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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의 아무몸

인생 걸고 화장을 버리는 이유

화장이 ‘선택’ 아닌 세상에서 탈코르셋 선언한 여성들

제1294호
등록 : 2019-12-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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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20대 나는 지금 탈코르셋한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1990년대다. 짧게 친 머리에 청바지만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한 록밴드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면티를 하도 입어 친구가 불태우고 싶다고 했다. 마음속은 탈코르셋과 정반대였다. 여성이라는 표지를 다 지워버리려 든 까닭은 얕잡아 보이기 싫어서였다. 내게 여성적인 것은 약점과 동의어였다. 정신은 남성, 몸은 여성이라는 이분법과 위계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짙게 화장하면 ‘골 비었다’ 욕먹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 면티와 민낯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기’ 위한 전술이었다. 가짜 안경을 끼고 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랑받지 못할까, 그래서 결핍된 존재, 동정의 대상으로 남을까봐 그랬다. 그 불안의 성물처럼 신발장엔 한 번도 신지 못한 10㎝ 초록색 하이힐이 모셔졌다.

“틴트 없으면 형광펜” 발라야 하는 교실

20년을 훌쩍 넘어 탈코르셋 운동을 보며 선뜻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내가 숨겨놓고 못 신는 하이힐 위에 서 눈꼬리를 한껏 위로 그린 여자들을 보면, ‘그래! 나 여자다’라는 해방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투블록 머리를 한 20대 여성들에게 옛날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남자처럼 하고 다녀야 해방이야?

“음, 마트 갈 때는 화장 안 해요. 대신 마스크 써요.” 왜냐고 한 20대 취업준비생에게 물었더니 그가 한참 생각했다. “창피해서요. 못생겨서요.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 여자친구 한 명이 화장을 안 하고 다녔어요. 여자애들은 걔한테 ‘화장 좀 하고 다니라’고 조언하고, 남자애들은 대놓고 ‘너 못생겼다’ 그랬어요. 그때 ‘나도 화장 안 하면 저런 취급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함부로 한달까. 화장은 그러니까 ‘인격 보호막’이에요. 결국 여름방학 지나 그 친구가 쌍꺼풀 수술하고 풀메이크업으로 나타났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애들이 침을 뱉었다고 한다. “뚱뚱하다”고 그랬다. 뷰티 유튜버였다가 탈코르셋한 배리나가 책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에 쓴 ‘잔혹사’다. “패버리고 싶게 생겼다.” “뚱뚱하면 그냥 집에 처박혀 있지.” 여자애들은 따돌렸고 남자애들은 욕했다. 뷰티 유튜버가 돼 화장하니 “예뻐졌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경멸 어린 시선도 줄었다.


‘선택’할 수 없다면 화장과 차도르·전족은 같다

인간 대접 받으려 화장해야 한다면 차도르 같은 베일과 뭐가 다른가? 나오미 울프는 책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진짜 이유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돼 있음을 여성들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썼다(조이한,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에서 재인용). 전족 하고 베일 쓰는 게 선택의 문제만이 아니듯, 화장도 그렇다. 베일을 벗는 게 저항이라면 투블록도 그렇다. 특히 민낯이 예의 없는 것이 돼버린 이 세계에선 그렇다. 초등학교 여학생 48.3%, 중학교 여학생 73.8%가 화장하는 이곳에선 그렇다(2016년 녹색건강연대가 전국 초·중·고 4736명 조사). 소녀들을 ‘화장품 시장의 블루오션’ 취급하는 이곳에선 그렇다.

“뒤통수를 빡 때리는 느낌이잖아요. 외모에 대한 주문이 워낙 강력한 사회에 사니까 그렇게 정신을 딱 차리고 나서야 이후에 생각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온건하게 말하면 ‘아, 그래?’ 하고 그냥 계속 꾸밈을 합리화하게 돼요.” 이민경의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이하 <탈코르셋>)을 보면, 10~20대 여성이 느끼는 외모 강박은 머리를 빡빡 미는 정도의 저항이 없으면 깨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다. 교실에서 “틴트가 없으면 형광펜”으로라도 입술을 칠한다. 거식증으로 40㎏을 왔다 갔다 하며 병원에 누워 있는데 친구들이 진심으로 “말라서 좋겠다”고 한다.

꾸미기가 애초에 선택이었다면 탈코르셋이 두렵지 않았을 거다. 배리나는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친한 언니한테 탈코르셋을 배웠다. “화장을 좋아하는 내가 비난받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안 예쁜 내가 탈코르셋까지 하면, 정말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닐까?”(<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탈코르셋한 뒤엔 폭력의 표적이 될까 무섭다. “그 남자가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는데, 그 눈빛에 정말 적의가 가득 담겨 있었어요.”(<탈코르셋>) 아르바이트에서 잘릴 수도,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 ‘여자의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릴 수 있다. 외모 강박에서 혼자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연대의 표시로 머리를 자른다.

이 여자들은 ‘보이는 자’에서 ‘보는 자’가 되길 포기하지 않는다. 겉모습은 비슷해도 내 20대와 이들이 정반대인 까닭이다. 화장을 지우고 ‘보이는 몸’이 아니라 ‘움직이는 몸’을 느낀다. 관계와 삶 전체 계획이 변한다. <탈코르셋>의 저자 이민경은 바지를 살 때마다 옷에 맞지 않은 제 다리가 부끄러웠다. 이제는 ‘무슨 바지를 이렇게 만드냐’라고 말할 수 있다. <탈코르셋>에서 남자친구에게 고양이처럼 ‘꾹꾹이’를 했던 태주는 애인과 헤어졌다. 자기 삶의 유일한 책임자이자 생계부양자로 적금을 붓는다.

왜 작고 어리고 가냘픈 게 여성적인가? 왜 몸의 고통을 감내해야 여성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나? 그들은 여성과 ‘여성적인 것’ 사이 연결고리를 끊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 돼버린 그 차이에 자기 몸을 근거로 묻는다. 정말? “남자가 입으면 어울리고 여자가 입으면 이상한 옷이 있다거나, 남자 머리 길이, 여자 머리 길이, 이런 게 다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허상이라는 걸 생각해서 자른 게 아니라, 자르고 나서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저는 여전히 전과 똑같은 여잔데 고작 머리 때문에 갑자기 여자 옷이 안 어울리잖아요. 그때 되게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 선을 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탈코르셋>에서 상민)

‘보이는 자’ 아니라 ‘보는 자’ 되려는 투쟁

당신은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방 색깔은 고를 수 있다. 빨간 방, 파란 방, 여기 100가지 색깔을 더한다고 당신의 자유가 늘었다 말할 수 있을까? 화장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화장할 자유도 있다. 마리 루티는 책 <남근 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에서 “신자유주의 상업문화에서 (이성애) 남자들은 그렇게 여자들을 바라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고, 여성들은 그런 시선의 대상이 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썼다. 이런 분석을 한 그도 교수로 강연하러 갈 때 하이힐을 신고 립스틱을 바르며 성공한 커리어우먼 복장을 한다. 40대가 된 나는 컨실러(피부 결점을 감춰주는 화장품)로 잡티를 가리지 않으면 내 얼굴이 부끄럽다.

왜 탈코르셋은 다 똑같은 모습이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탈코르셋을 보는 불편한 내 마음엔 ‘보이는 자’로서 안온한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를 걸고 ‘보는 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향해 느끼는 죄책감이 적어도 절반을 차지한다. 그 여자들 덕에 우리가 더 자유로워지고 있으니까.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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