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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예의 내가 사랑한 동물

콩잎 홀라당 먹은 만복이

우시장에서 어미와 떨어져 팔려온 송아지

제1298호
등록 : 2020-02-03 20:10 수정 : 2020-02-0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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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어머니가 갑자기 우리 저녁에 밥 안 먹기 운동을 하자 하십니다. 아니 밥을 안 먹고 어떻게 살아! 아주 끼니를 안 먹는 것이 아니고 저녁은 쌀로 밥을 안 해먹기 운동을 하자는 거지.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가을에 햅쌀이 나올 때까지 여름 동안 하루 저녁은 감자 찌고 국수 하고 또 다음 올챙이묵 하고 부치기(부침개) 하고.

왜 그래야 하는데? 다른 곡식보다 쌀값이 비싸서 쌀을 팔아야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수리 집으로 이사하느라고 빚을 좀 졌습니다. 봄농사가 끝나자 소를 팔아 빚을 갚았습니다. 당장 소가 없으니 허전하고 내년 농사일도 걱정돼 쌀을 팔아 송아지를 사서 키울 생각이랍니다.

여름내 저녁 쌀밥 안 먹은 돈으로 산 송아지

여름 양식은 보리와 감자가 주식입니다. 여러 날 저녁상에 밥이 안 올라오자 무슨 일이냐고, 왜 요즘 저녁에 밥 구경을 할 수 없냐고 아버지가 묻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에 밥 안 먹기 운동을 하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내 생전에 새마을운동 얘기는 들어봤어도 저녁에 밥 안 먹기 운동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고 하십니다. 여름 동안 제사가 몇 번이고 생일이 몇 번이고 언제 손님이 오고… 하며 꼼꼼히 따져 먹을 쌀을 계산해 남기고 장날이 되자 쌀을 몽땅 팔았습니다.

장날 저녁입니다. 어머니는 돈뭉치를 아버지 앞에 내놓으며 송아지를 사자고 하십니다. 돈이 어디서 났냐고 하시니 여름 동안 먹을 쌀을 팔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돈을 세보고는 이 돈으로 송아지를 사기에는 어림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대화장에 가보자 욕심부리지 말고 송아지라고 생겼으면 개만 하더라도 사오자고 하십니다.

대화장이 서는 날입니다. 우시장에는 여자들이 가면 재수 없다고 하여 어머니는 멀리서 바라만 보고 아버지가 들어갔습니다. 젖 뗄 때가 된 송아지와 어미 소가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미와 송아지를 다 사기는 벅차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송아지만 따로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간 목줄을 매고 송아지에게 마지막으로 어미젖을 먹게 합니다. 송아지는 어미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움매매~ 움매매매~ 뻑발을 주고(뒤꿈치에 힘을 주고 버티는 모양) 따라오려 하지 않습니다. 어미 소도 음메메~ 음메메~ 큰 소리로 웁니다. 어미도 송아지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 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끝내 소 주인도 눈물을 흘리면서 약국에 가 젖병을 사다 소젖을 짜서 담아주었습니다. 장사꾼들의 도움을 받아 눈시울이 벌게진 우시장 사람들을 멀리하고 따라오지 않으려는 송아지를 끌고 나섰습니다.


멀리서 보던 어머니가 빨리 쫓아가 송아지를 아버지와 둘이 안아 들고 우시장에서 멀리 떠났습니다. 어떻게 집에 가나 난감해하는데 다행히도 평창에서 화물차를 하는 아는 사람을 만나, 그가 옥고개재 밑까지 태워줘서 그나마 수월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송아지를 안고 몇 발짝 오다가 또 아버지가 안고 몇 발짝 옮기고 그렇게 옥고개재 엉털재(엉글멍들 큰 돌덩이로 형성된 고갯마루)를 넘었습니다. 어머니가 뒤에서 밀고 아버지가 끌고 쉬엄쉬엄 오느라고 밤중에야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매일 밤 만복이 안고, 얼굴 닦아줘

송아지는 아무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젖병을 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바쁜 일을 전폐하고 송아지를 돌봅니다. 콩을 갈아 콩물을 만들어 손가락에 묻혀 입에다 발라줍니다. 어머니는 정말로 언나(어린아이)를 기르는 심정으로 송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너는 그냥 송아지가 아니고 우리 가족이여. 너는 우리 집에 만복을 가져올 놈이여. 네 이름도 만복이라 부를 거여. 내가 우리 만복이한테 잘할 테니 제발 잘 먹고 힘을 내라, 응…? 힘없이 누워 눈물만 흘리는 송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숟가락으로 입을 벌려 콩물을 떠서 넣어주기도 하고 입에 죽을 썩썩 발라주기도 합니다. 송아지는 반항하면서도 입에 붙은 것을 핥아 삼킵니다. 수건을 적셔 눈물도 닦아주고 얼굴도 닦아줍니다.

어머니는 부엌에다 멍석을 깔고 매일 송아지를 안고 밤을 보냅니다. 온 가족의 신경이 송아지한테 가 있습니다. 어린 동생들까지도 연한 풀을 뜯어 나릅니다. 어머니는 송아지를 데리고 수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너는 이제 젖을 그만 먹을 때가 됐어, 언제까지 어미젖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여.

며칠이 지나자 송아지는 알아들었는지 콩물을 먹기도 하고 어린 풀잎이나 상추 같은 채소도 먹기 시작합니다. 여름이면 방에 불을 때지 않으려고 마당에다 네거리(냄비 등을 올리기 위해 불 위에 걸치는 도구)를 걸고 밥을 해 먹습니다. 부엌에 불을 때는 것보다 나무도 적게 들고 넓은 마당이 시원해서입니다.

만복이는 밥하는 어머니 엉덩이 옆에 붙어 앉아 있습니다. 저리 좀 비키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어머니 곁을 떨어지지 않습니다. 워리도 덩달아 어머니 곁에 붙어 앉습니다. 워리야 덥다, 너까지 왜 안 하던 짓을 하나? 그래도 끄떡도 안 합니다. 만복이처럼 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 있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끼니는 어떤 음식보다 밥을 하는 것이 빠르고 쉽습니다. 하지만 만복이를 사느라고 쌀을 다 팔았기 때문에 저녁에 밥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날마다 똑같은 음식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루 저녁은 감자부치기와 배추죽을 해서 먹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는 가족에게 저녁을 소홀히 먹일 수 없어, 오후에는 저녁을 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 반찬을 하려고 콩잎을 한 바가지 뜯어다놓고 잠깐 볼일 보는 사이에 만복이가 콩잎을 홀라당 먹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아이구 우리 만복이가 콩잎을 한 바가지 다 먹었어. 아이구 장해라!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소죽도 찍어 먹어보고 먹인 어머니

뭔 소새끼가 아무거나 먹지 않고 사람하고 똑같이 먹고 사려고 하나, 저놈의 소새끼 일찌감치 팔아치우라고 아버지는 역정을 내십니다. 어머니는 무슨 죄인처럼 쩔쩔매면서 이 보라고 풀을 이렇게 잘 먹는다고, 아버지 보는 데서 연한 풀을 준비했다가 먹입니다. 어머니는 평생 소죽에도 소금을 타서 찍어 먹어보고 간을 맞추어 소에게 먹였습니다.

또 어느 날 저녁은 올챙묵을 하고 감자를 찌느라고 분주합니다. 할머니는 저녁마다 별식을 장만하느라고 애쓰는 어머니가 무척 안쓰러워 한마디 하십니다. 어멈이 뭔 죄 졌나. (다음 회에 계속)

전순예 1945년생 <강원도의 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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