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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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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루밍하며 드는 생각
등록 2015-03-21 07:54 수정 2020-05-02 19:27

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신소윤 제공

신소윤 제공

내 지난 일기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나는 늘 어디 구석에 짱박혀 배를 깔고 누워 있던데 누가 보면 와신상담이라도 하는 줄 알겠더라. 뭐 그렇다고 내가 만날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가 잠자는 것 다음으로 많이 하는 일이 그루밍(털 손질)이다. 고양이는 하루 평균 16시간을 자고, 4시간 그루밍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종일 자고 몸단장을 한 다음, 나머지 4시간을 쪼개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소파에 앉은 주인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도 부리고 창밖의 새도 구경하고 우다다도 하고… 이렇게 바쁘게 산다.

우리가 몸을 단장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언젠가 말했듯 우리는 바야바 못지않은 털북숭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피부에는 가로세로 1cm당 약 2만5천 개의 털이 있다. 인간들에겐 그냥 하염없이 털을 핥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고양이들의 그루밍이야말로 생명의 신비, 살아 있는 과학이다. 우리는 인간이나 개처럼 침을 줄줄 흘려가며 무언가를 핥지 않는다. 그렇게 몸을 닦았다간 온몸이 시큼한 침 냄새로 진동할 테니까. 까끌까끌한 혀로 몸을 훑는다. 제 기능을 다한 털은 빠져나가고 피부 아래 피지선을 자극해 지방을 골고루 분비해서 새 털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한다.

몸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단장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에게 빠져든다. 세상에 나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동물로 태어난 것이냥. 고양이 여럿과 함께 사는 시인 황인숙도 에서 이렇게 썼다. “그때의 모습이란, 나르시시스트가 바로 저런 거로구나 싶다. 눈을 지그시 감고, 제 어깨나 가슴팍부터 핥기 시작하는데, ‘아, 난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전신으로 되뇌는 것 같다.” 당신 옆에 앉아 가르릉거리던 고양이가 문득 한숨을 쉰다면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이다. 온몸이 반짝이는 털로 뒤덮인 우리와 달리 듬성듬성 몸의 몇 군데에만 볼품없이 털이 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대놓고 내 미모를 뽐내보겠다, 훗. 인간들의 미적 기준으로 봐도 나는 아름다운 모양이다. 몇 년 전 유행하던 비슷한 얼굴 찾기 애플리케이션도 사실을 검증했다. 나는 인간 기준으로 보면 컴퓨터 미인 정도는 된다(사진 참조). 참고로 우리 집주인(30대 여성)은 늘 비슷한 얼굴에 중년의 남자 연예인만 닮은꼴 1순위로 나와 절망했다.

외모로 줄을 세우고 사람을 평가하는 이 시절을 비판하는데, 우리 고양이들은 어쨌거나 일단 예쁘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이다. 가만 보면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도 봄볕 아래 느긋한 표정과 우아한 몸짓을 뽐내느라 바쁘다. 이쯤이면 케이블 채널 뷰티쇼에서 고양이 외모 따라잡기 편이 방영될 법도 한데 왜 섭외가 안 들어오지? 컴퓨터 미인이 되는 비결은 그때 알려드리겠다옹. 채널 고정!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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