릴 수도 없다. 세대 격차는 중요하지만 오히려 뚜렷하기에 들어가면 길을 잃는 문 같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20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성에 대해 듣고 싶다.

이 서로 입장이 다를 때 공정을 이야기한다. 공정은 입장(견해)을 떠나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공정성을 정의하는 방법이 참 다양하다. 지금 젊은 사람들의 공정성은 결국 ‘시험으로 하자’는 것인데 경쟁의 공정성을 말한다. 이런 공정성은 널리 퍼져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우린 시험 봐서 들어왔는데’ 하는 주장이다. 이 공정성이 결국 현존하는 불평등을 만드는 원리가 되고 있다. 이런 공정성이라면 좀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이런 공정성 관념은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 승자독식 사회의 불행한 산물이다. 20대가 이런 마음인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다만 그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한지는 다른 문제다. 이해는 돼도 동의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나타난 문제이지만 한 개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조국 사건은 불평등 구조, 교육과 입시 체제, 학벌 사회의 심각성을 보여줬고 여기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대화하는 방식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나도 거기에 익숙하지만 계몽주의적 부분이 있다. 데이터와 정당한 주장을 여러 개 끌고 와서 ‘이게 맞지?’ 해서 이기면 기분 좋고 지면 기분 안 좋고, 이런 것이 우리 세대였다. 유신을 지지했든 전두환과 싸웠든 이런 계몽 시대를 살았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계몽주의 시대가 끝났다. 안 통한다. 이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도 어떻게 논의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쉽게 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어떤 사태를 통해 답을 물음으로 바꾸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젊은이들이 가진 강력한 정서를 보면서, 이런 정서를 생산해낸 체제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가야 한다.

우석훈 박사

방어적 주제냐 검찰 공격이냐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우석훈 박사는 참여했나.

내가 나가지 않은 첫 번째 대규모 집회였던 것 같다. 별로 당기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검찰개혁이 1번 개혁이라는 점에 동의 못한다. 교육도 중요한 주제고, 경제 분야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많은데 하는 생각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와 비교해보면 그때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아닌 사람이라면 대부분 나왔다. 반면 2008년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의 안타까움은 저변이 넓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제도적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좀더 저변이 넓은 주제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톨게이트(고속도로 요금소) 노동자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도대체 왜 이것이 중심 문제가 돼야 하느냐. 나도 마르크시스트고, 지금은 노동자보다 비정규직이 프롤레타리아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성을 누가 부정하겠나. 나도 검찰개혁만이 제1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으나 싫으나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일단 이 길로 밀고 나가야 이 힘으로 교육개혁이랄지, 비정규직 문제랄지 하는 것도 밀어붙일 힘이 생긴다.

지금 사태의 한계다. 처음부터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시작한 게 아니라 방어적인 주제다. 지켜내자는 의미로 모였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의 마음이 쫙 모이기 힘든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검찰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공격적인 집회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폭증하는 흐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이런 사건이 보여주는 건 사람들이 사태를 받아들이는 심각성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서 더 밀고 나갈까 고민해야지 한계를 이야기하는 건 사태에 적합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모두의 집회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여론 분석 틀에 따라서도 집회 참여자들의 성격을 정리하는 것이 복잡해진 상황이다. 40~50대가 느끼는 정서와 10~20대가 느끼는 정서가 많이 달라졌다. 검찰개혁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런데도 3년 전 촛불과 비교하면 제한적으로 보인다.

이런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2008년 촛불집회도 제도적으로 얻어낸 것이 없다고 냉소하지만, 이런 대중 시위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는 대중 자신의 변화다. 2008년의 시위가 없었다면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2016년 시위가 가능했을까. 이번 경험이 이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현정치’라는 말을 (페이스북에) 썼다. 2016년과 지금을 비교할 때 아주 두드러진 차이는, 당시에는 언론과 대중이 함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언론을 거슬러 대중이 모였다. 지난 두 달간 100만 건 넘는 적대적 기사를 엎어버리면서 모였다. 대중이 지혜를 발휘한 시위라고 봤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기자들의 새로운 아비투스

언론 이야기를 해보자.

언론매체는 계속 달라져왔다. 과거 일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텔레비전과 신문 같은 언론은 강한 기자 윤리를 바탕으로 했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엄정한 진실성보다 주장성 글을 쓰는 데 익숙해진 이들도 기자가 됐다. 여기서 새로운 아비투스(계급 집단적 습속)가 형성됐을 수 있다. 기자들의 윤리가 사라졌다고 의심이 시작되니, 신문과 방송에 나왔다는 게 사실로 믿을 게 아니라 따져봐야 할 것이 돼버렸다.

나도 지금 한국 언론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는데, 다른 틀로 생각했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운영할지 논의하는 장이 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답은 못 구하더라도 의견을 만들고 고민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만약 2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면 검찰개혁도 그 안에서 근본적으로 다뤄졌을 것이다. 검사에 대해 신비화된 음모주의 같은 이미지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게 조국 장관으로 바뀌면서 지난 두 달 모두 조국 장관만 바라보는데, 우리 사회에 이것밖에 과제가 없었나. 특히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의 책임이 크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정의당 탈당, 김경율 회계사의 참여연대 비판 등 이 사태를 바라보는 진보의 분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떻게 보나.

우리 편만 모여서 시민운동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견해 차이는 당연한 거다. 이슈에 따라 각자 의견이 갈리기도 모이기도 하며 이합집산해왔다. 이를 분화·분열이라고 한다면 1987년 이후 수백만 개 단체가 생겼을 것이다. 시민 자격으로 누구나 참여하는 시민운동이라면 좀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 의견 제시에 불이익이 생기면 자기검열을 시작한다.

비슷한 생각이다. 나만 봐도 내 생각이 늘 옳지는 않았다. 문제 있을 때마다 사람을 쳐내기만 하면 소중한 사람이 남지 않는다. 조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는 존재다. 그걸 극복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진보 엘리트 ‘다 그래’ 논리에는 동의 못해

우석훈 교수도 조국 장관에 대한 마지막 말씀 부탁드린다.

나 역시 조국 장관 개인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일부 진보 엘리트의 ‘남들 다 그래’라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남들은 그들 그룹 안에서의 남들이다. 많은 국민이 화난 데도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 ‘조국 이외의 사법개혁 적임자가 없다’는 말 역시 개인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집권여당과 정부는 해선 안 된다. 수많은 좋은 사람을 준비해놓고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이 여기까지 오게 한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 공보 논리가 우려스럽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잘 처리할 수는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진행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정리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