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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돌도끼 그리고 제3의 발명

‘강간’의 역사와 구조 분석한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등록 2019-12-06 02:33 수정 2020-05-02 19:29
1975년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출간 직후의 수전 브라운밀러. 수전 블라미스, 오월의봄 제공

1975년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출간 직후의 수전 브라운밀러. 수전 블라미스, 오월의봄 제공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라.” 2018년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강간을 재정의하고 배우자강간(부부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했다. 형법 제297조를 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하고, 여기서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를 의미한다. 이 판단 기준은 실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설명하지 못한다. 많은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일어나며, 가해자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해 강간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형법의 현 정의는 여성의 경험을 역사화, 법제화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대변한다.

“전시강간은 평상시에도 일어나는 행위”

1970년대를 대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수전 브라운밀러는 강간의 역사와 구조를 분석하는 책을 발표하고, 그 제목을 (1975)라고 짓는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강간이 “여성의 의지에 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삽입성교”를 지칭하는 데서 가져온 이 제목은 여성의 경험을 듣거나 역사화하지 않는 사회를 비판한다. 의지에 반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성은 눈에 띄는 상처를 입거나 구타, 협박 등 물리적 피해를 입어야 했다. 때로는 물리적 증거마저 그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이는 여성 경험을 해석하는 사회적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 과정에서 브라운밀러는 여성에 대한 압력이나 억압을 설명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은 불의 사용과 돌도끼의 발명과 함께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아야만 한다. 강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는 강간이 성충동이나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권력 문제이며, 역사성을 지닌 사회적 개념이기에 사회가 강간을 어떤 식으로 사유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권위적인 위계 구조를 제공하는 정서적 환경이나 의존 관계”는 법원에서 강압적인 행위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적 통념상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압력”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규범이 피해자에게 ‘권위’로 존재함에도 강제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 속 강간에서부터 신화, 전쟁, 실제 사건 등 분야를 넘나들면서 강간을 사회적인 것으로 구성해낸다. 특히 그는 전시강간을 선전선동에 사용하는 구조를 비판하면서 강간이 전쟁이 초래한 증상이나 전시의 극단적 폭력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전시강간은 평시에도 익숙한 이유를 구실로 삼는 익숙한 행위다.” 브라운밀러는 강간당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가장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전쟁과 적군에 관련된 일이 되었을 때만 의심 없이 확대재생산된다고 지적한다.

흑인 남성의 백인 여성 강간이 의미하는 것

브라운밀러는 이데올로기, 민족, 국가, 종교 등과 관계없이 성별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서 강간을 해석한다. 억압받는 계급으로서 여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강간이며, 정의롭고 진보적이라는 활동가, 연구자들조차 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 책의 6장에 실린 인종 문제다. 백인 지배 사회에서 흑인 남성은 잠재적 강간범으로 여겨졌다. 인종 간 강간에 대한 공포는 타자를 형상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동원된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독일과 점령지 주민들 사이에서 강간은 ‘우리의 여자들’을 지키지 못한 고통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강간 담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당시 SNS에서는 이슬람 남성들은 한국보다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강간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말이 온라인상에 유포되었다. 이는 백인 중심 사회에서 흑인을 향해 쏟아냈던 말과 동일하다. 다른 인종, 국적을 가진 남성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동물적 존재로 형상화되었으며, 여성과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가시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강간은 선전선동에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진 말로 여겨진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강간은 언제나 여성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협박’이 아닌 ‘동의’로 바뀌어야 할 정의

흑인민권운동 진영은 흑인 남성을 강간범으로 형상화하는 문제를 비판하고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강간하는 문제를 고발한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이중 억압으로 흑인 여성은 성폭력의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브라운밀러가 지적하는 부분은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할 경우다. 이때 백인 여성의 행실이나 태도는 사건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백인 여성은 거짓말로 남성을 위험에 빠뜨린 나쁜 여자로 쉽게 매도되었다. 즉 인종 간 강간 문제를 사유할 때, 여성의 말이나 경험은 존중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흑인이 백인을 강간하면, 백인이 백인을 강간한 경우나 백인이 흑인을 강간한 경우보다 더 높은 처벌을 받았고,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과 스치기만 해도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인종 간 권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종과 계급이 아니라 성별을 중심으로 강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브라운밀러의 작업은 흑인 민권운동가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흑인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브라운밀러는 아주 단호하게 강간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고,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흑백을 막론한 모든 여성의 자유, 이동권, 열망을 짓밟는 통제기제라는 사실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교차로는 폭력이 난무하는 험악한 지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양 가정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에서 ‘여성의 의지에 반해’라는 강간의 정의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어떤 신체 부위나 물건을 질이나 항문에 삽입하는 행위 또는 타인의 성기를 입에 삽입하는 행위, 삽입이 얼마나 가벼운 정도로 이루어졌는지는 상관없음”으로 바뀐 것은 2014년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도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이나 협박이 아닌 동의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피해자의 ‘의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경험을 듣는 법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허윤 문학연구자·부경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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