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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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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와 노느라면 천국이 따로 없네

개와 고양이랑 함께 병아리 키우기
등록 2020-01-15 02:04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일러스트레이션 방현일

닭들은 봄이 되면 갈갈갈갈 알 젓는 소리(알 품을 때가 되면 암탉이 내는 특유의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체구가 작은 토종닭들은 여기저기서 서로 경쟁하듯이 알둥주리를 차지하고 알을 품습니다. 다른 집들은 덩치도 크고 알도 잘 낳는 신품종 레그혼이나 뉴햄프셔를 많이 키웁니다. 우리 집이 굳이 토종닭을 고집하는 건, 특히 병아리를 잘 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색깔이 화려하고 육질도 좋습니다.

참깨 먼저, 싸라기, 좁쌀 순으로

봄이면 병아리만 나는 게 아니라 돼지고 강아지고 많이 태어나지만 다들 40일 정도 키우면 팔게 됩니다. 병아리는 1년을 함께하며 손님이 오면 고기도 제공하고 아쉬우면 팔아 용돈도 하고 알도 낳아 먹습니다.

성질 급한 토종닭이 알을 품은 지 21일이 되는 날입니다. 아직 병아리는 보이지도 않는데 실금 사이로 삐악삐악 아주 가냘픈 병아리 소리부터 들립니다. 어떤 알은 금이 쫙쫙 가면서 털이 짝 달라붙은 볼썽사나운 괴상한 놈이 나옵니다. 빨리 나오는 놈도 있고 아주 오래오래 애써야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놈도 있습니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게 힘들어 보인다고 사람이 껍데기를 뜯어주면 병아리는 힘을 잃고 죽어버리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조금 시간이 지나 어미 닭의 온기로 털이 마르면 까맣고 노랗고 보송보송한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예쁘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변합니다.

병아리는 털이 마르면 어미 닭한테서 떼어내 방으로 데려갑니다. 아버지가 싸릿가지로 위쪽은 좁고 밑면은 넓게 만든 병아리 집에 두꺼운 천을 깔고 열흘 동안 키워 닭장으로 보냅니다. 병아리는 어미 닭한테 맡기면 잘 키우기는 하는데 온 집안을 뒤엎고 밭을 파헤치고 작패가 심해서입니다.

눈물이 나도록 작고 노랗고 쪼끄만 병아리를 보면 가슴도 아슬아슬 깜짝깜짝합니다. 그래도 고 작은 것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첫 먹이로 달걀을 삶아서 노른자를 부스러뜨려 주면 아주 즐겁게 재잘재잘 노래하면서 먹습니다. 흙을 발로 파 뒤집을 줄도 압니다. 물 먹을 때는 고개를 쳐들고 넘길 줄도 압니다. 병아리는 뾰족한 주둥이로 먹이를 씹지도 않고 넘기는데 어떻게 맛을 아는지 참깨를 제일 먼저 먹고 싸라기, 좁쌀 순으로 맛있는 것부터 먹습니다.

동생과 병아리가 한방에 있었더니

봄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갑자기 샛바람이 불며 추워집니다. 젖을 먹는 짐승에 비해 병아리들은 병이 잘 납니다. 저희끼리 모여 재재거리며 서로 속으로 파고듭니다. 날개를 늘어뜨리고 꼬박꼬박 조는 놈을 골라 재빠르게 손을 써야 합니다. 들기름 한 방울 먹이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더기 이불을 덮어놓습니다. 한참 있으면 재재재 삐악거리며 살아서 나옵니다.

어느 해는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병아리들도 태어났습니다. 아랫목에 뉘어놓았던 아기를 윗목에 누이고, 병아리 둥주리를 아랫목에 들여놓았습니다. 갑자기 아기가 많이 울고 열이 나고 아팠습니다. 지나가던 삼신할머니가 병아리 둥주리를 보고 “이게 탈이구먼”이라고 하였습니다.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던 시절 아는 소리를 좀 할 줄 아는 자칭 삼신할머니는 아무 연고도 없이 떠도는 이였습니다. 아기가 있는 집을 골라 다니며 조언해주고 빌어주고 약간의 수고비와 잠자리를 받고 살았습니다. 상에다 정화수 한 그릇 떠다놓고 성의껏 복채를 올려놓습니다. “하늘에 계신 삼신할머니, 이 아이가 오이 크듯 가지 크듯 아무 탈 없이 클 수 있도록 돌보아주소서.” 병아리를 사랑방으로 옮기고 청소하고 아기를 아랫목 제자리에 뉘었더니 괜찮아졌습니다.

병아리가 태어나면 개나 고양이를 미리 교육합니다. 고양이나 개 앞에 병아리를 갖다놓으면 얼른 잡아먹으려고 덤빕니다. 회초리를 준비하고 있다가 병아리를 건드릴 때 슬쩍슬쩍 몇 번 때립니다. 이렇게 교육 기간이 끝나면 집안의 모든 짐승이 흐뭇하게 한데 어우러져 살게 됩니다.

병아리는 사람만 얼씬하면 발끝에 차일 정도로 따라다닙니다. 바람이 불면 솜털이 날리면서 금세 날아갈 것 같습니다. “쭈쭈” 하면 쪼르르 모여들어 한 아름 안깁니다. 병아리를 데리고 놀다보니 점심 만들 시간이 늦었습니다. 허둥지둥 물동이를 이고 부지런히 오는데 탁 소리가 나서 보니 병아리를 밟았습니다. 조그만 병아리가 터지면서 투명하고 엷은 막이 꽈리처럼 부풀어올랐습니다. 60년이 다 된 일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올라 그 병아리한테 미안한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병아리는 크면서 다양한 색깔로 바뀝니다. 암평아리는 날개가 나고 꽁지도 새처럼 상큼하게 나며 참새처럼 포르르 소리가 나게 날기도 합니다. 수놈은 꽁지가 뭉툭하고 다리가 어청한 것이 날개와 꽁지가 암놈보다 늦게 납니다. 봄에 모심기가 시작되기 전 논에는 독사리(둑새풀)가 비단처럼 자랄 때가 있습니다. 점심 먹고 잠깐 쉴 참에 온 식구가 짐승 새끼들과 논에서 모여 놉니다. 돼지 새끼도 나오고 개도 강아지를 데리고 풀밭으로 나옵니다. 병아리도 불러냅니다. 닭장 문을 열고 쭈주주주 쭈쭈쭈 주주우우우~ 하고 부르며 먹이를 흘리고 앞장서 논으로 가면 삐악삐악 재잘거리며 잘 따라옵니다.

우리 가족은 아무리 바빠도 병아리들과 잠시라도 같이 놀아줍니다. 풀밭에 누우면 병아리들은 재잘거리며 몰려와 배 위고 다리고 손이고 밟고 올라와 작은 주둥이로 비비고 쪼아보기도 하고 같이 놉니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천국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모심기가 시작되면 천국 같던 병아리의 놀이터가 없어집니다. 우리 집 뒤로는 보 도랑물이 역수로 흘러 강으로 한 1㎞쯤 흐릅니다. 큰 밤나무가 세 그루 있고, 논둑 위로 뽕나무를 줄로 심어 누에를 먹입니다. 논둑의 뽕나무 밑으로 풀밭이 도랑물과 이어집니다. 닭장을 밤나무 밑에 짓고 문을 열어놓으면 물을 싫어하는 병아리들은 자연히 뽕나무 밑 풀밭에서 놀아서 운동시키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수지도 모르고 먹는 달구새끼들

장시간 밖에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날짐승이 채갈 수도 있고 족제비가 잡아갈 수도 있어서 한 시간쯤 놀면 불러들여 가둡니다.

병아리는 6개월쯤 되면 억세고 버르장머리 없는 닭으로 변합니다. 닭은 극성스러워서 논물에도 들어가 벼 이삭도 쪼아 먹고 논두렁도 파 뒤집습니다. 아버지는 기껏 농사지어놓으면 수지도 모르고 먹는 버르장머리 없는 달구새끼들을 절대 내어놓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전순예 1945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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