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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과연 나쁘기만 한가?

‘홉스카치’ 등 훌륭한 어린이 교육용 IT 프로그램… ‘공부는 책으로,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 과연 옳은가?
등록 2013-10-31 08:01 수정 2020-05-02 19:27
서울 시내의 한 학교에서 테블릿PC를 이용해 수업하는 모습.한겨레 자료

서울 시내의 한 학교에서 테블릿PC를 이용해 수업하는 모습.한겨레 자료

“긴 시곗바늘이 6에 갈 때까지만 하는 거야!”

오늘도 안방마님의 날선 경고가 귓가를 스친다. 아이들이 아빠 아이패드에 슬그머니 손을 뻗칠 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집안 풍경이다. “아이패드 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어설프게 가장의 권위라도 세우려 들었다간 꼼짝없이 퉁바리를 맞게 된다. “그럼 당신이 애들 교육 좀 맡든가!”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원샷 올킬’의 저 무기 앞에선 도리가 없다. 슬그머니 딴청을 피우며 돌아서는 수밖에.

그래도 마뜩잖은 마음까지 지울 순 없다. ‘아이패드 갖고 노는 게 그렇게 정색할 일인가.’

부모들은 아이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태블릿PC를 만지작거리면 십중팔구 얼굴에 열십자를 긋는다. 아이들이 교육용 동영상을 볼 때면 그나마 낫다. 게임이라도 슬그머니 실행하면? 열에 아홉은 ‘4대 악’ 때려잡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신 그분으로 빙의하게 마련이다.

‘공부는 책으로’ ‘게임은 나쁜 것’, 이런 이분법적 교육 방식이 나는 늘 못마땅하다. 기술 발전이 가져다준 도구의 혁명을 왜 애써 외면하려 드는 걸까. 컴퓨터나 스마트폰, 태블릿PC가 아이들에겐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숙주라도 되는 건가.

기술이 교육을 혁신한다. ‘스크래치’를 보라. 스크래치는 코드 한 줄 몰라도 아이들이 쉽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돕는 저작 도구다. 나무 그림을 마우스로 끌어다 화면에 놓으면 나무가 생기고, 자동차를 화면에 갖다놓으면 스스로 움직이는 식이다. 한마디로 ‘비주얼 프로그래밍 플랫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평생유치원 그룹이 개발해 2007년 5월 처음 공개했다.

국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 스크래치를 활용해 수업을 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코드 한 줄 몰라도 거리낌이 없었다. 옆 친구와 쉼없이 장난치는 와중에도 마우스로 4차선 도로를 들어다 화면 위에 놓았고,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클릭해 도로를 질주하게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크래치로 만든 ‘작품’은 누구나 저작권 걱정 없이 가져다쓸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공개된다. 나와 친구의 작업물에서 장점만 적절히 섞어 새로운 창작물로 재탄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보기술(IT) 교육과 재미, 여기에 요즘 유행하는 ‘공유’ 코드까지 적절히 섞은 모범 사례다.

‘홉스카치’는 한발 더 나아갔다. 사용 방법은 스크래치와 비슷하다. 놀이터만 웹브라우저에서 태블릿PC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레고 블록 조립하듯 태블릿PC 화면에서 다양한 사물을 끌어다 조립해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홉스카치 프로젝트를 띄운 두 여성 개발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이 일찌감치 프로그래밍 세계에 발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IT를 어린이 교육에 접붙이려는 시도는 새삼스럽지 않다. ‘원 랩톱 퍼 차일드’(OLPC) 운동을 기억하는가. 디지털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개발국가 아이들에게 값싸고 전력은 덜 소비하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기기를 보급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값비싼 부품 장벽과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보급이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이들이 던진 화두는 지금도 유효하다. ‘디지털에 뒤처지면 삶도 후발주자가 된다.’

깨달음은 실천으로 이어진다. ‘코드닷오아르지’(code.org)는 조기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미국 비영리단체다. 이 단체의 취지에 공감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이 스스로 나서 조기 코딩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코드 스타’(youtu.be/dU1xS07N-FA) 동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돼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국민은 코딩을 배워야 한다. 코딩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전자공학 키트를 만지작거리느라 수업을 빼먹기 일쑤인 ‘문제아’였지만, 어른이 돼 컴퓨터로 세상을 바꿨다.

8살, 6살 두 아이가 오순도순 책을 보며 까르륵거리는 집안 풍경을 나는 격하게 사랑한다. 이 아이들 손에 종이책 대신 아이패드가 들려 있다고 해서 내 벅찬 감동이 반감되지는 않을 게다. 지식을 채우고 상상력을 키운다면야 ‘재질’이야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럼, 난 안방마님부터 설득하러 총총.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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