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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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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꼴’로 세상에 보탬이 되리니

올해 ‘나눔바른고딕’ 내놓은 네이버의 무료 글
꼴 보급 활동… 심미성 높은 한글 웹사이트 느
는 건 우리 모두의 자산
등록 2013-10-18 05:42 수정 2020-05-02 19:27
‘나눔바른고딕’은 스마트폰 환경에 맞춰 모바일 화면에서도 또렷이 보이도록 디자인한 게 특징이다.

‘나눔바른고딕’은 스마트폰 환경에 맞춰 모바일 화면에서도 또렷이 보이도록 디자인한 게 특징이다.

네이버. 누군가는 이 이름에 찬사를 보내고, 다른 이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한데 예외가 있다. 네이버를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네이버의 활동, ‘나눔글꼴’ 얘기다.

나눔글꼴은 네이버가 보급하는 디지털 글꼴 이름이다. 2008년부터 이맘때면 어김없이 한두 개씩 만들어 공개했으니, 벌써 5년째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왜 생뚱맞게 글꼴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일까. 사연이 있다.

2007년. 네이버는 색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한글에 발 딛고 1등 포털로 올라선 만큼, 한글로 이용자에게 고마움을 되돌려줄 방법이 없을까.’ 당시 네이버 웹디자인을 총괄하던 조수용 CMD본부장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건 ‘글꼴’이었다. 아이디어는 꽤 그럴듯했다. 주변 웹디자이너들이 쓸 만한 한글 글꼴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걸 심심찮게 봐온 터였다. 자신도 평소 썩 예쁘지 않은 글꼴들로 도배되는 한글 웹사이트를 보며 못마땅해하던 참이었다.

경제적인 효과도 염두에 뒀다. TV 자막이든 휴대전화 화면이든, 글꼴을 가져다 쓰려면 제조업체와 이용 계약(라이선스)을 맺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자에겐 이 비용 부담도 만만찮았다. ‘그래. 이왕이면 예쁜 글꼴을 무료로 보급해 아름다운 한글 웹사이트도 늘리고 소규모 사업자 부담도 덜어주는 거야.’

1년여 개발 끝에 2008년 첫 나눔글꼴 ‘나눔고딕’과 ‘나눔명조’가 탄생했다. 글꼴 개발 취지를 살려 한글날에 맞춰 공개했다. 제작은 글꼴 전문 개발업체 산돌커뮤니케이션이 맡았고, 네이버가 제작 비용 5억원을 전액 부담했다. ‘한글날 글꼴 공개하는’ 네이버 전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듬해 한글날엔 개발자를 위한 ‘나눔고딕 코딩체’를 내놓았다. 개발 코드에서 헛갈리기 쉬운 소문자 아이(i)와 엘(l), 대문자 아이(I)와 숫자 일(1)을 좀더 또렷이 구분해주는 개발자용 글꼴이다. 2010년에는 자유분방한 손글씨 모양을 원하는 이용자 요구에 따라 ‘나눔손글씨’를 ‘펜체’와 ‘붓체’로 나눠 선보였다.

친환경 글꼴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1년 내놓은 ‘나눔글꼴에코’가 그렇다. 나눔글꼴에코는 기존 나눔고딕과 나눔명조 획 가운데 조그만 구멍을 여러 개 뚫은 글꼴이다. 이 글꼴을 써서 인쇄하면 잉크가 자연스럽게 구멍에 번져 글을 읽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서 최대 35%까지 잉크를 절약할 수 있다. 나눔글꼴에코는 원천기술을 가진 네덜란드 에코폰트BV에 의뢰해 제작했다.

2012년 한 해 잠시 숨을 고른 네이버는 올해 다시 ‘나눔바른고딕’으로 한글날을 맞았다. 기존 나눔고딕의 모서리를 벼려 정통 고딕에 가깝게 디자인한 글꼴이다. 스마트폰 환경에 맞춰 모바일 화면에서도 또렷이 보이도록 디자인한 게 특징이다.

글꼴 몇 개 만들어 보급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겠으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눔글꼴은 글자를 확대했을 때 계단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선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매뉴얼 힌팅’ 작업을 일일이 거친 글꼴이다. 나눔바른고딕의 경우 한글 1만1172자, 한자 4888자, 영문 94자, KS약물 986자를 일일이 이 작업을 거쳐 제작했다. 비용도 적잖이 들뿐더러, 노력과 내공이 따라야 하는 작업이다.

나눔글꼴은 모두 오픈 폰트 라이선스(OFL) 조건에 따라 무료로 공개됐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별도로 허락을 받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있다. 글꼴 자체를 유료로 판매하지만 않으면 된다. 서울 지하철 역사 내 모든 간판은 나눔고딕으로 제작됐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자 봉지나 인기 TV 방송 안에서도 나눔글꼴은 어렵잖게 발견된다. 애플 ‘OS X 10.7’이나 오픈소스 OS ‘우분투’의 기본 한글 글꼴도 나눔고딕이다. 비용 부담이 없는데다 모양새가 예쁘니 여기저기서 인기가 높다.

글꼴로 세상에 보탬이 되려는 노력은 다른 이에게도 전염된다. 다음도 2008년 ‘다음체’를 무료로 공개했다. 사용 조건이 나눔글꼴보다는 엄격한 편이지만,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에선 똑같다. 서울시도 2008년부터 ‘서울서체’를 개인과 기업에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제약 없이 널리 쓸 수 있는 글꼴을 보급하는 일은 두 가지 점에서 뜻깊다. 개인이나 기업은 비용 부담 없이 아름다운 글꼴을 책이나 웹사이트, 소프트웨어나 각종 상품 포장지에 쓸 수 있으니 좋다. 심미성 높은 한글 웹사이트가 늘어나는 건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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