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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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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케인스

등록 2008-12-23 05:35 수정 2020-05-02 19:25

갑자기 인기 폭발 케인스다. 어제까지만 해도 위대한 시장의 자율성 운운하며 정부 개입과 규제를 뱀, 전갈 보듯 하던 이들이 계속 같은 무대에 서서 분장도 바꾸지 않은 채 느닷없이 유효수요 정책이니 적극적 재정정책 운운을 입에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케인스 경제학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미국 대학을 필두로 한 세계 주류 경제학계에서 케인스는 사실상 커리큘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1990년대 언젠가 미국 일류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가 자신이 케인스를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을 마치 ‘실력 있는’ 진짜 경제학자의 증빙인 듯 떠벌이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제 세태가 바뀌자, 이들은 경제원론이나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익힌 알량한 지식에 근거해 케인스 경제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정부가 돈 푸는 게 케인스 경제학?

가엾은 케인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가엾은 케인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송곳은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법이며, 무지는 반드시 양말을 ‘빵꾸’내게 되어 있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냥 ‘정부가 나서서 돈 푸는 게 케인스 경제학’이라는 단세포 사고방식을 금세 읽을 수 있다. 정부가 혈세를 털고 국채를 잔뜩 져서, 욕심내다 빚더미에 앉은 은행에 무작정 퍼주고서는 되레 대출 좀 많이 해달라고 싹싹 비는 것이 ‘금융정책’이란다. 만년 적자에도 경영 혁신 없이 버티다가 망해버린 자동차 기업을, 그것도 채권·주식 소유자들부터 살려주는 것이 ‘유효수요 정책’이란다. 부동산 버블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나라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의 강을 네이팜탄 폭격하듯 일제히 들쑤시는 것을 ‘케인스 재정정책’이란다. 한마디로, 시장에서 돈이 막히면 정부가 나서서 대신 돌려주면 되고~ 라는 것이다.

케인스의 경제학은 결코 단순한 수리 모델이 아니며, 인간 심리와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에 대한 깊은 철학적·사회학적 성찰에 더 가깝다. 케인스가 불황기 경제를 좀먹는 가장 큰 질병으로 본 ‘불확실성’ 개념은 화이트헤드에게서 지도받은 그의 확률론 연구, 그리고 프로이트 심리학의 ‘불안’(Angst)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고도의 금융기법’을 갖춘 금융시장에만 전적으로 맡겨놓으면 미래를 모두 리스크 계산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우기다 이 참변을 불러온 현대 경제학자들과 달리, 그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란 수학적 원리상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며, 금융시장의 합리적 예측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나 받아야 마땅할 집단적 조울증을 미래에 투사해놓은 것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불황기가 되면 ‘불확실성’이 모든 이들의 생각과 심리를 지배하는 정서가 되어버리며, 그래서 제아무리 ‘합리적인’ 투자 기회나 유리한 매매조건이 와도 이들은 뱀에 홀린 토끼처럼 꼼짝도 않게 되며, 되레 ‘항문기 성격’ 소유자들이 인분(人糞)에 집착하듯, ‘냄새 안 나는 똥’(프로이트와 어네스트)인 화폐(황금)만 꼭 움켜쥐게 된다.

이렇게 모든 시장 행위자들이 비합리적 심리 상태에 빠져들어간 경제는 스스로 마비 상태를 풀고 나올 수 없으며, 그 ‘유동성 함정’ 때문에 거의 백약이 무효다. 따라서 믿을 것은 정부의 재정정책뿐이다. 정부는 이 겁에 질린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안심과 예측을 회복해 ‘야수 본색’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그냥 아무 데나 막 돈 푸는 게 아니다. 목표는 분위기와 판을 바꾸는 것이니, 불확실성의 구름을 걷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지점과 급소를 잡아서 거기에 과감한 규모로 화력을 퍼부어야 한다.

단지 항의할 수 없을 뿐이고~

케인스가 4대 하천 공사 소식을 접하면 어떤 얼굴이 될까. ‘뉴딜’ 하니까 댐 짓고 ‘공구리’ 치는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이들이 엉뚱하게 자기에게 안전모를 씌워 공사 현장으로 앞장세운 것을 알면 뭐라고 할까. 온 나라 은행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모기지 대출로 부동산 버블에 칭칭 묶여 있고, 또 그로 인한 은행 건전성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경제 전체가 침몰하고 있으며, 그래서 부동산 버블이 전체 경제 붕괴의 뇌관처럼 변해버린 상황에서 4대 하천에 14조원을 붓는 것이야말로 신뢰와 미래 예측 가능성을 되살려주는 케인스주의적 재정정책이라는 주장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케인스는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고~ 정치적 편의주의로 이용당하기 좋을 뿐이고~ 후계자도 거의 끊어져 항의할 수 없을 뿐이고~. 가엾은 케인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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