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8년 뒤면 소행성이 충돌해 지구는 종말한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5년이 지났다. 벌어질 혼란과 범죄와 죽음을 이미 겪고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황, 사람들은 남은 3년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류의 종말을 소재로 쓴 소설이 많지만, 연작소설 의 설정은 남다르다. ‘모두 망했어요’라는 명제 앞에서 드러날 인간의 이면을 포착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말하기 때문이다.
종말을 앞두고도 가족과 화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용기, 죽을 것이 뻔하지만 아이를 낳기로 한 젊은 부부의 결심, 부모가 자살해 혼자 남은 소녀가 꿈꾸는 첫 연애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정된 종말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도 해야 할 일을 향해 움직인다. 이 작품이 알려주는 것은 ‘내일 죽는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는 사실이다.
굳이 종말과 같은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도, 살면서 수많은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절망,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다가오는 더 큰 추락, 어떤 방법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때의 무력함. 그럴 때 정작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힘이 센 것은 바로 타인을 위한 일이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에서 수용소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날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기도를 하기도, 술에 취하기도, 잔인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씻긴다. 새벽이 되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 빨래가 철조망을 온통 뒤덮는다. 작가는 묻는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그러니 세상이 두려울수록 사랑을 해야 한다. 타인을 위해서 할 일이 있는 사람은 두려울 게 없다. 지구 종말을 다룬 온갖 영화가 결국 ‘가족애’를 말하는 것도 가장 가까운 타인이 가족이기 때문이고, 남녀의 연애든 동료 사이의 우정이든 모든 애정 관계가 모성애를 흉내내는 것도 그것이 가장 이타적 형태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사랑하는 것만큼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정말 중요한 것,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인사들에게 정신과 전문의들이 종종 ‘애정결핍증’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그러니 희망찬 새해가 아니라, 다가올 내년이 두렵다면 사랑을 하라. 세상이 거지 같으면 거지 같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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