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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서, 원대 복귀중 다시 외도

김도연·곽승준 등 전직의 달인…학기 중에 자리 옮겨 수강신청했던 학생들 ‘황당’

제731호
2008.10.16
등록 : 2008-10-16 15:55 수정 : 2008-10-16 21:19
김병국 교수의 일과는 단순하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는 그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학부생들에게 ‘비교정치개설’을 가르치고, 수요일에는 같은 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비교정치이론’을 강의한다. 강의가 없는 날에도 쉬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학계에서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알려진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팀과 함께 2권짜리 영문 단행본 <박정희 시대> 출간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김 교수를 비롯한 국내 필진 22명에 외국인 교수 4명까지 함께 참여하고 있는 방대한 작업이다. 이 밖에도 김 교수는 미국 펜실베니아대의 에이믹스 교수 등과 함께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개혁·개방 및 구조조정 문제를 다룬 <시스템 리스트럭처링> 출간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물론 시간을 쪼개 학교 강의 준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 교수는 10월9일 “대학에서의 강의는 언제나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며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자식을 대하는 느낌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병국 교수의 최근 일상은 학계의 여느 지식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6월 말까지만 해도 그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다. 지난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외교안보수석에 임명되며 학교를 떠났다가 청와대에서 물러나자마자 곧바로 대학에 복귀한 것이다. 그는 ‘폴리페서’(polifessor)다. 폴리페서란 영어로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로,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을 부정적으로 가리킬 때 쓰는 용어다.

지난 6월 말~7월 초 청와대 인적 쇄신과 개각을 통해 물러난 ‘폴리페서’들이 대부분 대학 복귀를 마쳤다. 9월8일 서울대 사회대 학생들이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에서 밀려난 류우익 교수의 복귀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 장하나

청와대 1기 참모진과 내각 인사들 중에는 유독 학계 지식인과 교수 출신이 많았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6월 말~7월 초 단행된 인적 쇄신 과정에서 물러났고, 이렇게 청와대에서 밀려난 인사들은 9월 초 대부분 원래 소속됐던 대학으로 ‘무사히’ 복귀를 마쳤다.

김병국 교수가 그랬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2008년 2학기부터 경제학과로 컴백해서 3학점짜리 학부 수업인 ‘지역도시경제론’과 대학원 수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다른 대학 총장으로 가도록 면직 처분


이들 외에도 류우익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돌아왔고, 논문 표절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80여 일 만에 낙마한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과로 복귀해 강의를 진행 중이다. 류 전 실장은 대학원 전공선택 과목인 ‘도시사회지리학’을, 박 전 수석은 ‘가정경영학’ ‘가정경영연구’ ‘가정경영특수연구2’ 등 세 과목을 맡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를 이끌었던 김도연 전 장관의 선택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애초 김 전 장관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복귀한 뒤 이번 2학기에 ‘재료공학원리1’과 ‘재료종합실험’ ‘대학원논문연구’ 등 세 과목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2학기가 시작된 9월8일 울산대가 김 전 장관을 신임 총장으로 선임했고, 하루 뒤 서울대는 그를 면직 처분시켜줬다. 2학기 개강이 늦어도 9월 첫 주에는 시작됐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의 수업을 신청했던 학생들은 학기 중에 해당 과목의 교수가 뒤바뀌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맡고 있던 수업이 어차피 1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라 다른 교수가 강의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들어야 할 과목이었다”며 “김 전 장관의 갑작스런 사직으로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 수장으로 재직하다 그만둔 뒤 곧바로 소속 대학으로 돌아와 강의를 맡은 사실이나, 그것도 모자라 학기 중에 다른 대학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처사는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한림대 총장으로 재직하다 올 초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옷을 갈아입은 김중수 전 수석은 6월 말 청와대를 나온 뒤 학교 복귀를 저울질하던 중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에 임명되는 바람에 또다시 방향을 틀었다.

김중수 전 수석도 다시 유턴

폴리페서 논란이 학계 안팎에서 문제가 됐던 지난 여름 이들의 복귀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던 해당 대학 학생회는 ‘귀환 작업’이 얼렁뚱땅 마무리되자 힘을 잃은 모습이다. 그나마 곽승준·김병국 두 교수가 소속된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가 아직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도다.

다만 같은 폴리페서라고 해도 두 교수에 대한 학생회의 시선에는 온도차가 있다. 정경대 학생회에서는 9월9일 두 교수에게 공개질의서를 띄웠다. 지난 1학기 두 사람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시점은 대다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끝낸 뒤였다. 당시 두 교수의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갑작스럽게 교수 교체를 감수해야 했다. 학생들은 질의서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사과와 함께 청와대에서 학교로 복귀한 뒤 곧바로 수업을 맡은 것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다.

김병국 교수는 9월11일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보냈고, 곽승준 교수는 보내지 않았다. 김 교수는 답변서를 통해 “공직에 나가게 되면서 강의를 예정대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학생들이 (폴리페서 논란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갖는 것은 당연하며 그 가운데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와 내각에 참여했던 학계 인사들. 왼쪽부터 박미석, 김병국, 류우익, 곽승준 교수와 김도연 총장.

반면 학생들의 질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곽 교수는 그 사이 장관급인 미래기획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페서 논란 과정에서 수업권 보장을 요구해왔던 학생들의 시선이 더욱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박아무개(21·경제학과)씨는 “지난 1학기 곽승준 교수의 ‘미시경제이론’을 신청했다가 개강 직전에야 수업계획표를 통해 강사교체 사실을 알았다”며 “곽 교수나 학교가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호 정경대 학생회장은 곽 교수와 학교 쪽의 이중적 대응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회에서는 9월 초 곽 교수에게 공개 질의서를 발송한 뒤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는데, 학교 쪽에서 먼저 ‘그 전에 곽 교수 등과 학생 대표단이 면담을 갖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일단 기다려보자는 쪽이었데, 9월 말 윤창호 정경대학장이 일방적으로 면담을 취소해버렸습니다.”

비판 대자보 붙이며 폐강 주장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는 10월8일 현재 정경대 로비 정면에 두 개의 대자보를 나란히 게시해놓았다. 하나는 곽 교수의 ‘무성의’를 꼬집는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 교수가 학생회에 보내온 답변서에 대한 의견이었다. 학생회는 또 10월11일로 예정된 고려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공직이나 정치권에 진출하는 교수들에 대한 휴·복직 규정 마련 촉구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상태다.

서울대 사회대 1층 복도에도 최근까지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고 학교로 복귀한 류우익 교수를 비난하는 글이었다. 대자보 끝부분에는 ‘환영의 시’가 한 편 소개돼 있다. 제목이 ‘반년 동안 2MB를 키운 건 팔할이 우익이다’였다.

2학기 개강 직전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에서는 류 교수의 강의가 폐강되도록 학생들 스스로 수강 신청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대가 류 교수에게 2학기 대학원 수업만 배정한 것도 이같은 학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회의 요구는 교수들의 현실 정치 참여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경우 휴직과 복직에 대한 합리적 규정을 마련해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실정에 책임이 있는 인사라면 학생들이 복귀 심사 등의 절차에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대환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은 “교수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쓰겠다면 그 자체를 막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류 교수의 경우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큰 책임이 있는 인사로 ‘지식 전달자’가 아닌 ‘선생님’의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폴리페서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학계의 쟁점이지만 각 대학은 여전히 폴리페서 규제에 소극적이다. 서울대는 지난 4월 총선에서 거짓 육아휴직계를 내고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김연수 체육교육과 교수 사례가 논란을 빚자 9월9일에야 ‘서울대 교수의 휴직·파견·겸임에 관한 연구팀(가칭)’을 발족하고 관련 규정 제정에 착수했다. 서울대는 특히 김 교수의 거짓 육아휴직이 문제가 됐던 3월부터 6월까지도 그에게 매달 440만~450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한 사실이 최근 최재성 민주당 의원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학문 적용 좋지만 복귀 심사 엄격해야

고려대 이기수 총장은 10월7일 재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히려 교수들의 공직 진출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장은 “학교 규정상 선출직으로 나가는 경우는 사표를 받지만 국가에서 특정 교수의 의견이 필요해 모시는 경우는 휴직 처리를 해준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정치권 진출로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당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요구와는 맥락이 전혀 다른 발언이었다.

전영평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에 따르면, 합리적 수준의 관련 규정이 없을 경우 대학 교수의 무분별한 정치권 진출과 복귀의 악순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학 외부에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될 만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미국은 브루킹스연구소나 월가의 수많은 경제연구소 등이 좋은 연구 환경과 높은 보수로 지식인 집단을 흡수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같이 지식인 그룹이 몸담을 만한 기관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