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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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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내일 해는 또 뜨니까

‘산다이’란, 거문도가 포트 해밀턴이던 시절 ‘선데이’에서 나왔다 주장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음… 잘 논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위정자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장 무서워하니
등록 2015-05-14 06:50 수정 2020-05-02 19:28

먼저 ‘산다이’가 도대체 뭔 소린가 하시겠다. 뜬금없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말이지. 아무 설명 안 하면 ‘남쪽 바다 먼 섬에 자기가 살고 있다는 소리를 전라도 사투리로 한 거겠지’ 싶으실 것이다. 은근슬쩍 그런 의도도 있기는 하다. 거기에다, 어쨌든 살아간다는 뜻도 슬그머니 끼어 있다. 유용주의 산문집 식으로.

저것들이 왜 며칠에 한 번씩 저럴까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이게 전부라면 안 죽었다는 소리밖에 더 되겠는가. 손가락 자유로운 자, ‘산다이’를 검색해보시길 권한다. 뜻밖의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 이 용어는 전라남도 섬 지방에서 ‘여흥’ ‘축제’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그러니까 또래들끼리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논다는 말로 내가 살고 있는 거문도에서도 예전부터 내려오고 있다. 근데 이 단어, 어원이 애매하다. 얼핏 일본어로 오해하기 쉽지만 아니다.

‘선데이’(Sunday)에서 유래했다고, 자기가 직접 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일명 ‘거문도 사건’이 있었다. 1885년 초부터 1887년까지 2년 동안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한 사건이다. 그 시절 우리 섬은 얼떨결에 ‘포트 해밀턴’이 되어버렸다. 해밀턴은 거문도를 처음 발견했다는 영국 사람의 이름이다. 참나, 훨씬 이전부터 살고 있던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뭐란 말인가.

한국 사람 한국말 쓰고 영국 사람 영어 쓴다. 두 언어는 하나도 안 닮았다. 물론 여러 외국어들이 들어와 섞여 쓰이고는 있다. 글로벌 시대니까. 어제도 나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한 단어씩 붙여서 이렇게 말했다. “핸들 이빠이 꺾어.” 핸들이 어느 정도 돌아갔는지는 내버려두고 그림 하나 그려보자.

영국 수병들의 일과가 있었다. 군가를 부르고 포대진지 경계근무 서고 국기 하강식 하고 점호를 받았을 것이다. 이건 기록에도 남아 있고 이야기로도 내려온다. 일손이 필요했던 그들은 주민들을 노무자로 고용했다. 일당으로 담배와 술, 말린 고기, 통조림 따위를 주었다. 파운드는 줘봤자 이상한 종이에 불과했으니까. 덕분에 일거수일투족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공식적으로 거문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깃불을 밝히고 당구대가 놓였으며 테니스 코트를 만든 곳이다. 물론 주민들은 구경만 했다.

그런데 어떤 날이 되면 수병들이 술 마시고 춤추며 논다. 주기적으로 그런다. 주민들은 궁금했다. 저것들이 왜 며칠에 한 번씩 저럴까. 한 명이 물어봤을 것이다. 왜 근무 안 서고 노는가? 보디랭귀지로(중요한 대화는 이곳 유학자와 그들이 데리고 온 청나라 통역사를 통해 필담으로 진행됐다).

질문의 요지를 알아차린 수병이 대답했다. “선데이.” 주민들은 그 단어가 재미있게 노는 것을 뜻한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갑자기 노래 부르며 놀고 있으면 ‘아, 그 선데이라는 것을 하는구나’ 했다. 그 선데이가 변형되어 산다이가 됐다는 추측.

나도 어느 정도는 맞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점령군의 제국언어를 물려받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배알이 꼴리기도 했다. 배알이 꼴리는 거 이야기하자면 1999년 4월 엘리자베스 2세가 방한했을 때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남의 나라에 깃발을 꽂은 주제에 여왕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 우리 정부도, 언론도 문제제기를 안 했다. 여왕이 경북 안동에 갔는데 신발 신은 채 방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귀엽다니, 유럽 문화가 어떻다니 따위의 기사만 내보냈다. 신발 신고 남의 방 안에 들어간 거, 이거 어째 거문도 사건과 비슷하다.

러브모텔 축제는 어떤가, 중계 곁들인

언젠가 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당신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산다이라는 게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얼래, 거기도 산다이가? 거문도와 비금도는 너무 멀고 교류도 없다. 알아보니 섬마을마다 이 단어를 써왔던 것이다. 그래서 선데이 유래설은 한 방에 설득력을 잃는다. 공부 좀 한 사람은 ‘산대희’(山臺戱)에서 왔을 것이라고 본다. 산대놀이라는 탈춤놀이가 있잖은가.

암튼 산다이다.

원래 이 꼭지는 ‘낚시터에서 보낸 편지’로 하려고 했다. 날씨만 좋으면 나는 날마다 낚시를 가니까. 그런데 이렇게 바꾼 이유는? 낚시보다 중요한 게 어울려 노는 것이니까. 낚시 좋아하는 분들은 서운하시려나. 안 그러셔도 될 것이다. 앞으로 낚시와 관련된 이야기도 종종 하게 될 테니까.

산다이는 연대의식을 높이며 묵은 감정을 배설하는 놀이문화다. 잘 논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 세상의 모든 페스티벌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장치다. 그래서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여 참가한다. 달리고 악쓰고 뭔가를 마구 던지기까지 한다. 그러고 나야 말끔해진 얼굴로 집에 돌아가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도 온갖 지역축제가 있긴 하다. 이름 대기도 귀찮을 정도인데 모두 관이 주도하는, 보여주기 형식이다. 몇 곳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가수들 노래 듣고 먹거리 장터에서 취한 다음 돌아간다. 이게 무슨 축제인가. 축제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하도 이런저런 축제가 생겨나자 이름에 시옷이 복수로 들어 있는 아무개 소설가는 러브모텔 축제를 기획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 기회에 러브모텔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 숨어서 해야 할 만큼 섹스가 나쁜 짓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는 동시에 국민 대가리 수 증가에 이바지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어차피 기회만 되면 다들 그 짓을 해대니까.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축제는 지역방송에서 중계를 하던데 그렇다면 MC가, 여러분은 지금 ‘우리 모두 붙어먹세’ 캐치프레이즈 아래 막 개막한 러브모텔 페스티벌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모란장 201호는 이제 막 입실했고 그 옆 퀸모텔 203호는 본격적인 애무에 접어들었습니다. 오호라, 도로시모텔 305호 쌍은 생각지도 못한 체위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난이도로 보아 가산점을 부여해야겠는데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씨랜드모텔 403호 커플 돌연 앞질러나갑니다….”

그는 그것까지는 아직 생각 못했다며 웃었다.

산다이는 보통 명절 뒤끝이나 만선했을 때, 심지어 초상을 치르고 나서도 했지만 사람들 수만 충분하면 충동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나쁜 짓만 아니라면 충동, 이거 매력 있는 행위다. 느닷없는 것. 술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은 길에서 반가운 사람과 우연히 만나 충동적으로 마시는 거 아니던가.

사람 수만 충분하면 충동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요즘 젊은이들은 당최 이런 맛이 없다. 우선 씩씩하지가 않다. 이해는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공포의 대마왕처럼 우리 모두를 뒤덮고 있으니까. 특히 청년들이 엄청 시달린다는 거 다 알고 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나아가 취업, 내 집 마련까지 자포자기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주로 서울 노량진이나 고시원을 배경으로 말이다.

이른바 ‘살아남으려는 자’는 친구도 경쟁의 대상으로 본다.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동기의 커닝 행위도 신고한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아사족’이라는 것도 생겨났단다(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슨 무슨 족(族)들이 소멸해가는데 우리는 자꾸 어떤 족이 생긴다). 자발적 아웃사이더족. 밥도 혼자 먹고 수업도 혼자 듣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프렌드 렌털’도 생겼다던가. 돈 받고 친구 노릇을 대신해준단다. 그렇다면 우리도 곧 생길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산 이래 이런 경우는 없었다.

불안에 떠는 무기력함. 이게 사는 것인가. 이렇게 살아서 뭐한단 말인가. 예전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었다. 생기는 대로 새끼들 싸질러놓고 각각 제 복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여겼다. 그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행태가 뚜렷한 불행인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는 내 편의 유무다. 내 편은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내 편이 되어주는 가장 큰 존재는 친구다. 친구 없으면 외롭다. 외로우면 괴롭다. 이것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 맺는 법을 연습하지 못한 사람이 갖는 불안정. 이거 큰 문제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성공하더라도 여차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 타인의 아픔을 느끼는 촉이 무뎌졌기 때문. 이른바 명문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판검사를 하는 사람 중에 풍부한 인성을 갖춘 이가 몇이나 될까. 개중에는 정치권으로 가서 국민을 괴롭히는 이도 적잖다.

노는 애들이 있기는 하다. 주말 서울 홍익대 앞. 그나마 있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그곳은 향락과 소비가 패턴화되어 상대적으로 음습하며 비밀스럽고 새로운 장소와 정보를 찾아 끝없이 이동하는 피곤이 있다. 쫓기듯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좀 불쌍하다는 느낌이다.

자유롭게 노는 영혼이 제일 무섭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대사회 최고의 상품이다. 국가와 회사는 불안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부려먹고 빨아먹는다. 거기에 대항하는 최고의 방법은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바둑을 둘 줄 모르지만 이세돌 9단의 가장 큰 장점이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 거라고 들었다. 멋진 자세다.

사람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 합격, 승진, 새로운 연애, 이딴 거? 뭐든지 조금만 지나면 별것 아닌 게 된다. 같은 수만큼 발생하는 불합격과 탈락, 진부함은 또 어쩌라고. 이런 것과 상관없이 행복감을 주는 것은 좋은 날씨다. 제기랄, 그게 다다. 최고의 에너지는 그것이다. 그러기에 날씨를 즐길 줄 모르면 이미 어긋난 상태다. 따뜻한 햇살 아래 우울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청년. 참 꼴 좋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무당도 신부도 스님도 목사도, 심지어 신(神)도 모른다. 모르는 것 가지고 벌벌 떠는 것처럼 찌질한 짓도 없다. 인생 알 수 없는 덕에 우리는 산다. 그리고 어울려 어기차게 기운을 발산하는 것이 생명력이다. 강한 생명력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자유로운 영혼. 이거 멋지지 않은가. 위정자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들을 무서워한다. 그들이 무서워할 젊은이가 많은 것, 그게 정상적인 국가다. 그러니 놀자, 좆도, 놀아도 내일 해는 또 뜨니까 겁내지 말고. 이상 산다이에 대한 설명 끝.

한창훈 소설가 *‘한창훈의 산다이’에서는 걸쭉한 입담에 걸출한 입맛까지 갖춘 소설가 한창훈이 먹을것들에 대한 ‘산다이’를 펼쳐갈 예정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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